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어린이책 큐레이션 - 시
생각이 많은 날은 읽을 수 없다. 눈이 글줄을 따라가도 딴생각이 앞서 달리니 읽어도 읽은 것이 없다. 마음속이 바글바글한 날에는 시를 소리 내어 읽는 게 낫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생각에서 놓이는 길이다. 마음속 서랍을 쓰윽 열고 시를 꺼내 내게 읽어준다. 외우는 시가 없다면 시집을 펼쳐 읽어도 좋다.
살다 보면 시가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언젠가 오후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일이다. 눈이 내린 새벽처럼 고요한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다. 내 발걸음만 크게 울려 퍼졌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더니 아이가 마루에 앉아 시집을 읽고 있었다. “시가 이런 거야?” “시도 읽을 만하네” 하고 혼잣말을 했다. 네루다의 말처럼 소년에게 시가 찾아온 날이다.
이런 순간도 있었다. 학기가 끝나가던 추운 겨울이었다. 딱히 할 일도 없었던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교실 뒤로 몰려가 말을 타며 놀았다. 소란스러웠다. 아이들의 함성이 울리고, 먼지가 풀풀 날리던 교실에서 나는 이육사와 윤동주와 이상화의 시를 베껴 적고 있었다. 이육사의 시를 적던 소녀와 심보선의 시를 읽던 소년이 그렇다고 지금 딱히 시를 즐긴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말이다. 사람에게는 시가 필요한 날이 있다. 그때 시에게로 갈 수 있는 프리 패스는 어릴 때 마음에 들어온 시 한 편이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2학년 1학기 국어 시간에 처음으로 시를 배운다. 교과서에서는 아이들이 시를 즐길 수 있도록 몇 가지 연습을 시킨다. 학년이 높아지면 아이들은 시를 감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시를 쓰기도 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일찌감치 시를 배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면 시의 새로운 국면이 펼쳐진다. 국어 교과서에 현대시가 등장한다. 이때부터 시는 시험문제를 풀기 위해 분석해야 하는 난해한 그 무엇이 된다. 정규 교육과정에서 시를 접한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시와 영영 이별한다. 아이들에게 시는 재미없고 어렵기 때문이다.
박선미 선생님이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쓴 시를 모은 『저 풀도 춥겠다』(부산 알로이시오초등학교 어린이들 지음 / 보리)에는 박세웅이 쓴 「철봉」이란 시가 나온다.
“맨 마지막 시간을 / 마치고 나서 철봉을 한다. / 나는 박쥐를 한다. / 박쥐는 발을 구부려서 / 손을 놔두는 거다. / ‘머리 박으면 어쩌지?’ / 나는 손을 못 놔둔다. / 조금만 더 연습하면 / 한 손을 놔둘 수 있겠다. / 박쥐는 그래도 쉽다.”
초등 국어 교과서에서 시를 즐기려면 시가 태어난 장면과 시를 쓴 사람의 마음을 떠올려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철봉」이란 시를 읽으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장면과 느낌이 있다. 아이가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있다. 좀 이상한 모습이다. 아이가 말한 대로 박쥐가 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자세로 철봉을 손으로 잡고 매달려있는 것도 아니다. 발도 손도 철봉을 잡고 있다.
좀더 가까이 다가가면 얼굴이 붉어진 아이 모습이 보인다. 아이는 겁을 먹고 있다. 아마도 친구들은 박쥐를 척척 잘할 테다. 아이도 친구들 못지않게 박쥐를 잘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연습을 하면 한 손을 뗄 수 있을 것 같다니, 소심한 성격이다. 이렇게 박쥐가 어려운데 마지막 행에서 아이는 “그래도 박쥐는 쉽다”고 말한다. 철봉에 매달려 이 생각이 들면 순간 좀 울컥하다. 아이에게 쉬운 게 없다. 학교도 학원도 선생님도 숙제도 모두 어렵기만 하다. 그중 어려운 박쥐가 그래도 제일 쉽다.
이 시 속에서 아이는 잘하고 싶은 마음, 사는 게 힘든 마음을 한마디도 내비치지 않았다. 다만 박쥐 이야기만 했다. 잘하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상한 마음이 전해진다. 소리가 울리듯 마음이 공명한다. 직접 말하지 않았고, 보여주지 않았어도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말과 달리 시는 힘이 있다. 이것이 시를 읽는 즐거움이다.
시는 속 시원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시는 말수가 적은 친구다. 말이 많은 친구는 했던 말을 반복하고, 매일 친구 흉을 보느라 침을 튀긴다. 시시콜콜 다 이야기를 들었지만 기억에 남는 게 없다. 속만 시끄럽다. 말수가 적은 친구는 속을 알 수 없어 답답하다. 왜 풀이 죽었는지 말이 없어서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곰곰 살펴야 한다. 조용한 친구처럼 시는 처음 보고서는 바로 속내를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래서 어리둥절하고 어렵다.
