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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Nov 04. 2022

일제강점기 아동 삽화의 발전과 그림책의 인식

그림책 깊이 읽기

우리나라는 1920~30년대에 들어서 출판문화의 성장기라고 할 만큼 발전된 인쇄 기술이 시도되었다. 특히 일제강점기 4대 아동 잡지인 『어린이』(1923), 『신소년』(1923), 『별나라』(1926), 『아이생활』(1926) 등은 아동문학 전문 삽화가의 활동을 촉진하였다. 출판사와 상업적 인쇄물이 급증한 1930년대에는 활판·옵셋·석판 인쇄 외에 원색 분해와 원색 인쇄도 시도되었다. 

1922~1938년까지 시행된 조선교육령에 포함된 「유치원규정」은 유치원 설립 운동과 함께 유년 아동에 대한 관심의 발아 계기가 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1920년대 후반에는 이주홍, 정인섭, 홍은성 등이 유년 아동을 위한 그림책(繪本)의 필요를 주장하였고, 1930년대에는 유치원 교육의 활성화와 함께 유년 독자가 확대되면서 ‘좋은 그림책’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당시 유치원에서는 소학교와의 연계성을 고려한 노래, 이야기, 유희 등의 교육이 이루어졌으며, 유치원 교육 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시각적인 그림책이 필요하게 되었다. 1930년대 서울을 중심으로 일본의 서적들이 대다수였던 점으로 보아 좋은 그림책에 대한 논의는 상당 부분 일본 그림책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현대의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상호작용하는 서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그림책은 문학적·예술적 가치보다 교육적 도구로써 사용되었다. 때문에 당시 그림책의 역할은 어린이의 학습을 돕기 위한 박물화가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직접 볼 수 없거나 경험할 수 없는 “짐승이 제복을 입고 있다든지 의복을 입고 자전거나 그 밖의 차”를 타는 등의 우화는 좋지 않은 것으로 규정되었다. 따라서 당시 그림책은 아이들이 실제로 경험 가능한 것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 했다. 


그림책의 인식 변화는 『동아일보』에 실린 1932년 글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그동안 그림책이 교육적인 수준만을 고려 대상으로 삼았다면, 그림책의 선택 요건에서 첫 번째가 예술적인 것으로 변화하기 시작하며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우의적’이고 ‘다방적’인 그림책을 지향하게 된다. 여기에서 현대 그림책의 수준으로 한 발 더 나아간 것은 감상적인 표현에 대한 주의이다. 그림책을 교육의 관점으로 본다는 것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그림책의 심미적인 특징인 아동의 심적 발달과 동심의 세계를 표현하는 데에는 진일보하였다. 또한 불선명 색채의 강도, 종이의 광택, 인쇄의 선, 활자의 대조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그림책의 파라텍스트를 살펴볼 수 있다. 이처럼 1930년대 그림책 논의는 ‘아동을 위한 그림책’에 대한 성장의 싹을 움트게 하였다. 


노래하는 글, 이야기하는 그림, ‘그림동요’ 

1930년대에는 외국에서 그림을 공부한 화가들이 대거 국내로 유입되면서 다양한 장르에 그림을 그려 넣으며 아동 삽화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0년대에는 다수의 ‘그림동요’가 발표되었는데, 그림동요라는 장르 명칭은 일간지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이지만 아동 전문잡지에서 ‘그림동요’ ‘그림노래’ ‘동요’로 장르 명칭을 혼용해서 사용하였다. 1930년대 초기 일간지의 그림동요는 글을 보조하는 삽화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당시 삽화는 글의 이해를 돕거나 글을 보충하기 위해 책이나 신문 잡지에 끼워 넣는 그림이었다. 때문에 삽화의 주요 목적은 글 텍스트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재현의 의미로 활용되었으며, 점차 글의 의미를 확장해가는 방식으로 변화·발전하였다. 


1930년대에는 동요의 ‘풍요시대’라 할 만큼 수많은 동요가 발표되었고, 그만큼 다양한 시도가 함께 이루어졌다. 1930년대 그림동요는 대부분 인간 행동의 묘사나 자연 풍경 묘사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윤석중의 「헌신짝」(1930)은 물활론적인 사고가 가능한 유년 아동을 향하고 있다. 비록 그림의 기법이 펜화로 단순화되어 있다는 한계를 가지지만, 유년 아동의 특성을 고려한 묘사라는 점에서 동요의 의미를 담아내는 데에는 한발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헌신짝」(윤석중 글·그림)

신문 지면에서 보이던 그림동요는 1930년대 중반부터 점차 감소하여 아동 잡지로 그 자리를 옮겨가게 되었다. 특히 『아이생활』에서는 백여 편이 넘는 그림동요가 ‘동요’ ‘동시’ ‘노래’ ‘그림동요’ ‘그림노래’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되어 있고, 삽화는 간단한 펜화에서 회화적인 수준까지 활용의 폭이 넓었다. 1932년까지는 다소 펜화의 일대일 대응 방식의 수준에 머무르는 삽화가 대부분이었다면, 1933년 부터 그림동요의 수가 늘어나면서 삽화의 수준도 회화를 도입하고 채색도 가능해지면서 동요의 심상을 더 깊이 담아내게 된다. 


