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 산책 - ‘생의 한가운데’
책방 이름인 ‘생의 한가운데’는 루이제 린저의 소설 제목입니다. 책 제목이 공간의 이름이 된 것은 주인공 니나 부슈만의 치열하고 열정적이며 자신의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크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사십 대 초반, 가진 것 없이도 꼭 필요한 일을 하며 뜨겁게 살고 싶은 마음으로 몸살을 앓던 시기였습니다. 무엇이든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때 스무 살에 읽었던 소설 『생의 한가운데』가 삶 속으로 다시 들어왔습니다.
“내 얼굴은 말끔한데 니나의 얼굴에는 표정이 가득하다. 니나는 이 얼굴을 위해 많은 대가를 치렀다.”
저도 이곳에서 많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책방으로 3년 차, 공간으로는 8년이 되어가는 생의 한가운데 곳곳에도 니나의 얼굴처럼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생의 한가운데(이하 생가)는 2015년 ‘인문공간 생의 한가운데’로 시작했습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를 숨 막히게 한 사회적 폭력, 세월호 참사에서 대면한 우리의 얼굴을 마주하며 괴로웠습니다. 슬픔과 분노를 넘어서려면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커졌습니다. 처음 공간을 열었을 때 이 지역에는 인문 공부를 깊이 있게,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초반에 생의 한가운데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은 ‘달달 인문학’과 ‘생가 인문강의축제’입니다. 달달 인문학은 공간을 열기 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진행한 다양한 주제의 인문 강의입니다. 공간이 없었을 때 작은도서관이나 공부방을 빌려 강의를 시작했고 누적된 경험은 생의 한가운데를 시작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생가 인문강의축제는 2016년부터 일 년에 한 번, 2월 셋째 주에 2박 3일 동안 이어지는 릴레이 인문 강의입니다. 2021년 코로나로 멈추기 전까지 5년 동안 모두 48회의 릴레이 강의를 열었습니다. 이 강의는 강사님들의 재능 연대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졌습니다. 강사비도 차비도 없이 무상으로 펼친 인문 강의의 에너지는 지역의 인문 정신을 높였고 생가가 지역 속에 자리 잡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소낙비 강의에 젖은 사람들은 이후 생가 지킴이가 되었습니다.
2019년 책방 구조 속으로 들어온 뒤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작가 지원사업이나 지역서점 문화활동지원사업 같은 공모 프로그램을 열심히 진행했습니다. 코로나 시절에도 책방은 얼음 밑 물고기처럼 쉬지 않고 움직였습니다. 책방에서 일어난 일은 해마다 한 권의 문집으로 만들어 나누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생가는 김해교육청 행복교육지구 지역중심 마을 학교를 운영한 지 4년 차가 되었습니다. 공부하며 뜻을 모은 분들과 마을 교육 공동체를 꾸려 청소년들을 만납니다. 책방이 마을 교육의 거점이 되어 청소년들이 세상과 만납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가 마을 학교는 교학상장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생가에는 여러 개의 독서모임이 있습니다. 생가와 함께 시작한 ‘골목 독서회’는 우애와 환대를 실천하는 튼튼한 독서모임으로 성장했습니다. 청소년 모임 ‘첵첵 bc’ 친구들도 우정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만들어진 청년 책모임 ‘푸른 책갈피’는 서툴지만 풋풋한 모습으로 서로의 불안한 마음을 다독여주고 있습니다. ‘시절독서’는 주제와 길잡이에 따라 참석자가 다르지만 책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고 있습니다. 또한 고전을 읽는 ‘맹자반’과 오카리나를 배우는 ‘골목 오카리나’, 스케치의 기초를 연습하는 ‘연필 하나’ 모임도 열립니다.
사람들이 깃들어 책방에는 작은 생태계가 만들어졌습니다. 행사 때마다 일손을 보태고 손님을 함께 맞이합니다. 기부와 증여도 수시로 일어납니다. ‘갈매기의 꿈’은 어른 세대가 청년 세대의 책읽기를 응원하는 생가만의 프로젝트입니다. 책방 이용자의 기부금으로 책을 구입하는 청소년과 청년에게 책값의 20퍼센트를 할인해줍니다. 좋은 책을 나누고 싶은 분은 불특정 다수에게 책을 선물하기도 합니다. 만남이 꽃처럼 피어나는 순간들이 책방을 살아있게 만듭니다. ‘이문회우(以文會友), 이우보인(以友輔仁)’이라는 증자의 말씀처럼
오래되면 저절로 그렇게 되는구나 싶습니다. 함께 걸어가는 모든 분들에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위치 : 김해시 금관대로 1365번길 10-11
•운영 시간 : 월~토 10시~21시 (일요일 휴무)
•연락처 : 010-6590-9321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middle-of-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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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 @middle_of_life
박태남_생의 한가운데 책방지기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2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