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속 과학
김홍재 지음 / 413쪽 / 20,000원 / 어바웃어북
내 집 마련, 집값이 올랐다 내렸다, 매수심리의 상승세, 바닥 찍고 반등 가나, 연일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단어들에 숨겨진 공통된 화두 하나가 있으니 바로 아파트이다. 내 집 마련이란 곧 아파트 마련이요, 오르내리는 집값은 곧 아파트값을 말한다. 어느새 아파트는 우리나라의 대중 주택이 되어버렸고 전 국민의 3분의 2가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아파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집=아파트’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현실에서 우리가 아파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내 아파트값이 얼마라는 것, 그리고 내 집의 평수 두 가지 숫자뿐이다.
하지만 여기서 근본적인 의문이 생긴다. 1평은 분명 3.3058제곱미터이므로 33평 아파트라면 어림잡아도 109제곱미터는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왜 내가 사는 면적은 85제곱미터인가? 나머지 24제곱미터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누구나 집을, 아니 아파트를 계약할 때 공인중개사에게 저 물음을 던져보았을 것이다. 그때 돌아오는 대답인 즉, 전용면적과 분양면적의 차이이며, 전용률이 높아서 실평수는 더 넓을 거라는 난해한 답변이다. 장황하고도 알쏭달쏭한 답변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계약을 하고 나면 이제 인테리어 공사가 기다린다.
몇몇 업자를 불러 상담을 받다 보면 베란다 확장을 필수로 이야기한다. 아침에 일어나 이를 닦고 세수를 하듯 누구나 당연하게 하는 베란다 확장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베란다가 확장된 아파트를 지으면 될 텐데? 라는 물음에 인테리어 업자는 손사래를 친다. 베란다는 본래 서비스 면적에 포함되어 있어서 어쩌고저쩌고. 아니 전용면적, 분양면적도 헷갈리는 판국에 서비스 면적은 또 무엇?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쪽 벽을 헐어 저쪽 공간을 넓히려 하니 인테리어 업자는 내력벽과 비내력벽 이야기를 주워섬기며 절대 불가라고 한다. 아니 분명 벽을 헐어 공간을 넓힌 아파트를 내가 보았는데? 라고 아는 체를 할라치면 그건 라멘구조라서 가능했을지 몰라도 벽식구조는 절대 안 될 말씀이라고 한다. 분명 하나의 하늘 아래 함께 사는 사람들끼리 이렇게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할 수도 있는가? 이 책은 바로 이런 근본적인 의문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정작 아파트에 대해서는 너무도 모른다는 역설, 몇 억 아니 몇 십억이 넘는 돈을 주고 아파트를 사지만, 자신이 지불할 수 있는 가장 비싼 가격으로 산 상품에 대해 가장 무지하다는 역설에서 시작되었다.
이 책은 전용면적과 분양면적, 서비스 면적이란 무엇인지부터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복잡한 숫자 놀음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중학교 3학년 정도의 수준이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하나 예를 들어가며 쉽게 설명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저자가 건축전공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건축전공자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쓴 책은 많지만, 문제는 건축전공자는 자신이 전문가라서 일반인의 입장은 잘 모른다는 점이다. 이 정도는 다 알겠지 하고 넘어갔던 것을, 비전공자이기에 차근차근 손을 잡고 함께 짚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얼마나 설명이 친절하고 상세한지, 나 자신도 미처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을 배웠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아파트에 대한 책은 많다. 하지만 대부분 부동산이나 재테크의 관점에서, 혹은 인테리어에 대해서 서술한 것이 대부분이고 가끔 점잖으신 교수님이 등장하여 아파트 생활의 폐해에 대해 성인군자 같은 말씀을 하실 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 모든 것이 아닌 오로지 아파트를 과학적이고 실리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추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파트에서 불이 났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요즘 ‘순살 아파트’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콘크리트에서 철근을 빼면 왜 위험한가. 30여 년 전에 무너진 삼풍백화점은 무량판 구조였다. 그렇다면 무량판 구조는 정말 위험한가,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가 무량판 구조라면 어찌해야 하는가 라는 실질적인 문제들을 과학적으로 조근조근 설명한다.
우리가 자동차를 한 대 사려고 할 때면 가격과 배기량만을 보고 구매를 결정하지 않는다. 엔진과 브레이크는 물론 온갖 사양에 대해 박식한 전문가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차량 한 대를 구입한다. 어디 그뿐이랴. 스마트폰, 공기청정기, 오디오, 에어컨 등 우리가 사려는 모든 상품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지고 구매를 결정하는데, 가장 크고 비싼 상품, 그야말로 집채만 한 아파트를 살 때는 정작 아무것도 모르고 사고 있다. 일생일대의 가장 큰 쇼핑이자 어쩌면 평생을 갚아야 하는 초장기 할부 쇼핑인 아파트 구매, 바로 그 아파트에 대해 제대로 알고 구매하자. 그러기 위해 이 책은 가장 쉽고 친절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서윤영_건축칼럼니스트, 『대중의 시대 보통의 건축』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3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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