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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Dec 16. 2022

오늘 우리는

다른 공간, 서로 연결된 엄마와 아이들의 하루

오늘 우리는

주연경 글·그림 / 40쪽 / 15,000원 한솔수북



『오늘 우리는』은 어린 남매를 할머니 손에 맡기고 출근을 서두르는 엄마의 이야기로 출발합니다. 마치 옛이야기 『해님 달님』에서 오누이를 깊은 산속에 남겨두고 산 너머로 일하러 가는 엄마가 나오는 것처럼 말이죠. 사실 이 책의 기획은 10년 전 영국에서 구상하고 만들었던 ‘Finding Neverland’라는 제목의 더미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여자아이와 젊은 여성이 등장하는 이야기로 내 안의 아이를 찾는 여정을 담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책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와 그림들이었지요. 당시 10년간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그림책작가를 꿈꾸면서 내 안에서 이야기 소재를 찾다 보니 나를 투영한 직장 여성을 주인공으로 했었다면 그 후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엄마의 삶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지금 책의 모습을 갖추게 된 배경에는 2019년 「‘해님 달님’을 위하여」 전시를 통해서입니다. 북디자이너 정병규 선생님의 지도하에 『해님 달님』을 관통하는 주제인 어머니의 마음을 각자의 그림으로 풀어낸 그룹전이었습니다. 전시 후 그동안 묵혀둔 ‘Finding Neverland’를 다시 들여다보았고 두 가지 이야기가 동시적 배열로 되어있는 구조 위에 주인공인 직장 여성과 여자아이를 엄마와 어린 남매로 수정해 보았습니다. 전 세계에 보편적으로 퍼져있는 옛이야기 모티브를 가져와 전체 흐름을 정비하면서 다소 모호했던 원래 서사의 불완전한 틈새가 메워지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한 여성과 아이의 이야기가 엄마와 남매의 이야기로 바뀌자 바다로 나아가고 해적을 만나는 장면들은 숲과 호랑이에게 쫓기는 설정으로 자연스레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해님 달님’ 뿐만 아니라 성경 ‘요나 이야기’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옛이야기의 잠재된 서사를 끌어와 변주할 수 있는 데에는 이야기는 고정된 것이 아니고 매번 이를 듣거나 읽는 아이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옛이야기의 특징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왼쪽과 오른쪽 페이지로 나뉘어 두 가지 이야기가 펼쳐지는 구조를 만들게 된 이유는 영국에서 그림책 구상을 할 때 책이라는 물성 자체에 대한 주목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매체로서의 책은 앞장과 뒷장이 있고 이것이 다시 접지선에 의해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마주 보는 페이지의 중심부를 서로 다른 영역을 나누는 일종의 경계선으로 보고 같은 책에서 두 가지 이상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어요. 따라서 엄마의 하루와 아이들의 하루를 왼쪽과 오른쪽 페이지로 나뉘어 대비시켰습니다. 존 버닝햄의 『셜리야, 물가에 가지 마!』 『셜리야, 목욕은 이제 그만!』과 데이비드 맥컬레이의 『검정과 하양』을 통해서도 볼 수 있는 이러한 독특한 이야기 방식은 엄마와 아이들의 연결된 듯 분리된 서사를 담아내는 데 효과적으로 보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왼쪽은 일상적인 현실 세계이며 안정감을 주는 공간이라면, 오른쪽은 상상의 세계로 위험과 모험의 상황 속으로 이동해가는 공간이라는 시각 문법에 근거해 왼쪽 페이지에 엄마의 일상을, 아이들의 모험은 오른쪽 페이지에 각각 배치시켰습니다. 또한 두 개의 장면이 마주 보는 구조로 되어있는 펼침면은 시각적인 암시와 대칭적 요소를 의도적으로 넣어 두 이야기의 연결을 꾀했습니다.

이 책에서 무게 중심의 큰 축인 새를 타고 날아가는 장면에서는 아코디언 식으로 접힌 4쪽 펼침을 통해 판형을 확장시켰습니다. 이는 멀리 날아가는 풍경의 연출을 위한 장치임과 동시에 책이기 때문에 가능한 형식상의 한 요소로 선택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작업의 바탕이 된 리소 프린팅은 판화 느낌의 질감을 표현할 수 있는 인쇄 기법입니다. 따라서 겹침과 우연의 효과로 인해 다채로운 이미지가 만들어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리소 프린팅의 결과물이 주는 독특한 느낌이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이 책의 내용과 어울리는 표현 방식이라고 생각해, 전작 『오케스트라』에 이어 또다시 리소 프린팅을 이용해 작업했습니다.

『오늘 우리는』을 만들면서 「‘해님 달님’을 위하여」 전시 주제였던 엄마의 마음을 떠올렸습니다.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엄마의 눈에 저는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입니다. 항상 자식 걱정과 함께 잔소리를 늘어놓으시지요. 저도 아이를 걱정하는 엄마가 되고 보니 엄마의 마음이 조금씩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엄마의 걱정하는 마음이 저와 가족의 일상을 지켜주고 있다는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은 엄마의 이 마음을 모르겠지요? 제가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요. 


이 책은 놀 때는 노는 것에 진심인 아이들과 바쁜 일상 틈틈이 아이들을 걱정하는 엄마, 서로 다른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는 이들의 하루를 비교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응원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어요. 또한 아이들에게는 유쾌하고 즐거운 상상을, 한때 어린아이였던 어른들에게는 어린 시절 나와 엄마를 추억하는 매개물이 되길 바랍니다.



주연경 작가는 한국과 영국에서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습니다. 첫 그림책 『오케스트라』로 2017년 볼로냐 국제어린이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와 2019년 국제 일러스트레이션 어워즈에서 Highly Commended에 선정되었습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2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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