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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Dec 09. 2022

결국,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맥 바넷 글 / 카슨 엘리스 그림 / 김지은 옮김 / 44쪽 / 14,000원 / 웅진주니어



책방에서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질문을 마주한다. 예를 들어 “선생님은 나이가 몇 살이에요?” 같은 질문 말이다. 이런 질문에 나는 잠깐 멈칫한다. ‘나이를 사실대로 말해? 말아?’ 찰나의 고민을 뒤로하고 언제나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나는 너희 부모님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아이들은 이때부터 나를 시험하기 시작한다. 무슨 띠냐고 물으면서 ‘자축인묘진사오미’를 읊조리는 아이도 있고 어떤 때는 88올림픽 이야기에 꼬리를 물고 “그때 선생님은 몇 학년이었어요?”라며 덫을 놓듯 묻는 아이도 있다. 이런 실랑이를 하다 보면 우리는 결국 300살이니 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푸하하 웃게 된다.


누군가가 나에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떨까. 최근의 나는 ‘질문과 대화’가 제일 중요하다고 믿는다. ‘배우는 인간’은 좀더 순응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지는 반면 ‘질문하는 인간’은 주도적으로 느껴진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수많은 질문을 던져야 하고, 또 세상이 정해놓은 답이 아닌 나만의 답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내가 요즘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다. 『사랑 사랑 사랑』 이야기의 발화점도 질문이다.


“사랑이 뭐예요?”


그동안 내가 아는 그 누구도 이런 질문을 한 어린이나 어른은 없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라. 모든 문화와 콘텐츠는 ‘사랑’을 말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창작물은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전부 해석이 가능하다. 책 속 ‘나’는 사랑에 대해 질문한다. 답하기 어렵다던 할머니는 “세상에 나가보렴. 그러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의 집을 떠나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사람들은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한다. 어부는 물고기, 연극배우는 박수갈채, 고양이는 밤, 목수는 집, 농부는 씨앗, 병사는 칼날이라고 한다. 사랑의 정의는 제각각 이어진다. 결국 그렇다 할 답을 얻지 못한 채 나는 할머니와 살던 우리집으로 돌아온다. 불빛이 환하고, 밥 짓는 냄새가 나고, 강아지가 반갑게 짖어대는 곳. 신발을 벗고 발가락을 구부려 흙에 파묻을 수 있는 곳. 나는 결국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이 책은 다 읽고 나면 한 번은 내 품에 껴안게 되는 책이다. 내가 평생 사랑한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나서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책에 나오는 꽃 그림이 옛날 우리집에 피었던 꽃과 똑 닮아서인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나는 키도 마음도 성장해나간다. 그 성장은 할머니의 늙음도 함께 따라온다는 뜻이다. 책을 여러 번 읽었지만 이젠 면지만 봐도 사랑이 번지듯 전해져 눈물이 난다. 할머니는 허리가 굽었다.

“네가 사랑을 어떻게 알겠니”라는 말로 나에게 응수하는 그들은 자기가 만든 틀 안에서만 사랑을 안다. 결국 사랑의 본질에 이르게 하는 힘은 세상에 나갈 수 있게 만드는 할머니의 보드라운 포옹이다. 또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줄 아는 솔직함과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섬세한 권유다. 그 문장의 행간에서조차 사랑이 느껴지니 대단한 책이다. 두고두고 봐야겠다. 내 안에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마다 말이다.


고선영_작가, 악어책방지기, 『감정도 디자인이 될까요?』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2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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