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독서 Dec 07. 2022

매일매일 새롭고 하얀 하루

아피야의 하얀 원피스

제임스 베리 글 / 안나 쿠냐 그림 / 김지은 옮김 / 32쪽 / 13,000원 / 나는별



아름다운 검은 피부를 가진 소녀 아피야는 하얀 원피스를 가지고 있어요. 그 원피스는 하루하루 만나는 것들이 그대로 그려지는 신기한 원피스입니다. 아피야의 원피스에는 해바라기나 장미꽃이 가득 담기기도 하고, 나비와 새들의 날갯짓, 때로 동물들이나 물고기가 새겨지기도 합니다. 아침이 되면 원피스는 감쪽같이 하얘져서 다시 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하얀 종이 같았지요. 날마다 새롭고 멋진 일들이 일어나고, 그 일들이 하얀 원피스의 무늬가 되고, 아침이면 다시 하얗게 되어 또 어떤 새로운 무늬가 새겨질까 기대하는 나날들이라니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고 설렙니다. 


그런데 왜 이 밝고 아름다운 그림책을 보면서 숀 탠 작가의 『빨간 나무』가 떠올랐을까요? 어두운 낙엽이 가득한 방을 빠져나가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기계 같은 세상 속에서 희망이 전혀 없고 점점 나빠지기만 하는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소녀의 이야기를 왜 떠올렸을까요? 

두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피야의 침대 위로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난 그림은 『빨간 나무』의 마지막 장면과 자연스레 이어집니다. 『빨간 나무』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희망처럼 붉게 빛나는 나무 한 그루가 소녀의 방 안에 자라나 있거든요. 이 두 그루의 아름다운 나무들도 언젠가 시든 잎을 떨굴 테고, 아피야와 소녀는 『빨간 나무』의 시작처럼 잿빛 낙엽 가득한 방을 빠져나오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피야는 새롭고 멋진 하루를 보낼 수도 있겠지만, 『빨간 나무』의 소녀처럼 힘겹고 외롭고 단절된 하루를 보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아피야처럼 매일매일 멋지고 행복한 날들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거라는 불안이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나 저를 『빨간 나무』로 데려다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은  힘들고 슬프거나 화나는 일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니까요. 즐겁고 설레다 보면 언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까 불안한 마음이 들곤 하니까요.

그럼에도 『아피야의 하얀 원피스』는 우리에게 설렘의 불안보다 안정된 위로의 손길을 건넵니다. 아피야가 힘든 일로 가득한 하루를 보낸다면 아피야의 원피스에는 어둡고 칙칙한 얼룩이나 슬프고 외로운 빛깔의 색들이 칠해지겠지만, 아침이 되면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다시 하얀 원피스로 돌아와 오늘은 어떤 무늬가 새겨질까 기다리고 있지 않겠어요. 다행입니다. 기쁜 일들도, 슬픈 일들도, 어제의 무늬로 저장해두고 오늘은 다시 하얀 도화지 같은 하루에 새로운 무늬를 수놓을 수 있어서요. 그래서 『아피야의 하얀 원피스』는 읽을수록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림책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과 더불어 감추어진 이면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볼 수 있으면서, 따뜻한 희망이 샘솟는 그림책입니다. 


책의 그림을 그린 안나 쿠냐는 브라질의 그림작가라고 합니다. 스무 권이 넘는 책에 그림을 그렸다는데 이 책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첫 그림책입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나라, 다양한 작가들의 이야기가 많이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수이_책방짙은 대표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2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작가의 이전글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은 뭘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