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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Dec 12. 2022

있는 그대로의 나

코 없는 토끼

아나벨 라메르스 글 / 아네크 지멘스마 그림 / 허은미 옮김 / 40쪽 / 13,000원 / 두마리토끼책



그런 날이 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내 결점을 문득 알아버린 날. 물론 기분은 아주 별로다. 고슴도치를 우연히 만난 날 토끼가 그랬다. 고슴도치가 “넌 도대체 누구?”라며 물었을 때, 토끼는 생각 없이 대답했다. 

“나? 그냥 토끼야.” 

그런데 고슴도치가 한마디 중얼거리며 떠난다. 

“아닌 것 같은데?”

‘거참 이상한 고슴도치네’ 하고 지나칠 수 있을 뻔했는데 하필 그때 토끼를 본 아기 고양이가 엄마 고양이에게 묻는다. “엄마, 저것 봐요! 저게 빠빠구리예요?” 잠시 후 나무 꼭대기에서 저를 보며 킬킬대는 다람쥐들까지 목격한 토끼의 기분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토끼는 속상한 마음에 호숫가로 찾아가 의기소침한 얼굴로 물에 비친 자신을 본다. 남들 눈에 내가 토끼로 보이지 않는다면, 그들 생각에 내가 토끼가 아니라면 나는 정말 뭘까?

고민하던 토끼는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고 말았다. 토끼에겐 코가 없다! 모두에게 있는 코가 토끼에게만 없다는 것. 코가 없는 얼굴은 불완전하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지금까지 버젓이 들고 다니던 자기 얼굴이 너무나 이상해 보였다. 부끄러워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날 이후 토끼는 외딴곳만 찾아다녔다.

누구에게나 “나는 정말 뭘까?” 하는 토끼의 질문이 가슴에 팍 꽂힐 때가 있다. 누군가가 나를 의심하고 무시하거나 나의 결점을 끄집어내 비난할 때, 한바탕 풍파가 마음을 지나가면 밖으로 향하던 분노가 슬그머니 내 안으로 파고든다. 

나는 정말 그것밖에 안 되는 걸까? 나는 정말 멍청한 걸까? 나는 정말 나쁜 사람일까? 

한번 시작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음은 점점 어둡고 습한 곳으로 가라앉는다.

우리는 때로 온갖 고난과 위험을 이겨낸 강인한 존재지만, 동시에 다른 이가 무심코 던진 몇 마디 말에 자존감이 뿌리째 흔들리며 자기의 가치를 의심하는 나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평안한 삶을 살자면 모두로부터 귀를 닫고 살아야겠으나, 토끼도 나도 당신도 누군가 붙여준 이름으로 지금껏 살아가고 있으니 남들의 시선에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토끼가 이 말을 기억하길 바란다. 완전무결한 존재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누구에게나 불완전함과 결핍이 있다. 우리 대부분은 토끼에게 없는 ‘코’를 가지고 있을지언정, 누구도 불완전함과 결핍 없이 살아가는 이는 없다. 불완전함이 비웃음을 사야 하는 이유라면 비웃음 받지 않을 이도 없다.

그러니 토끼가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나만큼 다른 이들도 불완전함을 갖고 있으니 그것을 마주할 때마다 너그럽게 이해해주면 좋겠다. 더불어 나의 불완전함을 꼬집어 나를 평가하려는 이들의 말이라면 토끼 귀를 척척 닫아두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토끼의 행복한 결말이 궁금한 독자들은 꼭 이 멋진 책의 책장을 열어볼 것을 권한다.


위원석_딸기책방 대표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2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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