시는 담고 있는 생각과 마음은 많은데도 일고여덟 줄로 짧게 말해버리고 만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어떤 느낌인지를 수다스럽게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 할 말만 하는 시끄러운 친구보다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속 깊은 친구가 더 필요할 때가 있다. 시를 좋아하는 마음은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속 깊은 친구’를 사귀는 것과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이 읽으면 좋을 『시 쓰는 나무』(샤나 라보이 레이놀즈 글 / 샤르자드 메이다니 그림 / 다산기획)는 시와 친구가 되는 마음을 그리고 있다. 수줍음이 많은 실비아가 봄이 오자 공원에 가서 자기가 쓴 글을 읽어주고 나무에 매달아놓고 온다. 다음 날 학교 가는 길에 나무를 보고 실비아는 깜짝 놀랐다. 그 나무가 답장을 보냈기 때문이다. 시 쓰는 나무라니! 실비아는 시 쓰는 나무 친구를 사귀었고 이 기쁨을 다시 시로 쓰고 나무에게 들려준다. 어린이 독자는 ‘시 쓰는 나무’가 정말 있는지 궁금해서 책을 끝까지 읽을 테다. 반전이 준비된 실비아의 이야기를 읽으며 시가 정말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눈치채면 된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탁동철 선생이 3학년 최구름에게 물었다.
“구름아.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니? 나도 배워서 잘 써서 내일 아침에 자랑 좀 해보자. 조금만 말해 줘라.” 그러자 구름이가 이렇게 말했다. “본 것을 자세히 쓰고요. 어디서 봤는지 무얼 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잘하면 돼요.”
『달려라, 탁샘』(탁동철 지음 / 양철북)에 나온 한 구절이다. 탁동철 선생님은 이런 숙제를 내곤 한다. “집에서 학교까지 둘레를 잘 살피며 걷다가 발이 멈추는 곳에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며 글을 써라. 그때그때 수첩에 적어놓고 교실에 와서 공책에 다시 정리하자.” 굳이 시를 써야만 한다기보다 ‘어느 한 부분,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을 자세히 그려’놓는 게 글의 시작이고, 시의 시작이다.
『다니엘이 시를 만난 날』(미카 아처 글·그림 / 비룡소)을 읽다가 탁샘이 아이들에게 내준 숙제가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이 그림책을 읽어주고 나서 다니엘 놀이를 해보면 좋겠다. 꼬마 다니엘이 공원에서 만난 거미, 청설모, 다람쥐, 개구리, 거북, 귀뚜라미, 부엉이에게 묻는다. “시가 뭔지 아니?” 그때마다 공원의 동물들이 답한다. 공원에서 시를 나누기로 한 마지막 일요일, 다니엘은 자신이 주운 시를 낭송한다.
시는 쓰는 게 아니라 찾는 것이다. 시는 크고 거드름이 나는 걸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작고 보잘것없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걸 찾는 일이다.
아이들이 처음 시를 만날 때는 그래서 어른들의 잘 쓴 시가 아니라 또래 아이들이 쓴 시가 제격이다. 아름이는 아름이처럼 찬미는 찬미처럼 쓴 시를 보여주면 된다. 아이들이 쓴 시를 만나고 싶다면 현직 교사들이 엮은 아이들의 시집을 찾아보면 된다. 아직 글보다 말이 쉬운 일고여덟 살 아이라면 박문희 선생이 엮은 『침 튀기지 마세요』(이오덕 풀이 / 고슴도치) 같은 책이 좋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말을 받아 적었는데 꾸미지 않아도 아이들의 말은 그 자체로 시다. 초등학생이라면 탁동철 선생이 엮은 『까만 손』(오색초등학교 어린이들 지음 / 보리), 박선미 선생이 엮은 『저 풀도 춥겠다』 『부러운 새끼 개』(부산 알로이시오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 지음 / 보리) 같은 아이들 시집도 좋다. 아이들은 어른이 쓴 시를 보면 주눅이 들지만 같은 또래가 쓴 시는 만만해서 따라 해보려 든다.
이 글에서 소개된 책들을 아이와 함께 읽고 실비아처럼, 다니엘처럼 혹은 구름이처럼 시를 써서 고양이에게, 나무에게, 엄마에게, 선생님에게 읽어주면 좋겠다. 어린이는 누구나 시인이니까.
한미화_출판 칼럼니스트, 『아홉 살 독서 수업』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아침독서> 2020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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