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독서 Nov 02. 2022

상실의 터널을 통과하는 지혜로운 처방책

그림책 깊이 읽기

태어나 처음으로 세일링 요트를 타고 2시간 동안 항해를 했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하늘의 뭉게구름은 명화 속에서나 볼 법한 그림이다. 맑고 푸른 하늘 아래 순풍이 밀어주는 요트 위에 앉아있자니 더 바랄 게 없다. 평화 그 자체다. 순풍인데도 온몸으로 바람을 받아내는 돛이 얼마나 팽팽한지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는 깜짝 놀랐다. 순탄해 보이는 인생도 그 너머에는 저마다의 팽팽한 시간들이 있지 않겠나. 아쉽게도 낭만적인 항해는 금세 끝났고 함께 탔던 일행은 배에서 내렸다. 아무도 요트에 더 머물겠다거나, 내리지 않겠다면서 하선을 거부하지 않았다. 

요트에서 내리는데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읽으며 인상 깊었던 시구가 떠올랐다. 헬렌이 남편 스콧 니어링의 부고를 대신할 구절을 모아뒀다며 소개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세 줄이다. 


“당신은 배에 탔습니다. 

당신은 항해를 했습니다. 

이제 내리십시오.” 


만물의 영장인 인간만이 삶이라는 배에서 내리는 것을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안 내리려고 끝까지 버티기도 한다. 우리는 탄생하며 인생이라는 배에 오르고, 짧거나 혹은 긴 항해를 마치고 배에서 내린다. 생명이 있는 것들 중에서 제 수명을 다한 식물과 동물들은 이제 내리라는 자연의 준엄한 명령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탄생과 죽음, 이 두 가지 존재론적 체험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문제는 그 자체를 스스로 의식하며 경험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특히 죽음은 절대적 타자로서 경험하고 의식한다. 내 일이 아닌 ‘남의 일’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고대 철학자들은 이런 인간의 속성을 가리켜 ‘어리석다’고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자신을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이 함께하는 삶 바라보기 

학교교육 역시 죽음이라는 키워드를 꺼리고 있다. 기피 대상이고 우선순위에서도 한참 벗어난 주제다. 그럼에도 우리는 개인적 죽음은 물론 사회적 죽음까지도 빈번하게 노출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길을 가다가 뜨거운 물에 화상으로 죽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쟁터에서의 죽음, 지구촌 반대편에서 기아에 허덕이다 죽어가는 사람들, 나이를 불문하고 자살했다는 소식 등 우리는 거의 매일 죽음과 관련된 기사를 접한다. 

초등학생들도 어른들 못지않게 죽음에 대한 기사를 접하고 있다. 식물이나 반려동물의 죽음은 물론이고 영화나 책 속에서 만나는 죽음, 실제로 조부모나 친척, 심지어는 부모와 친구의 죽음을 겪기도 한다. 게다가 OECD 국가 중 자살공화국 1위라는 불명예를 10년 넘게 고수하면서도 우리 사회는 학생들에게 죽음에 대해 가르치는 것에 흔쾌한 동의를 보내지 않고 있다. 죽음 교육이 죽는 것에 대한 교육일 거라는 막연한 부정적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 자살 예방교육은 그나마 일부 학교들이 하고 있으나 ‘죽음’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면 학부모로부터 민원이 들어올까 봐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아이들이라고 죽음이 피해 가지 않는다. 누구든지, 언제라도 죽음을 겪을 수 있다. 이때 아이들이 겪을 충격과 두려움, 비탄, 상실감은 제때 충분히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때를 놓치면 성인이 돼서도 죽음에 대한 경험이 부정적으로 남기 때문이다. 또래 친구들과 죽음에 대해 궁금한 이야기도 서로 나누고 그림책을 통로 삼아 죽음이 함께하는 삶을 미리 만나보는 장을 마련해줘야 한다. 그래야 진짜 죽음을 겪었을 때 건강한 관점으로 죽음을 바라볼 수 있고, 상실의 터널을 지혜롭게 통과할 수 있다. 나아가 죽음을 무겁지 않게 얘기하며 성찰하는 삶을 사는 것까지 공교육이 이끌어줘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작년에 학교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그De함(그림책으로 Death 함께 이야기 나누기)’이라는 죽음 문화운동을 벌이고 있다. 해피다잉 스쿨을 세워 잘 사는 것으로 좋은 죽음을 준비하도록 돕는 일도 하고 있다. 학교에 있는 동안 거의 매일 그림책을 읽어줬고 그 가운데 죽음을 소재로 한 그림책도 해마다 몇 권씩 꼭 읽어줬다.


이 지면을 통해, 삶이라는 요트에서 내리는 게 불안하고 두려운 독자들에게도 죽음을 소재로 한 아름다운 그림책을 읽어주고 싶다. 존 무스의 『설탕 한 컵』(달리)이다. 불교의 가르침 가운데 기사 고타미라는 여성의 이야기가 『법구경』에 실려있는데 『설탕 한 컵』은 이 여성이 갓 태어난 아이를 잃고 겪은 이야기를 존 무스가 풀어 쓴 그림책이다. 이 그림책은 죽음과 상실이 특별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한다. 그야말로 죽음 앞에 기꺼이 항복하게 만드는 그림책이다.

