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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Oct 17. 2022

‘프레임’을 통해 읽는 그림책

깊이 읽는 그림책 세계 3

영화, 사진, 회화에서 사용되는 개념인 ‘프레임(frame)’은 일러스트레이션이 서사 세계에 적극 참여하는 그림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전적 정의에서 보자면 프레임은 “물건을 받치거나 버티거나 팽팽히 하기 위해 테두리만으로 된 물건”이어서(이동은, 「‘틀(frame)’이 포함한 다의성에 관한 연구」 2000), 그림이나 사진을 끼워두는 물건인 ‘틀’이 된다. 사진에서는 프레임을 “이미지를 배치하기 위한 공간”이라고 하고(마이클 프리맨, 『사진디자인을 위하여』), 영화에서는 감독이 카메라의 파인더를 통해 바라보게 되는 한정된 공간을 프레임이라고 한다(엠마뉴엘 시에티, 『쇼트 : 영화의 시작』).

이 같은 프레임은 계속 흘러가는 시간 중에서, 그리고 펼쳐진 공간 중에서 일정 시간과 공간을 선택해서 보여주는 가장자리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경계선’의 기능을 담당한다. 이때의 프레임은 이미지의 가장자리를 둘러싸는 테두리 역할을 하는 ‘외곽 프레임’이다.


시간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외곽 프레임은 만화 및 그림책에서 경계 없이 통째로 펼쳐진 이미지들을 분할하여, 일정한 순서로 나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가 된다. 그렇게 하여 프레임을 통해 이미지들 사이에는 시간성과 인과성이 만들어지고, 프레임의 ‘경계선’ 기능은 ‘연결’ 기능도 겸하게 된다. 그 덕에 그림책은 시퀀스 예술(sequential arts)이 되는 것이다.

클로드 퐁티의 『끝없는 나무』에서 외곽 프레임은 시간의 흐름을 아주 간단하지만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비룡소(『끝없는 나무』)

[그림1]은 아빠와 딸 이폴렌이 사냥에 나선 장면인데 동일한 공간이 외곽 프레임을 통해 두 개로 분리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외곽 프레임에 의한 분리를 통해 아빠와 이폴렌이 동일한 나뭇가지의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보여주면서 시간의 흐름도 함께 보여준다.


사각형 프레임이 일반적이지만 다른 형태의 프레임도 있다. 이방 포모의 『어느 날 밤, 고양이가』의 마지막 장면은 원 모양의 프레임 안에 들어있다. 이 원 모양의 프레임은 특히 무성영화 시대에 카메라의 조리개가 한 인물에게 고정된 채 서서히 닫히면서 끝을 예고하던 영화 기법을 활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영화의 끝 장면을 상기시키는 프레임을 재활용함으로써, 이제 이야기가 끝났음을 재미있게 알려주는 것이다. 고전 무성영화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것이 영화 기법에서 차용된 것임을 눈치챌 것이다.


물론 원 모양의 프레임이 전부 이야기의 끝을 알리는 것은 아니다. 매튜 코델의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는 어린 소녀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길을 잃은 늑대를 어미에게 되돌려주는 글 없는 그림책인데, 세 군데를 빼고는 가시적인 프레임이 없다. 세 군데 나오는 프레임은 모두 원 모양인데, 주인공 소녀와 늑대 각각의 상황과 심리를 극적으로 표현하면서 독자에게 긴장감을 주기 위해 활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비룡소(『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


서로 다른 층위의 이야기 세계

외곽 프레임의 색과 두께 차이를 통해서 다른 층위의 이야기를 끌어들일 수 있다. 데이비드 위즈너의 『시간 상자』는 신비한 카메라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떠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인물과 공간을 사진 속에 담아 다양한 인물들을 연결해주는 이야기이다. 이 카메라의 필름에 찍힌 사진들은 이 작품의 여느 장면들의 프레임과는 다른 형태의 프레임으로 둘러싸여 있다.

