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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Feb 01. 2023

새 학기 친구의 조건

주제별 어린이책 큐레이션 - 친구

따지고 보면, 친구끼리 마음이 상하는 건
그리 큰 문제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상대방이 내 마음을 몰라주고,
내 기대와 다른 행동을 하기 때문에 생기는 거지요.

안녕하세요. 여러분과 만나 그림책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기쁩니다. 그림책을 읽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번에는 주제별로 그림책을 찾아 읽어보도록 할게요. 2월에는 ‘친구’란 주제로 그림책을 골라보았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누구나 새 친구를 만날 생각에 기대와 걱정을 하기도 하는데요. 친구 관계는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일 거예요. 아이들뿐일까요? 어른이 되어서도 친한 친구는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소중한 존재이지요. 모두들 멋진 친구가 있었으면 하고, 친한 친구를 사귀고 싶어 하니까요. 그럴 때 읽어보면 좋을 그림책을 함께 읽어봅시다. 


자기답게 그리고 따로 또 같이 

가장 먼저 살펴볼 그림책은 『파랑이와 노랑이』(레오 리오니 글·그림 / 파랑새)입니다. 이 작품은 친구와 친하게 지내면서도 자기의 개성을 잃지 않고 ‘자기답게’ 산다는 게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하지요. 친구란 어떤 관계여야 하는가를 표현한 고전적인 작품인데요. 내용을 한번 살펴보기로 해요. 파랑이와 노랑이는 가장 친한 친구예요. 둘이 만나 신나게 같이 놀다 보니, 둘 다 그만 초록이가 되고 말아요. 초록이가 된 파랑이가 집으로 가자, 파랑이 엄마 아빠는 “넌 우리 파랑이가 아냐. 넌 초록이잖아” 합니다. 초록이가 된 노랑이가 집으로 가자 노랑이 엄마 아빠도 “넌 우리 노랑이가 아냐. 넌 초록이잖아!” 합니다. 파랑이와 노랑이가 슬퍼서 눈물을 잔뜩 흘리자, 둘은 다시 파랑이와 노랑이가 되지요. 

ⓒ파랑새(『파랑이와 노랑이』)

이 그림책은 색의 혼합 현상을 개인의 ‘아이덴티티’라는 주제와 멋들어지게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친한 친구와 닮고 싶어 하는데요. 이러한 서로 닮음은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이로 인해 자기를 잃게 되면 부정적이 되지요. 레오 리오니는 이 작품에서 자기답게 개성을 지니면서도 남과 어떻게 조화롭게 지낼 수 있는가를 질문합니다. 표현 방식도 주목할 만한데요. 공간과 인물을 추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독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합니다. 집, 교실, 동네 여기저기, 산과 굴속, 파랑이와 노랑이의 여러 친구들, 엄마 아빠의 모습은 인종과 국적과 연령이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인종, 어느 나라, 어느 연령대의 독자라도 자기와 동일시하면서 이 그림책을 읽을 수 있지요. 


두 번째 살펴볼 그림책은 『똑, 딱』(에스텔 비용 스파뇰 글·그림 / 여유당)입니다. 어느 봄날 태어난 똑이와 딱이는 늘 붙어 다니는 단짝 친구예요.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깬 똑이는 깜짝 놀랐어요. 단짝 친구 옆에 딱이가 없었거든요. 똑이는 딱이를 찾아다니다가 깜짝 놀랐어요. 딱이가 다른 새들하고 신나게 하늘을 날면서 웃고 있는 거예요. 똑이는 슬퍼하다가 자기 주변에서 환상적인 꽃이 자라는 걸 보게 되었어요. 얼마 뒤, 딱이가 똑이를 찾아왔어요. 딱이는 자기가 발견한 것을 똑이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했지요. 이제 둘은 제각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해요. 그러고는 둘이 만나 서로 즐겁게 자기가 했던 것들을 들려주지요. 

ⓒ여유당(『똑, 딱』)

이 작품은 ‘따로 또 같이’라는 주제를 멋지게 표현하고 있어요. 주인공 캐릭터를 보면, 똑이는 덩치가 크고 날개가 짧아요. 땅을 걸어 다니는 새인 거죠. 이에 비해 딱이는 작아도 하늘을 잘 나는 새예요. 똑이와 딱이는 이처럼 생긴 모습도 아주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전혀 달랐지만, 처음부터 꼭 붙어있는 바람에 정말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잘 몰랐어요. 딱이가 똑이를 떠나 자기가 좋아하는 비행을 하기 시작하자, 똑이는 슬퍼합니다. 하지만 그동안에 똑이는 자기가 식물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게 되지요. 이 작품은 바람직한 친구란 상대방을 나와 똑같은 존재로 만드는 게 아니라, 각자 서로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하는 것임을 잘 보여줍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혼자 있는 시간은 외로운 시간만이 아니라 자신과 남을 발견하는 멋진 시간이기도 할 거예요. 파란색 새 두 마리가 알려주는 바람직한 친구의 조건은 서로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만화를 연상하게 하는 자유로운 선, 맑고 선명한 색채가 작품의 의도와 잘 조응하는 멋진 그림책입니다. 