그림동요의 삽화는 동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더 나아가 시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심상을 전달하는 효과를 지닌다. 『유년』(1937) 잡지의 그림동요에는 「가을달」과 「기러기」가 실려있는데, 두 면에 걸쳐 채색화가 있고 상단에는 동요가 적혀있다. 전통 화법으로 그려진 그림은 원근감을 통해 달의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인식하게 할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서정적인 분위기를 그려낸다. 식민지 현실에서 전통적인 화법을 구사하며 전통성을 지켜내려는 노력을 했다는 점에서도 그 가치가 인정된다. 이는 ‘운문 그림책’의 효시로 평가받는 해방 이후 출간된 <아협 그림동산> 시리즈 제3집 『우리마을』(1946)과 제5집 『우리들 노래』(1947)로 이어지며 그 형식이 유지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이와 유사한 형식이 지속되며 ‘시 그림책’의 계보를 잇는다. 

『유년』 「기러기」(윤석중 글, 정현웅 그림)

유년 잡지 ‘그림책’을 품다

일제의 검열이 심해지면서 다소 검열에 안전성을 획득할 수 있는 유년 독자를 위한 노래와 이야기 등이 등장하게 된다. 이와 함께 당시 상류 사회를 중심으로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유치원 아동을 위한 그림책과 잡지 발간이 요구되었다. 홍효민(홍은성)은 5~10세를 유년기로 보고 유년 아동에게 그림책을 만들어서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이광수는 3~4세의 말을 배우는 유년 아동을 위한 이야기가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이처럼 1930년대에는 유년 아동을 위한 독물의 필요가 증대되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의 부름에 호응하며 조선중앙일보사에서 발행된 『소년중앙』(1935~1940)의 부록 『유년중앙』(1935~?)과 조선일보사 출판부에서 유년을 대상으로 한 잡지 『유년』(1937)을 발행하게 된다. 윤석중은 아동과 유년을 명확히 구분하고 『유년중앙』과 『유년』을 발간하게 되는데, 『유년중앙』은 유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까지 확장하여 이중 독자를 상정하고 있다. 

『유년』은 화려한 컬러판으로 유년 독자를 대상으로 한 그림 잡지의 성격을 띤다. 『유년』은 표지 그림부터 독특하다. 『유년』 잡지의 삽화를 담당했던 신회화예술협회 회원인 정현웅과 홍우백은 신시대 미술에도 성실하고 침착히 연찬 개척하려는 의지와 열성을 가진 화가들이었다. 『유년』은 만화적인 기법과 회화적인 기법이 융합된 표지화와 “가지각색 그림을 영롱하게” 그려 넣어 아이들에게 정서적인 만족감을 주었다.


상대적으로 『소년중앙』은 삽화의 개수나 이야기의 형식에서 아동에서 소년까지 폭넓게 대상을 상정하고 있다. 짧은 이야기와 함께 삽화를 구성하기도 하고, ‘그림얘기’라는 장르 명칭을 쓰기도 하였다. 오남이의 「원족가는날」은 장르명을 표기하지는 않았지만, 두 면에 걸쳐 그려진 삽화는 소풍 가는 모습을 다양한 동물의 모습으로 그려 넣어 즐거움을 더해주었고, 텍스트는 아이들의 즐겁고 우렁찬 목소리를 나타내듯 자유롭게 적혀있다. 

『소년중앙』 「원족가는날」

1930년대에는 동화(童畵)의 발전된 형태로 유년 아동을 위한 그림 자료로써 ‘그림책’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앤솔러지 형태로 출간된 『아기네동산』(1938)은 기독교 아동잡지 『아이생활』에 실려있던 다양한 그림 텍스트를 묶어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이다. 『아기네동산』은 “경험과 지식이 조화되고 그 위에 건설된 아름다운 세계”라는 그림책의 구체적인 방향에 대한 시각으로 출간되었으며, ‘그림책’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애기 그림책’은 미약하기는 하나 예술적인 요소와 문학적인 요소가 융합된 형태를 지니고 있다. 그림책·동요집·동시집·동화책이 모두 이 한 권에 들어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그림 텍스트의 다양한 시도를 엿볼 수 있다. 


『아기네동산』의 표지화는 의인화된 기법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모습에서도 한복을 입고 있으며 화려한 오방색으로 채색하여 아이들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더욱이 앞뒷면의 표지를 연결해 하나의 그림처럼 표현하여 파라텍스트를 충분히 활용하였다. 펼침 면의 표지는 각각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앞표지와 뒤표지가 연결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앞면에서는 여자아이를 나비로 의인화하고 뒷면에서는 남자아이를 잠자리로 의인화하여 동화적인 상상력이 가능해졌다. 이것은 아름답게 꾸민 장정의 의미를 넘어 파라텍스트를 활용한 선구적인 사례이다. 

『아기네동산』 앞뒷면 표지

임홍은은 다소 낮은 연령을 위한 이야기를 ‘애기 그림책’이란 꼭지명으로 구성하였고, 삽화의 기능을 확장하며 훨씬 정교화시켰다. 당시에 애기 그림책은 하나의 특정한 장르를 지칭한다기보다는 아동을 위해 삽화를 활용한 ‘그림동요’ ‘그림얘기’ ‘그림책’의 개념을 하나로 묶어서 99개의 그림을 그려 넣은 그림책 앤솔러지이다. 한 장 한 장의 그림이 상호관련성을 가지고 하나의 서사를 가지는 완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각각의 그림들은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서로 유기적으로 통일성을 유지하는 특징을 지닌다. 임홍은과 함께 『아이생활』에서 뛰어난 삽화를 선보였던 임동은은 해방 이후 전면 글과 그림을 넣은 『꼬마성경책』(조선아동문화협회,1949)을 내놓으며 단행본 그림책의 수준을 한층 높여주었다.


조성순_아동문학평론가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2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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