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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Dec 01. 2022

이상하고 자유로운 무루

동네에서 만난 작가 - 무루

수원 화성으로 무루 작가를 만나러 가는 길, 마침 작가의 친구들이 동행했다. 소풍을 나온 기분이 들었다. 골목길 안쪽에 자리한 작업실은 흡사 식물원 같았다. 말도 안 되게 큰 식물이 방에 있었고, 지중해의 바닷바람과 햇빛 아래 자라는 로즈마리가 무성했다. 가녀린 꽃으로 장식한 케이크를 앞에 두고 우리는 마주 앉았다.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흘렀고, 반쯤 열어놓은 창문으로 적당한 바람과 빛이 들어왔고, 커피 냄새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인터뷰를 빨리 마치고 화성 주위를 산책하기로 했는데 오래도록 이야기가 그치지 않았다. 가끔은 인터뷰가 이렇게 재미있을 때도 있다. 

그림책을 딛고 자유롭게 살고자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가 나온 후 독자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이 책을 이해했다. 어떤 이는 할머니가 쓴 책인 줄 알았다고 했다(알고 보니 자기 또래 여성이 쓴 책이라 놀랐다고 했다). 다른 독자는 왜 할머니가 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마흔이 얼마나 예쁠 때인데 라고도 말했다). 이제 할머니 소리를 듣는 또 다른 독자는 사놓고 아직 안 읽었다고 했다(할머니 소리가 싫어서일지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30~40대 여성 독자는 이 책에 열광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비혼, 고양이 집사, 식물 애호, 비건까지 새로운 삶의 가치를 받아들인 이들에게 무루는 반가운 이름이다. 

이 책의 부제는 “무루의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다. 

막상 읽어보면 그림책은 그저 디딤돌로만 쓰였을 뿐 그림책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 않다. 그림책을 딛고 이상하고 자유롭게 살고자 한 여자의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무루가 번역자로 참여한 그림책을 소개하는 라이브 방송을 들은 적이 있다. 무루가 그림책 장르에 대한 앎과 사랑이 넘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무루가 쓴 그림책 에세이의 스타일은 의도한 일이다. 이 모든 의문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말이 있다. 새롭다. 


무루는 시키는 대로 무조건 하는 걸 끔찍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당연히 의무적으로 가야 하는 학교가 지긋지긋했고, 겨우 1년여를 다닌 회사 생활은 징글징글하게 맞지 않았다. 그래도 성인이라면 제 밥벌이는 해야 하는 법.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에서 했던 일이 인연이 되어 어린이에게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다. 처음에야 별 성과가 없었다. 다 큰 자식이 굶어 죽을까 걱정이 된 아버지는 주말마다 무루를 차에 태우고 다녔다. 아버지는 차를 몰며 “애야, 이 동네에 아파트가 많구나. 우리 여기에 현수막을 걸자”라고 말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부모의 말이라면 절대 듣는 일이 없는 무루는, 현수막을 걸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그때 현수막을 걸었다면 책에 써먹었을 텐데 아깝다며 깔깔 웃었다.  


수업을 듣던 아이들이 상급학교로 진학하며 의도하지 않았지만 무루는 고3 논술을 지도했던 적도 있다. 사실 문창과를 나왔지만 책읽기에 빠져 지낸 적은 없었다. 뒤늦게 고등학생을 가르치려고 코피를 쏟으며 책을 읽었다. 스파르타식으로 읽기에 몰입했던 시절이다. 그 시절을 제외하면 무루는 시간이 많았고 언제나 딴짓에 매진했다. 시간이 지나자 그동안 했던 딴짓은 모두 무루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사진 찍는 취미는 무루 풍의 독특한 인스타그램 사진이 되었고 아이들과 함께 읽었던 그림책은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수업으로 발전했다. 처음에는 어른들을 위한 인문학 수업을 하다 2017년 성인 그림책 수업을 시작했다. 개인 블로그에 그림책 수업을 하겠다는 공지를 올린 밤, 무루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신의 이야기로 쌓아온 공간을 훼손하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겸연쩍었다. 지나고 보면 적절한 순간이었다. 무루의 말처럼 운이 좋았다. 바야흐로 우리 사회에 그림책을 읽는 어른 독자가 나서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아름답게 삶의 주체로 

수업을 위해 짧은 기간 많은 그림책을 몰아서 만나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누가 말 한마디만 걸어도 눈물이 쏟아졌다. 물이 가득 찬 항아리처럼 몸 안에 차오른 감정이 찰랑거렸다. 이 감정의 특이점을 겪고 나서 무루는 이야기의 세계를 신뢰하게 되었다. 그림책을 결정적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그림책작가는 많다. 특히 장르 문법을 잘 이해한 작가가 선보이는 그림책을 만날 때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비올레타 로피즈는 빼놓을 수 없는 작가다. 그림책 수업을 하며 비올레타 로피즈가 그린 『섬 위의 주먹』이 국내에 출간되었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불렀다. 수업을 듣던 서지우 편집자가 ‘오후의소묘’ 출판사를 시작하며 첫 책으로 출간했다. 정원정 번역가와 무루 작가가 공동으로 이 책을 번역했다. 새로운 책을 번역하는 일을 기꺼워하는 정원정과 공들여 문장을 다시 쓰며 아름다운 언어로 다듬어가는 걸 사랑하는 무루의 만남은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그림책 번역팀’을 만들어냈다. 무루에게는 이상하고 새로운 것이 많다. 


대학을 졸업하고 20여 년을 무루는 안정된 직장도 없이, 결혼도 하지 않고 관심이 가는 일을 기웃거리며 살고 있다. “연애가 뭔가요? 먹는 건가요?”할 만큼 사랑이나 실연조차 무루를 비켜 갔다. 그 긴 시간을 천천히 요령 없이 일하며 일의 요령을 조금씩 쌓아왔다. 젊음이란 조바심이 나야 정상임에도 무루는 일단 시작한 일을 천천히 오래 한다. 조금씩 쌓여가는 시간과 경험을 아낀다. 이런 성장이야말로 힘이 세며 도리어 성급하게 자신을 부풀리고 과장할 때 쉽게 무너진다는 걸 알고 있다. 아마도 첫 책인 『홍차의 나날들』과 두 번째 책인 『엄마의 살림』을 출간한 경험이 가르쳐준 교훈으로 보인다. 


무루가 좋아하는 것은 식물과 고양이와 그림책만은 아니다.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연연하지 않는 삶이 있다. 이대로라면 훗날 무루는 독거노인이 되겠지만 그 또한 자유를 선택한 결과다. 

“자신의 삶을 자기 의지대로 자유롭게 완성해 나가는 것. 생각만 해도 멋진 일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홀로 아름답게 삶의 주체로 살아가는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매료되는 것은.” 

무루의 세계에서 이상하지만 자유로운 할머니는 당연한 귀결이다.


한미화_출판 칼럼니스트, 『동네책방 생존 탐구』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2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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