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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연민하지 않고 직시하며 슬픔에 건네는 온기

by 행복한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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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방문

장일호 지음 / 256쪽 / 15,000원 / 낮은산



“책장을 펼치면 누적된 지혜가 고스란히 누워 있었다. 행간에 숨기도 하고, 행과 행 사이를 뛰어다니기도 하면서, 세상과 몇 번이고 거듭 화해했다. 무언가를 기어코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곧 사랑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9쪽)

“모르겠는 것,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알고 싶다’는 마음이 될 때 우리는 연결된다.” (165쪽)


“아버지는 자살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책은 충격적인 현실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책은 슬픔에 멈추지 않는다. 슬픔에 압도되지 말고 오히려 그 슬픔을 마주하고 드러내기를 권유한다. 삶을 연민하지 않고 직시하며 슬픔에 온기를 건넨다.


저자 장일호는 『시사IN』 기자이기도 하다. 책을 읽기 전 나는 이 책이 저자가 취재하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내용일 거라 예상했다. 장일호 작가가 책에서 언급하듯 “물음표 대신 마침표를 더 자주 써야” 하는 『시사IN』에서의 경험이 담긴 ‘슬픔의 방문’ 취재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선입견이 작동한 것이다.

하지만 책은 장일호 기자의 오롯한 삶의 기록이다. 장일호 기자는 입사 전 자기소개서에 김애란 작가의 글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나는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닐까 봐 무릎이 떨리는 사람이다. 당신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람, 그러나 내가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은 나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영원한 화자」)

를 경유한다. 오랜 ‘부재’ 속에서 스스로에게 응답하고자 했던 작가는 “인생의 예기치 않은 사건 앞에서, 책 속의 말들이 다 무너지는 걸 목도하고도” 책을 통하여 다시 삶과 접속해 나간다.


“책을 펴자마자 쏟아진 문장 앞에 나는 얼굴을 묻고 울었다”는 장일호 작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슬픔이 밀려 들어와 마음 둘 곳 없이 서성거릴 때” 김애란 작가의 『달려라, 아비』를 시작으로 『두근두근 내 인생』 『칼자국』을 경유하여, 개브리얼 제빈의 『비바, 제인』 이금이의 『유진과 유진』 강화길의 『다른 사람』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 등 60여 권의 책을 거치며 결국 우리들에게 용기의 말을 건넨다.


좋은 삶은 무엇일까. 삶의 비참과 고독 속에서, 때로 힘들고 참담한 시간들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망설여질 때 『슬픔의 방문』은 우리에게 괜찮다고 그 슬픔을 함께 끄집어 말해도 된다고 큰 용기를 주는 것 같다. 아버지의 부재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나 질병 등 “내가 경험한 폭력을 입 밖으로 꺼내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어느 것도 사소하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를 둘러싼 풍경도 달라졌다. 나는 혼자가 아니고, 내가 당한 일은 내 잘못이 아니”라는 자각 그리고 마주하며, 결국 글쓰기를 통해 고통을 꺼내들면서 나 역시 슬픔을 마주할 용기를 얻는다.


때로 길 끝에 있는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그렇게 연대의 손을 내밀고 싶다.


임인자_책방 소년의서 대표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3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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