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시선들 10 - ‘일하는 사람들의 기록’
이용훈의 시 「당신의 외국어」는 이렇게 시작한다.
“가다와꾸 가도(는) 가리고야, 가이당 가랑(은) 가라(고), 함마(든) 함바(의) 한빠 (간다), 후앙(은) 후꾸레두, 데모(의) 데마찡(은) 데마찌(야), 보루박스(에) 시로도, 쇼쿠닝 (중에) 쓰미, 오오가네(의) 쓰마(는) 말귀만 알아먹어도 끼니 걱정 안 한다 해서 돌고 돌았더니, 공사장서 굴러다니는 돌멩이 됐습니다.”
한 글자씩 짚어가며 읽어도 꾸역꾸역 넘어갈 뿐 이해는 멀다. 외국어가 아니라 외계어다. 도통 말귀를 알아먹지 못하니 끼니 걱정을 해도 크게 할 일이다. 다행히 시 말미에 시인이 붙여놓은 해석이 있다.
“거푸집 모서리는 헛간, 계단 꽁지는 거짓이고, 망치 든 식당의 찌꺼기 간다, 환풍기는 배가 불러, 보조원의 품삯은 기다림이야, 종이 박스에 서툰 사람, 기능공 중에 벽돌공, 직각자의 가장자리는.”
가다와꾸는 거푸집, 가도는 모서리. 단어를 하나씩 맞춰보고 다시 소리 내어 읽어본다. 건설 표준어로 바꿔도 생경하긴 마찬가지다. 가다와꾸 가도(는) 갈고야, 가이당 가랑(은) 가라(고). 사투리나 성조가 있는 외국어처럼 이 단어들은 고유한 억양으로 뱉어야 할 테니 몇 번을 애써본들 나에겐 영영 제대로 낭독할 수 없는 시다.
시집 『근무일지』(이용훈 지음 / 창비)에는 건설하고 철거하고 폐기되는 현장에서 몸을 써서 일하는 사람들이 담겨있다. 탕바리, 객공잡이, 하루떼기…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지 못한 사람들이 서로 닮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전주 가옥 보수할 때 대목장이 그와 비슷한 목소리를 가졌다 했습니다 비슷한 자세로 대패질하는 사람을 광주에서 보았다 합니다 군산에서 망치질 잘하던 사람의 엄지손가락이 그와 비슷했다 합니다 서산에서 타일을 붙이던 노동자의 눈이 그처럼 탁했다 합니다” 「왕년의 톱스타」
시인은 노동의 신성함을 노래하지도 의미를 말해주지도 않는다. 그저 삶의 현장에서 쓰이던 말들을 날것 그대로 지면에 중계한다. 시를 읽는 이들은 어떤 안전 지침도 보호 장비도 받지 못한 채 얼떨결에 공사장 한복판에 서있게 된다.
당혹스런 이들을 이끌어줄 조금 더 친절한 안내자가 있다. 용접공이자 글쟁이인 『쇳밥일지』(천현우 지음 / 문학동네)의 천현우다.
저자는 전문대를 졸업한 뒤 공장을 전전했다. 좀 올라가나 싶으면 다시 바닥, 빛이 보이는 순간은 짧고 문은 열릴 듯 열리지 않았다. 책에는 막 사회에 첫발을 디딘 청년을 옭아맨 빚과 고된 노동, 열악한 작업 환경,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산재가 빈번한 먹먹한 현실이 담겨있다.
“학벌을 의식하지 않고 살았다면 거짓말. 수능도 안 봤지만 대학 순위표는 머릿속에 줄곧 각인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명문대란 만병통치약 같아서 어딜 가나 약발이 들었다.” (92쪽)
돈 모아 기어이 대학에 편입하려던 저자는 오히려 빚더미에 깔려 버린다. “공부 못하면 기술”이라며 세상은 패배자들이나 택하는 게 노동이라 말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처음 용접을 접한 순간 “어때, 해볼 만할 것 같애?”라는 질문에 그의 답은 “근사하네예!” 였다.
“‘용접’은 힘든 노동의 상징처럼 세상에 알려져 있다. (…) 눈앞에 태양만큼 눈 따가운 빛이 아른대고 사방으로 벌건 불똥이 튀어대는 위험한 일로 치부했다. 처음으로 용접면을 쓴 순간, 내 짧은 인식이 얼마나 큰 편견덩어리였는지 깨달았다. 온통 어두운 시야 속, 번뜩이는 불꽃만 남은 망망대해 위에서 치열하며 섬세한 손놀림이 8자를 그리며 흐느적댄다. 천천히 진군하는 용융 풀은 나긋하게 산책 나온 주홍 반딧불이 같다.” (115쪽)
굳이 더 힘든 방식으로 작업하고 “이래 때야놓으면 멋지다 아이가!”라고 말하는 예술가처럼 자부심 넘치는 용접사도 있다. ‘청년공’ 천현우가 ‘공벌레처럼 웅크린 자의식’을 펴고 작심하고 기록을 남겨준 덕분에 비로소 용접 노동을 생생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쇳밥일지』 마지막 장에서 ‘포터’ 아저씨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판때기에서만 쓰는 말들이 있잖냐? 그 상스러운 걸 칼럼에다 그대로 다 실을 순 없잖어. 그렇다고 먹물들 말로 쓰면 맛이 안 살고. 그 중간 언어를 찾아야 하는데 니가 그걸 잘하더란 말이지. (…) 우리 얘기를 먹물들 언어로 번역해야 해. 좀 아니꼬워도 세상은 그렇게 바꾸는 거지.” (283쪽)
확실히 천현우는 ‘판때기 용어’를 먹물들 언어로 옮기는 탁월한 번역가다. 게다가 난감한 순간을 설명하는 그의 문장은 얼마나 절묘한가. “중소기업에서 무계획 소품종 대량 생산을 시도하면 햄릿과 리어왕, 오셀로와 맥베스가 사이좋게 저승에서 탄식할 비극이 벌어진다”니!
