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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동안
유디트 바니스텐달 글·그림 / 김주경 옮김 / 280쪽 / 32,000원 / 바람북스
지난달부터 아버지는 집에서 산소를 공급해주는 기계를 사용하시기 시작하셨다. 코에서 시작된 투명하고 가느다란 호스 끝에는 조용한 집에 있자면 다소 거슬리는 소리로 윙윙 돌아가는 네모난 상자가 연결되어있다. 그 상자 안에서 모터가 돌아가며 산소를 발생시키고, 그렇게 발생한 산소는 보이지 않게 움직여 아버지 몸으로 들어가 떨어진 산소포화도를 조금이라도 끌어올려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도움을 준다. 아버지에게 숨쉬기가 가장 중요한 도전이 된 때는 어느 더운 여름날이었다. 집 앞에서 호흡 곤란을 느끼며 쓰러지셨던 그날부터 전에는 하고 있는지 인지조차 못 하던 숨쉬기가 아버지에게는 살기 위한 숙제가 되었다.
건강의 문제는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다. 벨기에의 만화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유디트 바니스텐달의 『당신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동안』도 이런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어느 날 암을 선고받은 다비드와, 그를 사랑하는 세 명의 여성 미리암, 타마르, 폴라를 통해 그의 마지막 몇 달을 바라본 독특한 형식의 그래픽노블이다. 읽기 전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동안 이별을 준비하는 가족들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읽고 나니 그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동안에도 ‘살아지는’ 삶을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다비드가 암을 선고받은 날 큰딸 미리암은 홀로 출산을 했고, 딸 루이즈를 낳았다. 아버지에게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은 슬프지만 돌보아야 할 새 생명이 있으므로 매일을 새 힘을 내어 살아가야 한다.
다비드의 둘째 딸 타마르는 이제 막 아홉 살이 되었고 아직 죽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에 아빠가 사라질 세상을 거부하면서도 그와 함께하는 소소한 일상과 여행을 충만히 즐긴다.
아내인 폴라는 자신의 두려움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하려고 노력한다.
슬픔에 매몰되거나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각자의 삶에 포함시킨 후 주어진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매우 현실적이며, 그렇기에 더욱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지막 장에서는 다비드의 이야기를 등장시킴으로써 생의 여정을 모두 마치고 떠나는 사람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게 하는데, 그는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하길 원한다.
다비드와 친구 게오르그의 관계성을 이해한다면 그 결정의 윤리적인 면을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에 책을 읽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떠나는 이와 남는 이에게 고유한 색채를 부여해 그 감정을 탁월하게 전달한 놀라운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별은 아주 멀리 있다고 믿고 싶다. 부모님의 노년이 질병에 무너지지 않고 건강하게 아주 오래 버텨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하지만 언젠가 이별이 찾아온다 해도 삶은 계속될 것이다. 그것을 입 밖으로 내어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이런 책을 읽으면 마음이 조금씩 단단해지는 것 같다.
두렵기 때문에 오히려 더 이야기하고, 죽음과 삶을 멀리 두지 말고 살아가리라 다짐해본다. 그리고 언젠가 이별의 날이 온다면 본문에 인용된 시처럼 “다 끝났다”고 말하는 대신 “다시 시작하자”라고 말하리라.
정한샘_리브레리아Q 대표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2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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