ⓒ시공주니어(『시간 상자』)

[그림4]는 주인공 소년이 신비한 카메라의 필름을 현상해서 살펴보는 장면이고 [그림3]은 소년이 보고 있는 사진이다. [그림4]의 프레임은 가느다란 검은 선이지만 [그림3]의 프레임은 두꺼운 검은 선이다. [그림4]가 주인공 소년이 살아가는 현재의 세계라면 [그림3]은 이전(과거)의 시간 속 세계이다. 글 없는 그림책인 『시간 상자』에서 처럼 다른 유형의 프레임은 서로 다른 층위의 이야기 세계를 삽입시키는 서사 장치가 될 수 있다. 얇은 검은 선으로 된 프레임은 주인공 소년의 세계와 연결된 것이고, 굵은 검은 선은 카메라가 담아낸 다른 세계와 연결되어있다. 이를 통해 주된 서사 세계 안에 다른 서사 세계가 삽입될 수 있는 것이다.


숀 탠의 『도착』은 남자 주인공이 불가피하게 조국을 떠나 타국에 정착하며 겪는 일을 보여주는 글 없는 그림책이다. 주인공은 새로운 땅에서 자신의 처지와 같은 세 명의 이민자를 만나게 되는데, 각 이민자가 자신이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들려준다. 주인공 남자의 이야기는 패널을 둘러싼 흰 색 바탕이 프레임과 같은 기능을 하지만, 다른 세 이민자들의 과거 이야기는 각기 다른 색의 바탕이 프레임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보이도록 하는 구겨진 종이 느낌이 나는 프레임으로 각 패널이 둘러싸여 있다. 이처럼 다른 색과 재질감을 보여주는 프레임을 활용함으로써, 중심 이야기 속에 과거의 다른 이야기들을 삽입시키는 것이다. 다양한 색, 형태, 재질감의 프레임을 활용함으로써 『시간 상자』나 『도착』처럼 이미지를 통해서만 서사가 전개되는 그림책에서 서로 다른 층위의 이야기들을 포갤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데이비드 위즈너의 다른 작품 『아기돼지 세 마리』에서 이미지를 담은 프레임들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다른 곳으로 날아가서 다른 방식으로 배열되고 자리를 잡는 것을 보게 된다. 프레임의 해체와 재배치를 통해 기존의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로 탈바꿈하게 된다. 여기서 프레임은 허구 세계의 구축 과정 자체를 드러내 보이는 메타픽션의 장치로 활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통로와 같은 내부 프레임

그림책에는 외곽 프레임뿐만 아니라 ‘내부 프레임’도 있다. 내부 프레임은 이미지 안에 있는 사물들인 문, 창, 거울 등을 통해 구현되는데, 내부 프레임은 응시자(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효과를 갖고 있다(마이클 프리맨).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에서 유리창이 내부 프레임으로 기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집에만 오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남편과 개구쟁이 아들 두 명을 보살피는 데 지친 아내가 가출해버리자, 이들 세 명은 더러워진 집에서 돼지처럼 살게 된다. 집 안에 돼지 세 마리가 있고 유리창을 통해 늑대의 실루엣이 보인다. 돼지로 변한 남편과 두 아들에 늑대의 그림자가 내부 프레임으로 활용된 유리창을 통해 겹쳐지고, 이 장면은 조지프 제이콥스의 『아기 돼지 삼 형제』를 환기시킨다. 여기서 내부 프레임은 상호텍스트성을 만들어내는 서사 장치로 활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베틀북(『거울 속으로』)

앤서니 브라운의 또 다른 작품 『거울 속으로』에서는 거울이 내부 프레임으로 활용된다.

[그림5]는 앤서니 브라운이 사랑하는 화가들 중의 한 명인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금지된 재현」을 패러디한 장면이며, 여기서 주인공 토비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이상하다고 느끼고 거울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토비의 모습을 반대로 비춘 이 거울은 모든 것이 반대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의 역할을 한다. 즉 거울은 주인공이 하나의 세계에서 또 하나의 세계로 이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통로와 같은 내부 프레임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프레임은 단지 일러스트레이션의 가장자리를 둘러싸는 단순한 역할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사 차원에서 다양한 기능을 할 수 있다. 외곽 프레임은 시퀀스 생성이라는 기본적인 기능과 더불어 그 형태, 색, 질감에 변화를 줌으로써 이야기의 전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내부 프레임은 응시자의 시선을 이끄는 힘을 바탕으로, 일러스트레이션 차원에서 이야기 속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액자식 구성(미장아빔, mise en abyme)의 시각적 장치가 될 수 있다.


이성엽 _『그림책, 해석의 공간』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2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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