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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Nov 09. 2022

발견의 기쁨을 주는 과학 그림책

그림책 깊이 읽기

과학 그림책을 최소한의 단어만으로 표현하라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내용은 과학이고 형식은 그림책!” 여기서 과학이란 과학 방법 또는 과학 지식의 준말인데, 과학 방법이란 과학 지식을 쌓아가는 논리, 추측, 증명의 과정을 이르는 말이고 과학 지식이란 과학 방법으로 얻은 마지막 생산물을 말한다. 그러니 좋은 과학 그림책은 과학 지식을 소재로 삼아 과학 방법이 잘 녹아나도록 그림책 형식으로 풀어낸 것이라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 그림책이라면 과학 지식을 소재로 삼아 그것을 가르치는 목적으로 만든 그림책을 떠올린다. 이런 생각을 가지는 이유는, 어린이들이 그런 과학 그림책을 읽으면 과학에 도가 터서 나중에 시험을 보았을 때 모두 백 점을 맞게 되리라는 헛된 꿈을 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과학 그림책을 또 다른 참고서로 여기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대 옳은 생각이 아니다. 


과학 교육의 목적은 ‘발견의 기쁨’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발견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기쁨이 중요하다. 자연의 이치를 발견하는 과정은 매우 지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을 밟아가려면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기쁨을 느껴야 한다. 즐거워야 그다음 과정을 이어갈 것 아닌가. 

이와 같은 사항들을 종합해보면 좋은 과학 그림책이란 앞서 내린 정의와 더불어 책을 읽으며 무언가를 발견하고 알아가는 ‘기쁨’을 느끼도록 해주는 책이라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독자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선사해야 한다는 뜻이다. 


저자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 

자, 그럼 어떤 과학 그림책이 독자에게 기쁨을 줄까? 당연히 저자가 재미있어서 어쩔 줄을 몰라 만든 책이다. 그러려면 경험은 필수! 소재에 푹 빠져본 사람만이 그 속에서 보편성을 찾을 수 있고 그것을 나누며 놀 수 있다. 


“새박사 다미의 부엉이 펠릿 탐구생활”이라는 부제가 붙은 『어서 와, 여기는 꾸룩새 연구소야』(정다미 지음 / 이장미 그림 / 한겨레아이들)는 파주에 있는 꾸룩새 연구소에서 오래도록 부엉이와 생활한 저자가 그 경험을 살려 만든 책이다. 부엉이는 쥐나 작은 새를 통째로 삼키고 위 속에서 소화를 시킨 뒤 뼈같이 딱딱한 부분은 둥글게 뭉쳐 도로 게워 내는데, 이 덩어리를 펠릿이라고 한다. 펠릿을 풀어서 뼈를 맞추면 부엉이가 무엇을 먹었는지 알 수 있다. 저자는 이와 같은 흥미로운 체험 이야기는 물론, 새가 좋아 새에 몰두한 적이 있는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 독자들은 바로 그런 점에 끌린다. 


『같을까? 다를까? 개구리와 도롱뇽』(안은영 글·그림 / 천개의바람) 역시 개구리와 도롱뇽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이다. 저자는 개구리와 도롱뇽의 알을 부화시켜 그 과정을 관찰하며 책을 만들었다. 두 동물을 비교할 수 있도록 양 페이지에 하나씩 배치한 병렬식 구조가 인상적인데, 개구리와 도롱뇽의 공동의 적인 새를 등장시켜 긴박감을 더한다. 

ⓒ천개의바람(『같을까? 다를까? 개구리와 도롱뇽』)


『야생 고양이를 찾아가다』(이자와 마사코, 최종욱 글 / 히라이데 마모루, 양순옥 그림 / 웅진주니어)는 고양이를 연구하는 동물학자가 호주에 있는 야생 고양이를 관찰하러 가는 이야기다. 실제로도 동물학자인 저자는 도시에 사는 길고양이를 분 단위로 쫓아다니면서 알아낸 사실을 엮어 『도둑고양이 연구』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이 책을 보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고양이에게 학문적으로 푹 빠진 사람은 이런 방식으로 사는구나. 놀랍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풀꽃과 놀아요』(박신영 글·그림 / 사계절)는 저자가 수년간 관찰한 풀꽃을 세밀화로 정성스럽게 그려 만든 책이다. 세밀화로 그린 식물에 관한 책이 대부분 도감인 것에 반해 이 책은 작가의 화단과 뒷산 등 장소가 가지는 특성과 시간의 흐름이 잘 나타나 있다. 게다가 꽃이 피는 과정을 분 단위로 관찰해 그린 것, 꽃씨가 터져 나오는 과정을 시간 순으로 나열한 것 등 집요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정성이 들어간 책이다. 

ⓒ사계절(『봄 여름 가을 겨울 풀꽃과 놀아요』)


