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루루

삶을 지탱해주는 사랑의 고리

by 행복한독서

안녕, 나의 루루

이소영 글·그림 / 84쪽 / 15,000원 / 시공주니어



지금 생각하면 놀랍고 아련한 기억이지만 『안녕, 나의 루루』는 시가 나고야의 단편 「어린 사환의 신」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서 영감을 받아 시작되었지만 여러 차례의 각색을 거쳐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 이 작품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과 그 과정에서 나타난 의식의 흐름을 되짚어본다.


「어린 사환의 신」은 가난한 어린 소년이 초밥집에서 돈이 부족해 먹지 못한 채 쫓겨나고, 이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된 국회의원이 그에게 초밥을 맛보게 해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먹고 싶었던 초밥을 실컷 먹게 된 소년은 국회의원의 은밀한 선행을 신의 선물로 받아들인다. 반면 국회의원은 남모른 선행 후 복잡 미묘한 감정에서 휩싸인다. 그러한 베풂의 이유와 목적에 대한 의심을 통해 자신의 선행이 순수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이른다. 누구나 한 번쯤 가져봤을 법한 생각이며, 나 역시 그랬다.


2013년 다시 파리에 정착한 이후였다. 거리에는 빈곤한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고, 그만큼 도움을 호소하는 사람들과 자주 마주했다. 어쩌다 동전 한두 개의 적선을 베풀고 나면 어김없이 국회의원이 겪은 번뇌가 찾아왔다. 나의 선행은 얼마나 순수한 것일까? 철저한 교환의 원리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과연 순수한 관계는 존재할까? 이런 단상들이 ‘이름 없는 신’이라는 더미북으로 이어졌고, 이를 그림책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은 행위보다 ‘관계’에 관심을 두면서부터이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부모가 되는 과정이지만 동시에 자식으로서 부모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이지만, 우리가 어린 시절 받은 부모의 순수하고 헌신적인 사랑은 미래의 내가 세상을 버텨내는 힘이 되고, 타인을 향한 사랑의 자양분이 된다. 이 사랑이야말로 순수한 관계, 즉 교환과 계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관계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사랑은 비단 가족에만 머무는 게 아니다.

그래서 보다 입체적으로 상상했다. 선형 구조의 ‘내리사랑’ 관계를 처음과 끝을 연결하여 이어지는 ‘순환 고리’로 다시 그려본 것이다. 원처럼 생긴 이 공간 안에는 여러 세대가 공존하고, 아이를 보며 나의 과거를 기억하고 부모를 보며 미래를 느낀다. 나는 이 공간 자체를 관계라고 부르고 싶었다. 이 공간에서 내가 그랬듯, 내 아이도 그가 받은 사랑의 기억을 여기에 채우고 이 기억들로 가족, 친구, 연인을 넘어서 전혀 관계없는 누군가에게까지 공간을 확장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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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글프게도 우리는 아주 쉽게 이를 망각하며 산다.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는 강박에 갇혀 발버둥 치고, 자신의 힘으로 우뚝 서게 되지만 동시에 공허함을 느낀다. 받은 것에 대한 소중함을 잊어버렸기 때문도 아니며, 그것을 갚지 못한 죄책감 때문도 아니다. 항상 곁에 있었고 지금도 가득 채워질 준비가 되어있는 애정의 관계를 다만 들여다보지 못했을 뿐이다. 『안녕, 나의 루루』는 이러한 의식의 흐름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때로는 부모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그리고 가끔은 슈퍼 영웅처럼 날 지탱해주던 관계의 울타리를 표현하기 위해, 순수한 사랑에서 비롯되어 순환되고 확장되는 관계를 담아낼 캐릭터와 이야기 형식에 노력과 시간을 할애했다. ‘순환적 관계’에서 나는 과거뿐 아니라 지금도 사랑받는 ‘어린’ 존재이면서 동시에 현재, 눈앞의 핏덩이에게 사랑을 주는 ‘어른’ 존재이다. 따라서 두 시간이 함께 공존하는 느낌을 살려 한 인물의 다른 시간을 그려내는 방식을 택했고 「어린 사환의 신」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

‘루루’는 붉은 늑대이다. 그리고 사랑 또는 애정이다. 또 상상 속 인물이면서 때때로 보이기도 하지만 안 보이기도 한다. 왜 하필 늑대인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어떤 망설임도 없이 직관적으로 늑대여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바로 붉은색을 떠올렸다. 어쩌면 신비로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길들지 않는 야생(혹은 야생성)을 지니고 있지만 먼 옛날 인간과 서로 기대었던 어렴풋한 기억을 지니고 있을 것만 같은 신비로움 말이다. 또한 붉은 늑대는 사랑을 주는 빛과 같다고 생각했다. 어린 레오에게는 사랑과 보살핌으로, 어른이 된 에른츠 씨에게는 기억 깊숙이 숨어있던 애정의 빛으로 루루가 존재하듯, 세상은 그렇게 루루의 관계가 순환하고 확장하길 희망한다.



이소영 작가는 『괜찮아, 나의 두꺼비야』 『겨울☆』 『여름,』 등 다수의 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주변의 삶 속에서 느끼는 마음, 관계, 정체성, 결핍에 관한 이야기를 그림책에 담아냅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3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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