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오 유코 글·그림 / 권남희 옮김 / 40쪽 / 13,000원 / 토토북
그림책 『호두 한 알 속에는』 제목은 상상의 씨앗과 질문의 씨앗을 품고 있다. 모든 독자가 제목을 마주하는 순간 궁금해하지 않을까? 호두 한 알 속에 담겨진 것이 무엇인지,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말이다. 적어도 책을 읽으며 상상하는 동안에는 손안의 작은 호두 한 알이 거대한 우주가 되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이와 연결된 하나의 세계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씨앗은 무언가의 시작과 처음을, 열매는 보통 결과나 마지막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곤 하는데, 씨앗이면서 열매이기도 한 호두 한 알 속에는 어쩌면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간극의 커다란 세계가 존재할지도 모른다.
책을 펼치자마자 작가가 던지는
이야기는 32페이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지만, 상상의 주체가 되는 독자의 머릿속에는 내가 쓴 만큼의 이야기와 내가 그린만큼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손이 심심하지 않게 손안에서 또르륵 또르륵 굴리던 호두였고, 먹기 좋게 단단한 껍질을 딱! 깨고 나온 고소한 호두였다. 그런 호두를 책에서는 흔들어보면 짤랑짤랑 맑은 소리가 날 거라고, 찾아보면 다람쥐의 반짇고리가 있을 거라고, 들여다보면 작고 작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는 집이 보일 거라고, 귀 기울여 보면 작고 작은 마을에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릴 거라고 한다. 독자는 손안에 호두를 쥔 사람처럼 문장을 따라 감각이 깨어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책은 반드시 지금 내가 이야기를, 세계를 품고 있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자신이 품은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좋지만 지금 그 속에 무언가를 품고 있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이야기를 품지 않은 씨앗이었던 호두 한 알은 땅에 심어져 물을 빨아들이고, 싹을 틔우고, 잎을 내고, 가지를 뻗어가다 보면 나무에 호두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다. 그러면 딱딱한 껍질을 뚫고 세상 밖으로 나온 호두 한 알은 또 다른 이야기를 짓는 가능성을 품게 된다. 새로운 호두 열매가 많을수록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끝나지 않는 이야기는 그렇게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마치 호두의 생애가 되풀이되어 이어지듯.
손안에 쥐어지는 호두 한 알, 한 줌의 세계가 이렇게 넓을지 이 그림책을 만나기 전에 독자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호두 한 알은 작지만 크다!
신윤경 _ 그림책방 씨앗 대표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2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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