호기심이 생기게 하는 책 

독자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방법은 무척 다양하다. 책의 물성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다. 『꼬리야? 꼬리야!』(강혜숙 글·그림 / sang)는 아기 도마뱀이 잃어버린 꼬리를 찾으러 떠난다는 아주 간단한 이야기다. 책은 가로로 긴 판형으로 도마뱀이 꼬리를 잃어버린 장면의 페이지는 3분의 1쯤 잘려져 있다. 도마뱀은 꼬리를 찾는 과정에서 사자와 얼룩말, 악어를 만나고 그때마다 페이지가 조금씩 길어져서 도마뱀이 꼬리를 찾을 즈음에는 잘린 부분이 없는 온전한 종이 위에 도마뱀이 그려져 있다. 자, 이제 페이지의 가로 길이가 늘어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도마뱀의 꼬리는 잘려도 다시 자란다는 기본적인 지식을 책의 물성과 잘 결합해서 아주 독특한 책이 되었다. 책만이 가지는 물성을 잘 이용하는 것은 과학 그림책이 지녀야 할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내 친구 지구』(패트리샤 매클라클랜 글 / 프란체스카 산나 그림 / 미디어창비) 역시 책을 오리고 파내서 종이가 지니는 물성을 십분 이용한 과학 그림책이다. 귀여운 여자아이로 비유된 지구는 작은 생물과 큰 생물, 산과 들과 바다를 사계절에 걸쳐 만나고 보듬고 쓰다듬는다. 지구는 물을 따라가기도 하고 바람이 되어 돌아다니기도 하는데, 커팅 틈과 종이에 뚫린 구멍으로 뒷장이 살짝 보이면 지구가 다음 장에는 어떤 곳을 가게 될지 무척 궁금해진다. 다음 장면이 궁금해지는 호기심이 생기도록 하는 것, 이것 또한 좋은 과학 그림책의 조건 중 하나다. 


비유를 통해 책 읽는 즐거움을 주는 책도 있다. 『기계일까 동물일까』(레티시아 드베르네 글·그림 / 보림)는 기계와 동물을 절묘하게 결합한 책이다. 하늘을 나는 거대한 비행선은 고래로, 낙하산은 해파리로, 카누는 악어로, 소방차는 코끼리로 표현하는 등 현대사회에서 사용하는 기계를 모두 동물로 그렸다. 이는 인간이 기계를 만들 때 지구상에 있는 동물로부터 기능과 형태를 빌려온 것임을 은유로 강조한 것이다. 실제로 과학기술의 발전은 마술처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생물의 다양성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필수 요소인 셈이다. 인간의 창의력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줌과 동시에 모든 인공물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생물을 닮는 것이라는 점을 세련되게 보여준다. 

ⓒ보림(『기계일까 동물일까』)

『갈라파 행성에서 만난 살아나마스의 진화』(조너선 에밋 글 / 엘리스 돌란 그림 / 한울림어린이)는 제목부터 비유가 풍부하고 유머 넘치는 과학 그림책이다. 갈라파 행성은 다윈에 진화론의 개념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생물들이 살던 갈라파고스 군도를 패러디한 것이고, 살아나마스는 살아남았다는 단어에 라틴어 어미를 붙여 만든 가상의 동물 이름이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책이 진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색이 다른 살아나마스는 갈라파 행성에서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 진화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만이 쓰고 그릴 수 있는 책이다. 


남다른 시선으로, 입장을 바꾸는 경험 

누구나 이야기를 좋아한다. 책을 읽는 이유는 그 속에 재미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과학 그림책도 다르지 않다. 다만 유의해야 할 건 그 이야기가 자연이 선사하는 그 자체여야 한다는 점이다. 인간이 이기적인 목적으로 가공한 이야기는 독자의 흥미를 떨어트린다. 재미도 없다. 목적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동물을 의인화한 작품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한마디로 바람직하지 않다. 좋은 과학 그림책이 되려면 동식물과 건물 등 말하는 주체가 무엇이든 그 주체의 입장에서 묘사하고 설명한 것이라야 한다. 다시 말해 독자들이 입장을 바꾸는 경험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한성민 글·그림 / 파란자전거)는 이러한 원칙을 아주 잘 지킨 책이다. 호주에 사는 듀공, 플로리다에 사는 매너티, 북극에 사는 바다코끼리, 남극에 사는 펭귄은 정상적인 상태라면 서로 절대 만날 수 없는 동물이다. 그런데 이 동물들이 만났다. 도대체 이들에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이 책이 훌륭한 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길고 구구한 설명이 없음에도 이 동물들이 기후변화로 집을 잃었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너는 무엇을 할 것이냐고 넌지시 묻는 마지막 장면이다. 물론 여기서 너는 독자를 이른다. 상징적인 그림과 절제된 언어로 지구의 위기를 설명하고 나중에는 그 책임을 독자가 지도록 만드는 아주 좋은 과학 그림책이다.

ⓒ파란자전거(『안녕! 만나서 반가워』)

『청개구리 여행사』(마츠오카 다츠히데 글·그림 / 비룡소)는 오로지 자연에 있는 생물들의 정보만을 이어 붙여 만든 이야기책이다.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다. 청개구리 여행사의 사장이자 직원인 청개구리는 관광을 온 공벌레 부부를 페트병으로 만든 배에 태워 연못 구경을 떠났다 돌아온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다양한 생물을 만나는데, 인간의 덫에 걸린 메기와 붕어는 탈출하도록 도와주지만 물방개에게 잡아먹히는 참개구리는 도와주지 않는다. 이는 강자인 인간과 약자인 동물의 구도 안에서는 약자인 동물을 도와주지만 동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먹이사슬은 생태의 한 부분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독자들은 이 부분에서 정의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덤으로 연못의 생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대상에 지극히 높은 관심을 가진 이들은 소재와 삶을 꿰뚫는 통찰이 생기기 때문에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극적인 이야기는 자연 속에 있다. 저자들은 남다른 시선으로 그것을 본다. 그래서 저자들의 경험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보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런 진솔한 이야기에 끌리고 재미를 느끼며, 읽고 나서도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독서가 기쁨으로 다가와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이것이다. 일단 끌리고 즐거워 다가갈 수 있어야 지식이고 뭐고 얻을 것 아닌가!


이지유_그림책작가, 『이지유의 이지 사이언스』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0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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