ⓒ달리(『설탕 한 컵』)

표지부터 예사롭지 않다. 앞표지에는 고양이 실루엣을 띈 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고 판다와 한 여자아이가 고양이 구름을 바라보고 있다. 대체 무슨 영문일까? 주인공 애디와 트럼펫이라는 고양이는 절친이다. 그러던 어느 날 트럼펫이 차에 치여 죽고 만다. 애디는 트럼펫의 부재를 부정하면서 동네 현자인 스틸워터를 찾아간다. 트럼펫을 되살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서 말이다. 스틸워터는 트럼펫을 살리는 약을 만들어주겠다고 하지 않고 ‘너에게 필요한 약’을 찾을 수 있을 거라며 설탕 한 컵을 구해오라고 한다. 단 아무도 죽지 않는 집에서 구해오라는 단서를 붙인다. 애디는 과연 설탕을 구해올 수 있을까? 죽음의 방문을 받은 적 없는 집이 있을까? 설탕을 구하지 못한 애디는 스틸워터에게 돌아온다.

작가는 애디의 슬픔에 제동을 걸어 트럼펫과 지냈던 시간을 돌이켜보게 한다. 애디에게 트럼펫은 자신의 대지요, 하늘이었건만 설탕 한 컵을 얻기 위해 동네 사람들을 만나면서 죽음과 슬픔과 상실이 자신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슬픔의 터널을 통과하는 중에도 다른 사람들의 슬픔과 상실을 위로하고 헤아릴 수 있게 된다. 슬픔을 통해 성장하는 애디의 모습에서 아이들 역시 깊은 울림을 받는다. 죽음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내가 운영하는 해피다잉 스쿨에서 성인들에게 이 그림책을 읽어드렸다. 우리는 애디가 애도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죽음 앞에서는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다를 바 없다는 의견에 깊이 공감했다. 특히 어른으로서 스틸워터의 지혜로운 처방이 큰 박수를 받았다. 참여자 중 한 소설가는 그날 저녁에 바로 이 그림책 전체를 낭독해서 녹음해보고 싶다고 빌려 갔다. 


“나는 그림책의 세계에 대해 어린아이들이나 읽는 거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 그림책이 나의 사생관을 바꿔놓았다. 어른들도 죽음을 두려워하고 준비를 제때 못하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왜 죽음을 미리 가르쳐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런데 이 그림책에 담긴 문학성과 예술성에 깜짝 놀랐다. 무엇보다 죽음과 상실이라는 무거운 이야기를 이토록 아름다운 그림에 담아내다니! 나는 우리 손주들이 애디와 같은 일을 겪었을 때 스틸워터의 지혜로운 처방을 써보고 싶다. 이 한 권의 그림책으로 나는 죽음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도망치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됐다.” 


죽음과 삶이 이어지는 통로 사이의 그림책 

4년 전, 중학교에 강의를 하러 갔다가 한 신규 교사의 이야기를 건네 들었다. 제자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부터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고 삶을 거의 포기한 상황이라고 했다.  동료 교사에게 그림책 『무릎딱지』(샤를로트 문드리크 글 / 올리비에 탈레크 그림 / 한울림어린이)『용기』(버나드 와버 글·그림 / 아이터)를 전하면서 따듯한 공간에 가서 읽어주라고 했다. 갑자기 엄마를 잃은 주인공 아이와 할머니의 감정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잘 들어주라고 했다. 『용기』라는 그림책은 맨 뒤에 “헤어져야 할 때 ‘잘 가’라고 말하는 것도 용기”라는 문장이 있어서 건넸다. 절대 조언을 하거나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는 식의 어설픈 위로는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울림어린이(『무릎딱지』)

두어 달 뒤 그 신규 선생님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병원 검사로도, 상담으로도 뛰어넘을 수 없는 높고 두꺼운 벽을 뛰어넘게 됐다고, 고맙다는 인사였다. 그 선생님에게 그림책이 말을 걸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그 아이의 상실과 애도의 단계를 따라가며 자신을 들여다보게 됐다고 한다. 갑자기 엄마를 잃은 손주의 어린 두 손을 잡고 가슴께로 올려주며 “여기 쏙 들어간 데 있지? 엄마는 절대 여길 떠나지 않아. 엄마는 여기에 계셔”라며 손주의 슬픔을 달래주던 그림책 속 할머니를 보면서 자신을 도우려는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알아차리게 됐다고 했다. 죽음과 삶이 이어지는 숭고한 통로 사이에 그림책이 있었다. 


어른이나 아이나 공통적으로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이 ‘하늘나라’, 즉 사후 세계다. 하늘나라에 대해 궁금해하는 아이들과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까? 그림책 『사탕』(실비아 반 오먼 글·그림 / 월천상회)을 추천한다. 책 속 아이들은 파란 사탕 너머로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정말 하늘나라가 있을까? 궁금해한다. 많은 아이들이 하늘나라에 갈 때 가족사진을 가지고 가고 싶어했지만 그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정다웠던 기억이나 추억으로 연결하고 싶어 했다. 아이들이나 어른 모두 ‘엄마가 안아줬던 기억’을 가장 많이 언급했다.  

ⓒ월천상회(『사탕』)

죽음을 담은 그림책에서 품었던 질문은 훌륭한 탄성으로 삶에 돌아와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죽음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여기, 지금’인 삶으로 무사 귀환하는 데 있다. 

학생들이 공교육을 받는 동안 친구를 잃거나 키우던 반려동물을 잃었을 때 우리 사회나 국가는 아무런 공적 돌봄을 제공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엄마를 잃은 아이에게조차도 공적 돌봄이 제공되지 않는다. 보호자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도 우리 사회가, 우리 국가가 내 아이를 잘 돌봐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후대에 정신적 유산으로 물려줘야 한다. 그것이 어른이 있는 세상이다. 


우리는 삶이라는 배에 이미 탔고 항해 중이다. 언제 내려야 할지 모르지만 “이제 내리십시오”라는 전언을 받았을 때 어떤 자세로 죽음을 바라볼 것인지 스스로에게 늘 물어야 한다.


임경희_『그림책으로 배우는 삶과 죽음』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2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작가의 이전글 그림책과 함께 엿보는 작업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