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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Oct 07. 2022

미세미세한 맛 플라수프

플라스틱과 함께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는

걱정 마, 폴리야. 너를 위해 맛난 수프를 만들어 줄게.
바다에서 난 천연 재료로 만든 특별 수프란다.
엄마, 이 수프 이름이 뭐예요? 
미세미세한 맛 플라수프란다.   


미세미세한 맛 플라수프 

김지형, 조은수 글 / 김지형 그림 / 48쪽 / 14,000원 / 두마리토끼책



이 이야기의 시작은 아주 작은 플라스틱 조각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무심코 쓰고 함부로 버리는 많은 플라스틱 물건에서 나온 조그맣고 알록달록한 조각들. 시간이 지나면서 플라스틱 조각들은 장소를 이동하며 점점 더 잘게 쪼개지고 모여서 수많은 점의 무리를 이루며 최종 목적지인 바다에 다다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또 다른 여정을 거치며 첫 장에 등장했던 한 꼬마의 몸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내가 마치 플라스틱 장난감이 된 것 같다고 놀라는 아이에게 엄마는 또다시 미세 플라스틱이 잔뜩 들어갔을 해물 수프를 내밀고 “잘 먹겠습니다”라는 아이의 외침을 마지막으로 글은 끝이 납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에는 글 없이, 어두운 검은색 바탕에 색색의 미세 플라스틱 알갱이가 뭉쳐 엄마와 아이, 여러 바다 생물의 모양을 하고 프라모델의 부품처럼 달린 장면을 보여주면서 마무리가 됩니다.



제 책의 이야기는 바로 오늘, 지금 플라스틱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굳이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플라스틱 물건들을 사용하며 살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플라스틱은 우리 생활에 스며들어 버렸습니다. 플라스틱이 아닌 물건들을 찾아볼 수가 없는 세상,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는 한시도 살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고민에서 시작한 『미세미세한 맛 플라수프』는 처음에는 독자의 연령층을 열어놓은 글 없는 그림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친절하지 않을 수도 있는 그림책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그림책 후반에 나오는 플라수프의 레시피가 그려진 장면은 아이가 플라스틱 장난감이 되어버린 뒤 끝이 나는 이야기의 에필로그 페이지였습니다. 그 에필로그는 죽어가는 자연환경과 그 환경을 망치는 우리를 향한 안타깝고 불편한 감정의 표현을 냉소적으로 그려낸 장면입니다. 하지만 뒤에 어린이책을 염두에 두고 편집 과정에서 약간의 수정을 하게 되었지요. 같은 이유에서 책의 맨 첫 장면이 특정한 주인공 폴리와 함께 추가되어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폴리는 읽는 독자인 어린이들이 자신을 투영하는 대상이 필요하다는 조언에서 비롯된 캐릭터입니다. 어린이로 대상을 정하자 그림만으로는 어린 독자들의 이해가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글을 넣게 되었지요. 하지만 처음부터 기획한 의도가 아니었기에 글을 더하는 작업은 정말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글작가의 도움을 받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진행이 매끄러운 글을 넣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처음부터 글 자리를 염두에 두지 않은 그림을 전혀 해하지 않으면서 조화가 잘 되는 글을 넣어준 편집의 공도 큰 것 같습니다.


테크닉적인 부분을 얘기한다면 크게는 콜라주와 판화 느낌의 질감입니다. 우선 주가 되는 컬러를 고르고 스케치를 한 뒤 과슈와 아크릴, 색연필과 먹으로 그림을 그리고 필요한 부분에 석판화를 찍고 나오는 시험판 에디션을 오려서 붙입니다. 한지에 전사 기법을 이용해 베껴낸 이미지들을 또 오려서 조합하고 붙이기를 수십 번을 해보고 적절한 한 장면을 탄생시킵니다. 무척 복잡하고 번거로운 과정이지만 컴퓨터로 하는 콜라주 작업과는 전혀 다른 맛과 깊이가 있어 하는 동안 푹 빠져서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플라수프의 주제로 돌아가 이야기를 해볼까요? 한 개인의 걱정은 작은 것일지 모르지요. 하지만 저는 오늘도 작은 실천을 해보려 합니다. 지갑과 휴대전화처럼 제 가방에 늘 들어있는 기본적인 외출 소지품은 텀블러와 장바구니입니다. 특히 자주 메는 가방 몇 개에 접이식 장바구니는 꼭 넣어두는데, 급하게 외출할 때나 가방을 바꿔멜 때 깜빡하고 빼놓는 일이 없도록 미리 넣어두면 안심이 됩니다. 플라스틱 빨대와 물티슈는 거절하고 될 수 있는 한 음식은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또 배달 음식은 되도록 자제하고 음식을 포장해 갈 때는 미리 준비해간 다회용 포장 용기나 냄비를 내밀어 제 의지를 보여줍니다. 제품을 고를 때에도 과대 포장된 것은 가장 먼저 선택지에서 제하면 물건을 고르는 고민도 줄어듭니다. 택배를 보낼 때는 신문이나 종이로 만들어진 충전재를 최소한으로 사용하거나, 어쩔 수 없이 받았지만 쓸모를 위해 보관해두었던 택배 상자 속 기존 충전재들을 재사용하고, 박스테이프도 종이테이프로 대체하는 편입니다. 불필요한 포장은 사지 않고 거절하기, 내 가방 속 텀블러와 장바구니와 용기는 매일 사용하기, 어쩔 수 없이 발생한 일회용품과 쓰레기는 한 번이라도 더 활용해서 내보내기. 글로 쓰고 나니 무척 사소해 보이지만 나만의 버릇 몇 가지로 삼은 순간부터는 건강한 습관이 되고 루틴이 되었습니다. 


이렇듯 각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하나씩 행동해나간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출발점이 되고 그 시작점들이 연결되고 모여서 좋은 변화로 이어지리라 확신합니다. 이미 이런 변화가 시작되고 있고요. 

여러분들도 자신만의 실천 리스트를 적어보고 하나씩 체크해가면서 미세미세하지만 가슴 뿌듯한 보람을 함께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김지형 작가는 대학에서 판화를, 프랑스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습니다. 『미세미세한 맛 플라수프』 일러스트레이션으로 2022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었습니다. 이 지구에서 계속 살아갈 우리들과 새로이 살아가야 할 존재들 모두가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2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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