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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로 미룰 수 없는 일은 없어!

by 행복한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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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 도그

더그 살라티 글·그림 / 신형건 옮김 / 48쪽 / 16,000원 / 보물창고



윤슬이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한껏 신이 난 강아지가 서있다. 나풀거리는 귀와 꼬리를 보니 하늘이라도 날고 있는 기분인가 보다. 표지 덧싸개를 벗기니 전혀 다른 그림이다. 무슨 뜻일까 궁금해 서둘러 책장을 넘긴다.

너무 시끄럽고 복작대고 푹푹 찌는 대도시의 한여름. 숨이 턱턱 막히는 열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런 날 반려견은 할머니와 산책을 나간다. 산책을 좋아하는 강아지조차 금세 지치고 만다. 급기야 횡단보도 한가운데에 드러누워 꿈쩍도 안 한다. 할머니는 강아지의 마음을 금방 알아챈다. 가방을 길바닥에 내려놓고 무릎을 꿇고 눈을 맞춘다. 오른손으로 앞발을 감싸고 왼손으로 턱을 살살 긁어주면서 강아지를 진정시킨다. 그러고는 강아지를 번쩍 안아들고 “택시!”를 외친다.

탈출이 시작된 것이다. 택시 타고 기차 타고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조용하고 자연 그대로인 섬. 지금까지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폭염의 대도시처럼 답답했던 까만 프레임이 사라지고 탁 트인 시야가 들어온다. 붉은빛의 색감도 바뀌어있다. 들판은 초록으로 넘실대고 바다는 푸른빛으로 출렁인다. 가슴이 뻥 뚫리고 눈이 시원하다. 끼룩끼룩 갈매기 소리와 파도 소리만이 가득한 해변. 할머니는 반려견의 목줄을 풀어준다. 강아지는 귀를 제트기처럼 펼치고 기다란 몸을 더 길게 늘이고 신나게 뛰어간다. 어린아이처럼 파도와 엎치락뒤치락, 모래에 비비적비비적 뒹굴고, 모래 구덩이를 파고. 그러다 멋진 조약돌을 발견하면 부리나케 달려와 할머니 앞에 조약돌 탑을 쌓는다. 이윽고 할머니가 만든 조약돌 강아지 위로 해 질 녘의 색이 천천히 겹쳐진다. 하루치 행복이 달콤하게 익어가는 중이다. 강아지와 할머니는 가슴 가득 무언가를 담아 평온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아, 정말 멋진 날이었어!”


둘은 저녁을 맛있게 먹고 깊은 잠 속으로 스르르 빠져든다.


행복은 이렇게 단순하다. 지금 이 순간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내일로 미룰 수 없는 일은 없다. 강아지와 할머니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하는 말이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날이나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을 때는 잠깐이라도 일상을 탈출하라고. 누구와 함께?

이때 중요한 건 알아차림이다. 내 곁의 반려동물뿐만이 아니다. 내 곁의 어린이나 주변의 누군가, 그리고 조용히 시들어가는 내 안의 마음까지도 섬세하게 살펴야 한다. 바로 할머니가 반려견에게 보낸 다정한 눈길처럼. 순간순간 수시로 눈을 맞추는 강아지와 할머니처럼.


떠날 수 없다면 그림책 『핫 도그』를 펼쳐보자. 이 그림책은 이도 저도 아닌 날의 마음들에게 보내는 초대장이니까. 생생한 그림과 간결한 글의 절묘한 하모니가 쏙 빠져들게 한다. 책을 읽고 나면 주머니에 매끈한 조약돌 하나가 다정하게 만져질 것이다.


제님_『그림책의 책』 『겨우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3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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