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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Jan 11. 2023

상상의 크기만큼 자라는 아이들

그림책방 주인이 추천하는 그림책

기차 여행

이숙현 글 / 토마쓰리 그림 / 40쪽 / 13,000원 / 다림



오랜만에 영화 「비포 선라이즈」를 보았다. 영화는 빠르게 지나가는 기찻길과 창밖 풍경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시끄러운 부부를 피해 자리를 옮긴 셀린은 말이 잘 통하는 제시를 만나게 되고 빈에서 내려 아름다운 하루를 보낸다. 다음 날 아침,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기차를 타고 달콤한 잠에 빠져든다. 기차와 여행은 이렇듯 현실에서 잠시 멀어져 우리를 달콤한 상상으로 이끈다. 코로나 시대 속에서 우리는 여행을 떠나는 상상을 하며 또는 여행을 떠났던 과거를 추억하며 버텨왔다. 코로나가 끝나면 가장 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아마 여행이지 않을까. 시인 정지용이 여행을 ‘이가락(離家樂)’이라 한 것처럼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을 우리는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기차 여행』은 글을 쓴 이숙현 작가가 어린 두 딸과 함께 구미에서 안양, 할머니 집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다녔던 기억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시절 무궁화호를 타고 기차 안에서 그림도 그리고, 색칠 공부도 하며 두 딸과 시간을 보낸 작가는 그러다 지겨워지면 “기차 안이 ○○이라면?” 하고 상상 놀이를 즐겼다. 어린 두 딸의 상상으로 기차 안은 아이스크림 가게가 되었다가 도서관도 되었다. 글작가가 품고 있던 이야기 씨앗이 토마쓰리 작가의 그림과 만나 『기차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두 작가의 첫 그림책이 되었다. 

『기차 여행』에는 바다로 여행을 떠나는 가족이 등장한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기차를 타는 가족. 자매는 그림도 그리고 가위로 종이도 자르며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눈다. 엄마, 아빠는 곧 쿨쿨 단잠에 빠지고 그때 동생이 쉬가 마렵다고 한다. 언니는 부모님을 깨우지 않고 동생 손을 잡고 일어선다. 달리던 기차가 터널로 들어가고 놀란 자매가 부둥켜안고 소리를 지르자 지나가던 역무원이 기차가 숲을 달리고 있다며 다정하게 안내한다. 그때부터 자매의 상상이 시작된다. 


『기차 여행』 속 자매가 상상의 시간을 펼치는 동안 부모의 개입은 없다. 상상의 세계 속에서도 부모는 입을 벌리고 가장 편한 자세로 잠을 자고 있다. 목적지에 도착해 그새 잠든 아이를 깨우며 건네는 아빠의 다정한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부모가 아이들의 상상 세계를 얼마나 인정해주는지를 말이다. 김지은 평론집 『거짓말하는 어른』(문학동네)에서는 “어린이는 어른이 없는 사이에 자란다”고 한다. 기차 여행을 하는 동안 자매는 상상의 크기만큼 자라났다. 


책방에선 곧 이숙현 작가와 함께 기차 여행을 떠난다. 각자 사는 곳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역에서 만난다. 카페에 모여 기차 여행 동안 꿈꿨던 상상을 글로 쓰는 시간을 가진다. 그날을 기다리며 푹푹 찌는 찜통더위를 이겨내고 있다. 얼마나 즐거운 기차 여행이 될까? 상상만으로도 벌써 즐겁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것. ‘여행’이란 단어는 입밖으로 내는 순간부터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거기에 ‘기차’가 붙어 완벽한 시간을 만들어낼 것이다. 『기차 여행』과 함께 올여름 상상의 여행을 꼭 떠나보길 바란다.


하정민_그림책산책 책방지기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2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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