다툼과 화해, 서로 돕는다는 것 

세 번째 살펴볼 그림책은 『친구가 미운 날』(가사이 마리 글 / 기타무라 유카 그림 / 책읽는곰)입니다. 앞의 두 작품이 바람직한 친구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편적인 상황으로 그리고 있다면, 이 작품은 구체적인 사건과 인물을 통해 친구 사이의 현실을 그리고 있습니다. 먼저 내용을 살펴볼까요? 하나와 유우는 친한 친구예요. 그렇지만 두 사람은 성격이 아주 다르지요. 유우는 얼른 결정하고 후다닥 하는 성격인데, 하나는 뭐든지 오래 생각하고 좀 소심한 편입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다 못 그린 그림은 집에서 그려오기로 했어요. 둘이 같이 그림을 그리는데, 하나가 새 크레용을 꺼내지요. 새 크레용 중에서 흰색 크레용을 유우가 빌려달라고 하자, 하나는 거절하지 못하고 빌려줍니다. 그런데 유우는 하나의 흰색 크레용을 거의 다 쓰고, 부러뜨리기까지 하지요. 이 일로 인해 두 사람은 서로 말을 안 하게 되는데요. 그러다가 유우 그림을 미술대회에 내보내겠다는 선생님의 말씀 때문에 두 사람은 어렵사리 화해를 하고, 예전처럼 친하게 지내게 되지요. 

ⓒ책읽는곰(『친구가 미운 날』)

이 작품은 성격이 다르면 친한 친구라도 얼마든지 오해가 생기고 사이가 벌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크레용 하나 때문에 며칠이나 말을 안 하는 두 사람을 보면 답답해져서 “얼른 화해해라, 화해해!” 하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됩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친구끼리 마음이 상하는 건 그리 큰 문제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상대방이 내 마음을 몰라주고, 내 기대와 다른 행동을 하기 때문에 생기는 거지요. 그림에서 두 아이의 표정을 보면, 어찌나 감정 표현을 잘했는지 금방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남은 나와 다르다는 것, 친구라도 서로 배려해야 한다는 것, ‘다툼이 생기면 진심으로 화해해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볼 그림책은 『길 아저씨 손 아저씨』(권정생 글 / 김용철 그림 / 국민서관)입니다. 윗마을 길 아저씨는 다리가 불편하고 아랫마을 손 아저씨는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손 아저씨는 구걸하러 나갔다가 방 안에서만 사는 손 아저씨 이야기를 듣고 그를 찾아가지요. 두 사람은 함께 구걸을 다니다가 차츰 마을의 일손을 돕게 되고, 그렇게 몇 년을 보낸 뒤 두 사람은 자립하여 장가도 가고, 나란히 집을 짓고 행복하게 살게 되지요. 

ⓒ국민서관(『길 아저씨 손 아저씨』)

이 책은 옛이야기 ‘지성이와 감천이’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야기인데요. 눈을 못 보는 지성이와 앉은뱅이인 감천이는 함께 구걸을 다니다가 산 너머 절에서 재를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절로 향하던 중 샘에서 금덩이를 발견합니다. 두 사람이 금덩이를 절로 가져와 시주하자, 절에서는 두 사람이 눈을 뜨고 다리가 펴지기를 바라며 불공을 드리지요. 그래서일까요? 지성이는 눈을 뜨고 감천이는 다리가 펴지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금덩어리를 발견하는 것도, 두 눈을 뜨고 다리가 펴지는 기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불구인 두 사람이 외롭게 따로 살다가 둘이 만나 서로 돕고 살게 되는 과정을 찬찬히 그리고 있습니다. ‘서로 돕는 장님과 앉은뱅이’라는 모티프는 옛이야기에서 가져왔지만,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끼리의 공감과 연대’로 주제가 바뀌면서 ‘서로 돕는다는 것’이야말로 금과도 같고 기적과도 같은 일임을 강조하고 있지요. 


이번 호에는 친구에 관한 그림책을 몇 권 골라서 꼼꼼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이 작품들 말고도 친구를 소재로 삼은 그림책은 아주 많습니다. 이참에 친구를 다룬 그림책들을 더 찾아보고 스스로 생각을 정리해보면 좋겠습니다. 



엄혜숙 선생님은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하다가 지금은 어린이책을 쓰거나 외국 어린이책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콘텐츠는 <초등아침독서> 2020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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