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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Dec 02. 2022

집 짓기는 마음 짓기

동네에서 만난 작가 - 한은화

국내 유일의 건축 전문기자였던 구본준 기자가 용인에 땅콩집을 직접 지어 살며, 2011년 『두 남자의 집짓기』란 책을 펴낸 적이 있다. 땅콩집이란 한 필지에 두 채의 집을 짓는 듀플렉스 형태의 집을 말한다. 비용을 절반씩 부담해 마당이 있는 집을 지을 수 있기에 출간 후 땅콩집 열풍이 불었다.

한국 사회를 일컫는 말 중에 ‘아파트 공화국’이 있다. 오래되고 낡은 동네를 허물고 고층 아파트를 지으면, 돈이 없는 원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한다. 재개발이라는 방식으로 지어지는 고층 아파트에 대한 문제의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아파트 쏠림현상은 멈출 줄 모른다. 편리성과 환금성이 높은 아파트야말로 최고의 재테크 수단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니 아파트 담장 너머에 사는 건 철없는 행동으로 여겨진다.

땅콩집으로부터 10여 년 후 중앙일보 건축부동산팀 기자 한은화는 종로구 체부동에 한옥을 지어 살며 『아파트 담장 넘어 도망친 도시생활자』라는 책을 펴냈다. 땅콩집 이후 건축을 담당하는 기자가 직접 집을 지어 살며 쓴 또 한 권의 책이 탄생했다. 체부동이라면 익히 아는 동네다. 그 동네 어디에 한옥을 지었다는 것일까 궁금해하며 읽었다. 서문에서 작가는 한옥에 산 지 2년이 되었다는 소회를 밝히며 글을 시작한다. 그럼에도 책을 읽다 보면 ‘정말 한옥을 지을 수 있을까’ 하고 의구심이 든다. 시행착오와 좌절이 이어져 결말을 아는데도 손에 땀이 났다. 책은 ‘도심 속에 좀 다른 집을 짓고 살려고 애쓴 두 사람의 이야기’이자 ‘한옥 건축 미스터리’에 가까웠다.


지옥은 처음이지?

체부동 한옥에는 저자인 한은화와 파트너 최진택이 산다. 일반적으로 연인은 결혼을 계획하고 집을 구하거나 혹은 살며 집을 사고 짓는다. 두 사람은 집부터 짓기로 했다. 원룸이나 투룸을 전전하던 두 사람은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다. 의기투합해 그동안 모아온 돈을 합치고 호기롭게 결혼식장이 될 집 짓기에 나섰다. 두 번째라면 못 했을 고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두 사람이 모은 돈으로 충당해야 하는데 예산보다 시공비가 무지막지하게 늘어났다. 허리띠를 졸라맸다. 커피, 생수도 싸서 다녔고 최진택은 팬티에 구멍이 날 때까지 입었다. 실제로 만난 한은화 기자는 보통 키에 단정한 인상이었다. 이 사람의 어디에서 이런 지독한 뚝심이 나올까 싶었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한옥을 소망한 게 아니라 집을 찾다 보니 한옥에 이르렀다. 마당 품은 집을 물색하던 중 한옥보존지구로 묶인 서촌에서 지붕이 내려앉은 폐가를 발견했다. 집값도 저렴했고. 한옥보존지구이니 높은 빌딩이나 아파트 재개발이 될 리도 없어 마음에 들었다. 덜컥 계약을 했지만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골목이 있는 서촌은 건축법 수립 이전 생겨난 동네다. 새로운 법에 따라 집을 짓는 일은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했다. 가장 먼저 기함한 일은 맹지를 산 것. 멀쩡하게 집 앞으로 난 길이 있건만, 그 길은 소유주가 있었다. 길 주인의 토지사용승낙서를 받거나, 1975년 건축법 제정 이전부터 도로로 사용되었다는 증명이 필요했다. 이어 설계사무소에서 실측해보니 24.6평인 줄 알고 산 땅이 18평밖에 되지 않는다는 황당한 사실을 알았다. 오래된 동네는 집들이 서로의 땅을 먹고 먹힌다지만 차이가 너무 심했다.

가까스로 시공 단계에 이르렀지만 안심은 일렀다. 협소한 공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땅을 파서 지하 공간을 만들기로 가닥을 잡았다. 한데 연륜 있는 대목수가 집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공사를 할 수 없는 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골목길인 데다 주변에 오래된 집이 붙어있는데 대수선이 아니라 다시 짓고 지하까지 판다는 계획은 도저히 실현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잘못했다가는 옆집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결국 크레인이 등장했다. 땅을 파는 데 필요한 작은 굴착기도 크레인이 들어서 집 안으로 옮겼다. 이렇게 마당이 있는 한옥을 짓는 데 2년여의 지옥 같은 시간이 흘렀다.


나를 깨닫는 집 짓기

집을 짓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집을 다시 팔아라”라고 했다. 그만큼 불가능한 집짓기였는데 포기하지 않은 건 이 집이 두 사람의 결혼식장이기 때문이다. 보통 성격도 살아온 과정도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살자면 죽기 살기로 싸우는 시기를 거친다. 한은화와 최진택은 집을 짓는 2년 동안 산전수전을 겪으며 평생 살아갈 파트너십을 확인하고 갈등 상황에 대처하는 법도 익혔다. 최진택의 말처럼 ‘집짓기는 마음 짓기’였다.

한은화는 고생스러운 집 짓기를 통해 배운 것들에 대해 말했다. 집 짓기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한 일이었다. 다 만들어진 아파트에는 몸만 들어가면 된다. 반대로 집을 지으려면 내가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부엌을 어디에 둘지 방이 몇 개가 필요한지, 지하 공간을 어떻게 쓸지 등을 결정해야 한다. 모두 무엇이 나에게 중요한지,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를 곰곰 생각해야 나오는 결론이다. EBS의 「건축탐구 집」을 즐겨본다.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의 사연과 집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볼 때마다 집 짓고 사는 사람들은 말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집이란 나에게 무엇이며, 나는 이 집을 통해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끊임없이 숙고해야 집을 지을 수 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한은화는 ‘집이란 취향의 결정체’라고 말했다. 집 짓고 사는 과정을 통해 나는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가를 깨달았다고 했다.


건축부동산 기자가 쓴 책이니 집 짓는 과정만 담긴 것은 아니다. 도시재생이나 한옥에 관한 고민도 담았다. 산업 구조가 변하고 환경이 노후화되며 필연적으로 도시는 낡는다. 예컨대 영국 산업혁명 시기 템스강 주변에는 공장과 물류 창고가 많았다. 그러나 배가 하던 일을 기차와 자동차가 대신하며 공장은 문을 닫고 사람들은 떠났다. 템스강 근처 방치된 화력발전소를 허물지 않고 개조해 만든 것이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다. 영국뿐 아니라 오래된 도시는 비슷한 재생의 고민을 안고 있다. 공장이나 발전소가 아닌 서울의 오래된 동네를 재생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개인의 욕망이 얽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집을 짓다 보니 마음도 짓고 도시를 짓는 일까지 고민하게 되었다. 살며 집은 지어봐야 하나 보다.


한미화_출판 칼럼니스트, 『동네책방 생존 탐구』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2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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