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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Oct 05. 2022

책과 사람, 세상이 연결되는 공동체

문화공간 산책 - 다즐링북스

다즐링북스는 경기도의 맨 아래, 안성에 있는 동네책방입니다. 책방은 이 도시에서도 변두리에 있고요. 2018년에 문을 열었을 때는 지금 위치보다 더 구석에 있었습니다. 저에게 책방은 일종의 실험실이어서 매우 소심하게 장소를 골랐거든요.

오랫동안 세상이 어떻게 하면 나아질까, 사람들이 어울려서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이상주의자라는 소리를 자주 들어왔는데 어느 날 돌아보니 적극적인 실천이나 시도는 해본 게 없었습니다. 뭐라도 시도해서 실패했다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실패도 해보지 못한 게 후회가 되었습니다. 다즐링북스는 실패라도 해보자는 마음이 용기가 되어 열게 된 곳입니다.


‘책방’이라는 공간은 세상과 좀 다르게 흘러가는 곳 같습니다. 책을 멀리하는 세상에서 책을 읽자고 하고,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가 대중에게 가장 관심 있는 주제일 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이야기하고, 출신 학교나 직업의 테두리에 갇힌 관계 맺기가 아니라 독서모임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고, 뿔뿔이 흩어져 고립되어있는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는 곳이니까요. 어떻게 해야 이런 공간을 유지하면서 먹고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은 풀리지 않는 문제라 답답하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는 자의 숙명 같기도 합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날이 계속되어 이 공간이 가치가 없다고 느껴지는 때만 오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책방에서 나이 들고 싶습니다.

책방에서 늙고 싶다고 하면 누군가는 책만 읽고 싶어 하는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책방에서 사람들과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게 좋습니다. 독서모임이나 북토크처럼요. 

책방에서 진행하는 독서모임은 많을 때는 한 달에 열 개 정도 있었습니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줄어들어서 요즘은 대여섯 개 정도 합니다. 초기에는 제가 진행하는 독서모임만 있었는데 이제는 절반은 단골손님인 ‘다북이’들이 모임장이 되어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북이들의 제안으로 시작한 독서모임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 초기작 읽기 모임’ ‘알쓸신잡에서 언급한 책 읽기 모임’ ‘BTS 추천도서 읽기 모임’ 등이 있습니다. 수줍게 독서모임에 참석했던 손님들이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여 독서모임을 만들고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해집니다. 안성에 숨어있던 인재를 발견한 기분이거든요.

제법 오래 지속하고 있는 모임으로는 ‘세계문학을 읽는 북클럽, 열두문’ ‘우리에겐 시가 필요해’ ‘편견을 깨는 책 읽기, 편깨기’ 등이 있습니다. ‘우리에겐 시가 필요해’는 참가자들이 좋아하는 시를 가져와서 함께 읽고 이야기하는 모임인데 작년에는 ‘시인과 함께 하는 우리에겐 시가 필요해’로 바꿔서 여덟 분의 시인을 초청해 만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편깨기’ 모임은 제가 특히 애정하는 모임인데 혼자서 읽고 말았다면 속상하고 답답하기만 했을 책을 여러 사람과 함께 읽고 이야기하면 동료가 생긴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편깨기가 우리 사회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해주는 독서모임이라면 ‘세계문학을 읽는 북클럽 열두문’은 세상을 더 넓게 보도록 해주는 모임입니다.

가끔 기회가 생겨 초청하는 작가들은 선배이자 선생님 같고요. 

독서모임이 왜 이렇게 재밌고 좋은지 어리둥절했을 때, 고미숙 선생님과의 만남을 통해 그게 바로 함께 공부하고 배우는 즐거움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경쟁하는 게 아니라 같이 공부하고 성장하는 기쁨이 얼마나 귀한지 절절히 느낍니다. 

작년 하반기에는 ‘경쟁하는 세계에서 연대하는 세계로’라는 주제로 네 번의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대전환이 온다』를 읽고 전병근 선생님과 독서모임을, 『선망국의 시간』을 읽고 조한혜정 선생님과 북토크를, 전은호 목포시 도시재생지원센터장님을 모시고 연대의 경험을 듣는 강연을, 그리고 마지막에는 안성에 있는 젊은 자영업자 다섯 분을 초청해 그들의 삶과 생각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런 경험들은 책방에서 올해 진행하는 모임이나 행사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책과 사람이 연결되고,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이곳에서 이제는 책과 사람과 세상이 동시에 연결될 차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연결된다는 건 다른 이의 작은 목소리는 더욱 집중해서 듣고 거기에 내 목소리를 보태 함께 소리 내는 거라 생각합니다. 은유 작가의 책 『있지만 없는 아이들』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작으면 듣는 귀라도 커야 한다고요. 책 읽는 이들의 귀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책 읽는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고 공부하는 게 좋습니다. 다즐링북스의 4주년 기념일이 곧 다가옵니다. 요즘은 어떻게 하면 손님들과 재밌게 축하하고 놀 수 있을까 상상하며 혼자 히죽히죽 웃습니다.


•위치 : 경기도 안성시 비룡6길 13-8 보보스 1층

•운영 시간 : 12시~20시 (월, 화 휴무)

•연락처 : 010-3230-8732

•홈페이지 : https://blog.naver.com/darjeelingbooks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darjeeling_books


홍지영_다즐링북스 책방지기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2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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