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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Dec 30. 2022

세상은 아름답고 신기하고 놀라워라!

기획자 노트 - 창비 ‘과학과 친해지는 책’ 시리즈

동네 아파트의 윗집과 아랫집에 허물없이 드나들곤 했던 어린 시절, 집집마다의 개성 있는 책장을 탐색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떤 날은 멋진 주인공 그림이 가득한 세계 명작에 반했고, 또 어떤 날은 60여 권에 달하는 만화 역사서를 허겁지겁 읽으며 내일도 모레도 이 책장에 마음대로 접근할 수 있는 옆집 친구를 부러워했다. 개중에서도 각종 과학 지식을 올컬러 인쇄로 망라한 전집은 정말로 훌륭해 보여 부모님에게 똑같은 걸 사 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난다. 내게 손톱만큼 작은 나비가 얼마나 정교한 더듬이를 지녔는지 알려주었던, 작고 작은 인간이 감히 태양계의 끝을 향해 가고 있음을 가르쳐주었던 그때 그 시절의 과학책. 세상을 향한 나의 작은 경외심과 호기심은 유년의 독서 경험을 풍부하게 채워주었던 어린이 과학 논픽션과 그 책을 출판해준 관계자들, 거리낌 없이 자신들의 책장을 보여준 이웃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생명의 시작에서 우주의 끝까지 

올컬러 전집만으로도 황홀해했던 30년 전의 어린이와 달리, 오늘날 어린이 독자들은 수많은 정보를 알차게 망라한 논픽션 단행본을 정말로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오히려 홍수처럼 넘쳐 나는 신간 사이에서 지식을 올바르게 정리하고 가공한 책을 선별해야 한다는 점에서, 믿을 만한 도서 목록을 갖추는 일은 더욱 까다롭고 중요해졌다. 그러한 독자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만들어진 창비 ‘과학과 친해지는 책’은 ‘재미난 이야기 속에 담긴 과학의 원리’를 추구하는 어린이 과학 논픽션 시리즈로, 2006년부터 현재까지 26권의 책을 출간하였다. 

적지 않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시리즈를 빛낸 대표 저자를 떠올리자면 김성화·권수진 작가와 이지유 작가를 감히 꼽을 수 있겠다. 어릴 적부터 친구 사이였던 김성화·권수진 작가는 30년 가까이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지식 교양서를 써온, 그야말로 국내 어린이 논픽션 창작의 기반을 다지고 그 수준을 탄탄히 끌어올린 일등 공신이다. 대표작 『박테리아 할머니 물고기 할아버지』는 ‘과학과 친해지는 책’ 시리즈의 첫 번째를 장식한 책으로,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생명 진화의 역사를 친근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별똥별 아줌마’로 널리 알려진 이지유 작가는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어린이 과학 큐레이터다. 대표작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우주 이야기』는 우주와 관련해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배우고, 나아가 우주 질서를 파악하는 힘을 길러주는 천문학 교양서다. 이지유 작가의 글은 두 발로 뛰며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생생한 현장감과 지식 정보를 조화롭게 엮어내는 특유의 매력이 일품이다. 시리즈의 두 대표작이 생명의 시작과 우주의 끝, 즉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지식의 처음과 마지막을 가리키고 있는 점이 상징적이고 흥미롭다. 


호기심과 두근거림을 선사하는 과학책 

‘과학과 친해지는 책’ 시리즈는 독자들이 작은 일상 속에서도 지적 호기심을 느끼고 새로운 발견을 추구하는 이로 자라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구체적인 지식을 암기하는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딱딱한 공식이나 어지러운 용어의 목록이 아니라, 나와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규칙과 다채로운 존재들에 둘러싸여 있는지를 감각할 줄 아는 힘이다. 

『수원 화성에서 만나는 우리 과학』(김연희 글, 무돌 그림)은 수원 화성이 동서양의 건축 기술을 활용한 과학 도시이자 정조의 효심과 애민 정신이 담긴 계획도시임을 알려주는 책이다. 독자들은 화성이 만들어진 과정을 따라가면서 무심히 지나치던 성벽의 벽돌 하나에도 옛사람들의 노고가 담겨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별빛유랑단의 반짝반짝 별자리 캠핑』(별빛유랑단 글, 나수은 그림)은 천문학의 기초와 계절별 별자리 관측 방법을 알려주는 본격 천문학 안내서로, 매일매일 달라지는 밤하늘의 별빛에 새로운 설렘을 더해주기에 충분한 책이다. 

ⓒ나수은 『별빛유랑단의 반짝반짝 별자리 캠핑』 중에서

『만나고 싶은 북한 동물 사전』(임권일 글, 이곤 그림)은 북한에 사는 멸종위기 동물을 소개하는 책으로, 우리 자연환경과 동물을 눈여겨보는 자세를 키우고 남북 평화의 생태적 가치까지 깨달을 수 있도록 돕는다. 각자 담아낸 정보의 분야는 다르지만, 한 권 한 권이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바는 모두 같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쌓아온 과학 유산에는 얼마나 많은 마음과 정성이 들어가 있는지, 나아가 드넓은 자연과 우주에는 얼마나 신비롭고 소중한 존재들이 많이 숨어있는지 말이다. 과학은 우리에게 그렇게 호기심과 두근거림을 선사한다.

ⓒ이곤 『만나고 싶은 북한 동물 사전』 중에서

더 많은 어린이 논픽션 작가를 만나길 바라며 

‘과학과 친해지는 책’ 시리즈가 20년 가까이 양질의 책을 펴낼 수 있었던 것은 올해로 제27회 수상자를 기다리고 있는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제도 덕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총 20권의 기획 부문 수상작을 배출한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는 대상 수상 시 일천만 원의 고료(선인세)와 볼로냐 국제아동 도서전 참관 및 유럽 문화 기행 특전을 제공하는, 사실상 어린이책 출판계에서 유일무이한 논픽션 원고 공모다. 과학의 아름다움을 어린이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이 세상이 더욱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 예비 저자들과 함께 새로운 ‘과학과 친해지는 책’을 출간할 수 있기를 꿈꾸어본다. 


한지영_창비 어린이출판부 편집자


이 콘텐츠는 <월간아침독서> 2022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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