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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Sep 21. 2022

새롭게 빛날 작가들의 첫걸음, 향

그림책 전문 출판사 4 - 향출판사

“처음부터 이름난 작가는 없습니다. 향은 새롭게 빛날 작가를 발굴해, 이상하고 맛있는 책을 만듭니다. ‘이미지짓기학교 그림책향’과 함께합니다.”


향의 인스타그램 문패 노릇을 하는 글이다. 향의 명함이고 신분증이다. 향은 새로운 작가라는 씨앗을 찾고, 심고, 물을 주는 출판사다. 그러면 작가는 스스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또 다른 싹을 틔운다. 그렇게 길을 만들어가며(갈향向), 좋은 기운 널리 날리려(향기향香), 출판사 이름을 향이라 했다.


출판사 문은 2019년 10월 30일에 낸 『무슨 일이지?』, 다음 날인 31일에 낸 『모모모모모』와 함께 열었지만, 사실 씨앗은 2013년 3월 12일 ‘이미지짓기학교 그림책향’의 첫 모임이 있던 날 심은 셈이다. 아홉 해가 지나는 동안 그림책향은 ‘반달’과 ‘향’에서 낸 작가를 포함해 80명 넘는 작가가 여러 출판사에서 꽃을 피우고, 140권 넘는 그림책 열매를 맺었다.


‘외국 그림책처럼 우리나라 그림책이 성장하려면 글작가, 그림작가가 아니라 그림책작가가 많아야 한다. 작가 층이 두터워야 한다. 어린이 독자가 아니라 그림책 독자가 많아야 한다. 독자가 보는 그림책이 아니라 작가 자신을 담은 그림책을 만들어야 한다. 교육과 교훈 그림책이 아니라 예술과 문학 그림책이어야 한다. 심지어 그냥 노는 그림책이어야 한다.’


그림책을 만드는 편집자로 지내면서 2000년 초부터 10년 넘게 해외 도서전과 서점을 돌며 그들의 그림책 향을 맡으며 찾아낸 해답이었다. 간절히 그린 그림이었다. 내 그림책 눈을 뜨게 한 건 미국과 일본이었지만, 내 그림책 세계를 풍성하게 빚은 건 프랑스와 이탈리아였다. 부럽고 질투 나는 시간들이었다. 그렇다고 언제나 외국 그림책 신세만 질 수는 없다. 우리도 세계와 견주는 그림책을 만들 수 있다. 그런 생각으로 덤빈 시간들이었다.



그림책을 잘 모르거나 알아도 글을 중심으로 보던 사람들은 때때로 우리 책을 어렵다고 말한다. 베스트셀러인 『모모모모모』가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다. 『나와라 파랑!』은 무슨 그림인지 모르겠고, 『무슨 일이지?』는 왜 거북이 그냥 가버리는지 모르겠고, 『나만의 기타』는 왜 컴퓨터로 그린 그림이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비단 공장의 비밀』은 불편하게 왜 세로로 펼쳐야 하는지 모르겠고, 『구멍』『도토리』는 도대체 제목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고, 『집을 지었어』는 왜 ‘지’ 자를 나무로 가려서 못 읽게 했는지 모르겠고, 『꽃이 온다』는 제목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서커스』는 별것 아닌 얘기인 것 같은데 왜 비싸게 파는지 모르겠고, 『꽃들의 시간』은 비싼 책인데 제본이 왜 이렇게 부실한지 모르겠고(수제본이라 튼튼한데도 그건 모르고서), 향의 그림책 표지만 보면 어린이책인지 어른책인지도 잘 모르겠더라 한다. 그러니까 그냥 ‘모름투성이’라는 거다. 다 우리가 이상해서 생긴 일이다. 그러면 이렇게 말해준다.


그림책이니까 그림을 잘 보면 하나도 어렵지 않다. 우리 눈은 글과 그림 이 두 곳에 모두 초점을 맞출 수는 없다. 그러니까 처음엔 그림에 초점을 맞춰 쭉 훑어보고, 그다음엔 글에 초점을 맞춰 쭉 읽어보면 어려웠던 것도 쉽게 보인다. 빨리 바다로 가야 살아남는 어린 거북은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책은 어떻게 펼쳐도 책이다. 표지에 제목이 없어도 책 구석구석 제목 적힌 곳은 참 많다. 그러니 집을 짓는지, 집을 먹는지, 집을 잃는지 얼마나 알고 싶은가. 그림책이 어린이책인지 어른책인지 모르니까 우리도 그렇게 만든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 왜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어른과 함께 예술을 누리고 디자인 감각을 익히면 안 되나. 아이들 세상은 우주고, 어른들 세상은 지구다. 『서커스』의 아주 짧은 시간도 아이들한테는 놀라운 세계를 빚어내는 마법 같은 시간이다.

『비를 처음 맞는 애벌레와 비를 딱 한 번 맞아 본 무당벌레』 중에서

향의 문을 여니 코로나 세상도 함께 열려 두 해를 보내고, 올해가 되어서야 굵직한 행사 두 곳에 판을 깔았다. 한 번은 올해 3월에 열린 볼로냐 도서전이고, 한 번은 6월에 열린 서울 도서전. 서른 권이 채 안 되는 그림책이지만 깔고 나니 짧은 시간에 참 많이 애썼구나 싶었다. 모르겠다는 독자들보다 개성 있다는 독자들이 더 많아서 입꼬리도 조금 손보았다. 몸은 하나지만 둘 몫을 하며 책을 내는 보람이 여기에 있다. 지난해에 너무 달려서 올해는 좀 느긋하게 내야겠다 싶었는데, 벌써 우리 작가들이 줄을 길게 섰다. 또 달려야 하는 까닭이다. 그림책이라는 마약에 취해 황홀해하고 숨 가빠하며 더 빚어내고 싶어 하는 작가들의 기운.

그 기운 덕분에 고되고도 즐겁다. 낡은 기억이며 슬픈 기억이 자리할 틈이 없다. 새로움이 차올라 간다. 생각대로 이름대로 산다더니, ‘향’이라 지어서 가고 가고 또 가나 보다. 어쩔 수 없이 장자의 말을 믿어본다.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 도는 걸어가야 이루어진다. 기왕이면 우리, 춤추듯 걷자.


김향수_향출판사 대표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2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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