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시인의 온기

- 리브레리아Q 책방 추천책

by 행복한독서

뉘앙스

성동혁 지음 / 228쪽 / 13,500원 / 수오서재



매년 이맘때면 병원 창으로 내다보던 나무 생각이 난다. 바깥의 공기를 가늠해보던 슬픈 마음도 떠오른다. 가을이 진해지기 전에 응급실로 들어가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입원을 했다 퇴원해 나오던 날, 완연한 겨울이 되어있었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긴 10주였으며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을 했던 기간이었다. 내게는 그 경험이 깊게 베인 흉터처럼 남아, 그때부터 겁이 많아졌고 병원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병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헤아려보았다고 여겼다. 그 오만함으로 소아 난치병 환자로 병동에서 긴 시간을 보냈고 여전히 투병 중이라는 책 소개 글을 읽고는, 이 산문집에는 고통이 묻어있으리라 생각했다. 꾹꾹 눌러 담은 아픔이 문장을 비집고 나올 것이라 섣불리 넘겨짚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내가 마주한 건 다정함이었다.


내가 마주한 건, 산에 한 번도 올라가 보지 못했다는 아픈 친구의 말을 기억하고 어른이 되어 그를 업고 산에 오른 일곱 친구의 우정이었으며, 각자의 삶에 바빠 전처럼 보지 못해도 텔레파시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라 믿는 믿음이었고, 중환자실을 나가면 선물을 사주겠노라 어린아이에게 하듯 약속하는 부모의 기다림과 사랑이었다. 편협한 나의 시선이 어느덧 부끄러워지는 글이 이어졌다. 내가 한 짧은 경험은 아무것도 정의하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겸손해진 마음으로 아이였던 시인의 글을 따라 읽는다.


엄마는 수술실에 따라 들어올 수 없음을, 그러니 혼자 견뎌야 하는 일임을 알아차린 아이. 내가 울면 엄마도 우는 걸 알아서 참는 아이. 그렇게 다섯 번을 혼자 참아내고 몸에 많은 자국을 간직하게 된 아이. 어른이 된 시인은 자국을 간직한 자신의 몸이 신의 온기를 담는 큰 그릇이 되었다고 말한다. 신의 온기와 더불어 그의 ‘옆집’에 사는 사람들이 채워주는 온기로 그는 이렇게도 따뜻하면서도 용기 있는 날들을 이어가나 보다. 이 책은 그를 지탱해준 사람들에게 보내는 노래 같기도 하다.

서운하거나 외롭거나 차가워진 순간도 있었겠지만, 기어이 다시 다정해지는 노래.


그는 여전히 아프다.

겨울이 되면 입술이 파래지고 응급실에 가거나 입원을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음을 경험으로 알며, 잠이 안 오는 새벽을 붙들고 지새우는 날도 종종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모스크바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고 돌아오기 위해 산소발생기를 끌고 비행기를 타는 이야기를 읽으면 그가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글을 읽는 우리도 상상할 수 있는 마음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의 글은 읽는 우리를 다정히 일으켜 세워 원하는 곳으로 가 보라고 말을 걸어온다.


“문장은 나의 아름다운 사람들을 담기엔 너무 협소하다”라고 그는 적었다. 하지만 그의 문장은 아름다운 사람들을 담기에 충분히 넓고 그 마음이 넘쳐흘러 읽는 사람에게까지 이르렀다. 서로를 살피는 다정함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배려가, 나로부터 친구들에게로 뻗어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장을 덮는다.


정한샘_리브레리아Q 대표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2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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