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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Jul 25. 2022

언제나 나를 기다려준 너에게

엄마 왜 안 와

고정순 글·그림 / 40쪽 / 13,000원 / 웅진주니어



표지를 쉽게 넘기지 못하고 한참을 머문다. 하얀 바탕에 작은 그림 하나와 제목이 전부지만, 넓은 여백 위로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아이가 어떤 상황인지, 아이의 엄마가 어떤 마음일지. 일하러 간 엄마를 기다리며 계속 언제 오냐고 전화하는 아이, 일이 제시간에 안 끝나서 발 동동 구르며 아이에게 미안해하는 엄마. 피곤한 퇴근길에 부랴부랴 장을 보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저녁을 차려서 먹이고 난 후에야 한숨 돌리는 일상. 아이 둘 키우며 동네책방을 운영 중인 내 모습이기도 하다. 


천천히 면지를 넘기니 이번엔 작가 소개가 눈길을 끈다.

 “지은이 고정순. 엄마가 늦는 이유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작가가 이렇게 대놓고 책의 주제를 말해 버리다니! 그런데 말이다. 아직 책을 다 보지도 않았는데 이 한 문장으로 벌써 위로받은 기분이다. 그래, 엄마도 늦을 수 있지. 엄마가 늦는 이유가 있지. 방금 전까지 표지를 보며 걱정, 미안함, 고단함, 자기 연민 등 복잡한 감정들로 울컥했던 마음이 사르르 풀린다. 



본문의 그림은 일하는 엄마의 하루를 밀착 취재한 다큐멘터리 같고, 글은 엄마가 아이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 같다. 시계가 7시 30분을 가리키는데 아무도 일어날 생각을 않는 사무실은 엄마가 늦는 현실적인 이유들로 가득한 곳이다. 아이가 기다리는 집으로 당장 달려가고 싶지만 마냥 뜻대로 되지 않는 그곳에서, 내레이터인 엄마는 아이 눈높이에 맞춰 자신이 늦는 이유를 하나씩 설명해나간다. 차분하면서도 당당하게. 미안한 마음으로 무조건 “빨리 갈게”라고 하지 않는다. 고장 난 복사기 앞에서 쩔쩔매느라 늦을 때도, “자꾸만 토하는 코끼리를 만났지 뭐야. 코끼리 속이 편안해질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줄래?”라고 말할 줄 아는 이 긍정적이고 상상력 풍부한 엄마를 닮을 수 있을까.

모든 일하는 엄마들의 목적은 ‘언제나 엄마를 기다려준 아이에게로 무사히 돌아가는’ 거다. 직장에서 시달리는 동안 점점 작아지더니 급기야 만원 버스 안에서 소멸할 지경에 이르던 엄마가 아이와 가까워질수록 살아나고, 두꺼운 안경테 너머로 미소가 피어난다. 


며칠간 밀린 업무로 분주했지만 오늘은 꼭 퇴근 후에 아이를 품에 안고 말해줘야지. 엄마가 늦었지만, 잘 기다려줘서 고마워. 


이숙희_꿈틀책방 대표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8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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