『쇳밥일기』 천현우의 어린 시절 성장기를 만화로 그리면 이종철의 『제철동 사람들』(이종철 지음 / 보리)이 된다. 『까대기』를 통해 택배 노동을 담백하게 그려냈던 만화가는 포항 제철소 주변 식당, 노래방, 미용실, 다방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아이들의 성장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담았다.
제철동 상주식당 아들내미 강이가 만화 주인공이다. 식당에 딸린 단칸방에 사는 남매는 단골손님들을 삼촌이라 부르며 그들 틈에 끼어 밥을 먹으며 자란다. 제철소 인근은 노름으로 돈을 날리는 사람들이 흔했고, 싸움 소리가 담장을 넘기 일쑤였다. 아이들이 쉽게 ‘나쁜 물’이 들었다. 술 담배에 본드도 불던 형들은 슈퍼 물건을 훔치다 걸렸고, 강이 친구들은 어른들이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를 주워 피웠다. 달리기와 축구를 좋아하던 강이는 친구 동민이를 따라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꿈을 찾아 한달음에 달려가는 건 아니다. 아버지 노래방에서 돈을 슬쩍하고, 빈집을 아지트 삼아 논다. 왜 반항하는지도 모른 채 놀며 보냈다. 그렇지만 강이는 미술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결국 만화가가 되었다. 만화가가 된 뒤에야 주인공은 어머니는 식당하고 아버지는 노래방하는, 마을에서 제법 잘사는 집 아이였던 자신을 다시 보게 된다. 하고 싶은 걸 말할 수 있는 형편, 꿈꿀 수 있는 형편이었음을 자각한 것이다. 제철동에서 자란 다른 아이들은 그보다 일찍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
책은 가난했지만 자존심 강하고 공부 욕심 많고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주인공의 엄마 순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에 취업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같은 은행 직원 창규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아이 둘이 태어나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날 듯했던 이야기는 창업했다 실패하고 단칸방에서 식당을 시작하는 걸로 이어진다. 강이가 자라며 만난 무수한 이들은 저마다 사연이 있었다. 식당에서 일하는 이모들도 그랬다. 월남전 파병 후유증으로 일을 못하게 된 남편을 둔 이모, 등이 굽은 채로 태어난 이모, 고아로 절에서 자란 이모, 조선족 이모, 아이를 병으로 떠나보낸 이모….
하청, 일용직 노동자의 아내들은 힘든 식당일을 하며 서로를 돌봤다. 무더운 날 식당 문을 닫아 놓고 땀에 씻다 물장난 하는 이모들은 아이들처럼 해맑았다. 제철동 식당에서 자란 아이는 그 이모들이 들려주는 구구한 사연을 좋아했고, 만화로 그리고 싶었다. 마침내 완성된 이 만화 속엔 팍팍한 형편이 넘치고 삶은 기구하지만 그럼에도 꿋꿋함과 정다움이 살아 있다. 과거형으로 끝난 이야기가 아니다. 아파트 단지가 생기고 사람들은 동네를 떠나고 식당은 쓸쓸해졌지만 여전히 제철동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사춘기 아들 속을 답답하게 했던, 열심히 사는 것밖에 모르는 그의 엄마 순이처럼.
세 권의 책은 시, 에세이, 만화라는 장르의 장점을 살려 강렬하고 친절하며 다정하게 작업복과 공장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 책들을 이어 읽고 나면 아파트 연못에 놓인 자그마한 구름다리도, 지하철 손잡이가 매달린 봉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자꾸만 쇳밥 냄새를 상상하게 된다.
한편, 머나먼 땅 스웨덴에서 수십 년 전에 쓴 일기에 뜨겁게 공감하는 낯선 경험도 했다. 다섯 아이를 키우던 청소 노동자 마이아 에켈뢰브가 쓴 일기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마이아 에켈뢰브 지음 / 이유진 옮김 / 교유서가)를 읽으면서다. 물 튀기는 부엌 개수대, 파란 불꽃이 이는 가스레인지 앞, 윙윙 도는 세탁기와 청소기 언저리가 일터인 이들은 제목에서 벌써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돌봄 노동과 살림은 허무하다.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다는 문제만이 아니다. 쓸고 닦고 먹고 치우는 일은 무수히 반복되지만 뾰족한 생산물을 남기지 않는다. 저자는 이렇게 감탄한다. “어떻게 ‘여자들’은 항상 더러워진 것을 바꿀 힘이 있을까. 끊임없이.” 그녀가 남긴 기록은 무의미한 소멸에 맞서는 항거다.
“이제 다시 살아가려고 노력, 노력,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단지 먹고, 자고, 청소하고, 먹고, 자고, 청소하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면 인간은 아마도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162쪽)
책 속에 담긴 현실은 아프다. 아무도 자신과 자기가 가진 것 외에는 신경 쓰지 않고, 사람이 죽고 다쳐도 계산기부터 두드린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사람이 떨어져 죽은 지 6개월 뒤에야 기사가 나지만 아파트값이 오르고 내리는 기사는 하루에도 수십 개씩 쏟아진다. 글쓰기에 무슨 힘이 있는가, 책읽기가 대체 무슨 소용인가 회의했던 마음을 반성한다. 간절히 쓰는 사람, 아니 쓸 수밖에 없는 간절함이 세상을 움직인다.
이소영_책방 마그앤그래 대표, 『화가의 친구들』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2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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