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들려주는 그림책 이야기 5
도토리 산을 넘으면 잘 보일까?
도대체 마녀는 어디로 간 거야?
보이니?
김은영 글·그림 / 44쪽 / 14,000원 / 비룡소
어느 날, 청소를 하던 중, 화분 밖으로 떨어진 낙엽 잎사귀를 주워 버리려다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 그 순간 잎사귀 안의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복잡한 도시의 길로 빠져들게 되었다. 세계가 연결되는 것 같은 신비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 신비한 세계를 혼자 보기 아까웠다. 그림책의 앞부분을 보면 주인공이 있는 한정된 공간은 이 작은 세계를 발견하기 전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연히 작은 세계를 발견하고 바깥 공간으로 빠져나오며 보이는 세계의 확장을 이룬다. 상상은 우연히 찾아온다.
어릴 적 바닷가에 가면 작고 예쁜 조개껍데기나 소라 껍데기들을 주워 오곤 했었는데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소재를 더 찾던 중 유일하게 남아있던 소라 껍데기 또한 암벽이라는 곳으로 나를 인도해주었다. 그리고 이것까지 버리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세상엔 쓸모없는 게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산책을 하다가 도토리 모자의 미세한 무늬가 아주 작은 산처럼 보이기도 하고, 작은 세계의 소재를 찾으며 상상하는 범위를 넓혀 나갔다. 상상이라는 건 안 보이지만 보이게 만들며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평범한 일상에 ‘피식’ 미소를 준다. 따뜻한 봄날 땅 위로부터 올라와 아른거리는 아지랑이가 씰룩씰룩 춤추는 유령으로 보이듯이 말이다. 이런 상상을 나도 모르게 즐거워하고 있었기에 『보이니?』의 작은 사물에 대한 상상 속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었나 보다.
처음 이야기의 흐름을 구성할 때에는 발견한 세계의 배경과 주인공으로 잔잔하게 이어나가다 보니 이야기가 더 구체적이어야 공간의 생동감이 잘 표현될 것 같았다. 막 소재가 발견되었을 때의 엄청난 기쁨 뒤, 고민이 찾아온 것이다. 그리하여 마녀가 쌍안경을 훔쳐 가는 설정 장치를 넣었다. 그리고 마녀가 등장함으로써 각 공간에 백조 왕자 등 다양한 동화 속 주인공이 들어가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배경은 최대한 먼저 제시된 작은 세계의 질감과 무늬에 대한 디테일을 살리려 했고, 캐릭터들은 발랄하고 익살스러움과 어울리게 발색이 좋은 마커와 색연필로 작업했다. 이렇게 ‘봄(see)’으로 첫 더미북을 완성하고 공모전에 출품하게 되었다.
심사평을 보니 전체 콘셉트에 대해 공감을 해주셨다는 것에 정말 기뻤다. 그러나 가장 큰 과제는 도입과 결말에 어색한 점이 있다는 심사평을 기반으로 좀더 명확한 ‘흐름’이 있어야 했다. 편집자, 디자이너와 이야기를 나누며 여행하듯 ‘재미’있는 책이 되기 위해 설명적인 글을 통통 튀게 신나는 모험이 될 수 있도록 속도감 있게 덜어내는 작업을 해나갔다. 짧은 글이라 쉽게 써질 거라는 착각이 있었나 보다. ‘어디 갔지?’ ‘어디로 간 거야?’ ‘어디로 가버린 거야?’, 같은 의미일지라도 밀고 당기기가 필요한 글은 쓰면 쓸수록 어려웠다. 그리고 그림에서도 여러 시도를 해보았다. 시도의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이 책이 세상에 정말 나올까?’ 하는 초조함이 밀려오기도 했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책이 되는 과정이란 생각이 드니 마음에 여유가 찾아왔다.
더미북에서 공간이 조금 비어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주인공과 마녀 외 19권의 동화 속 주인공들을 작은 세계에 각각의 배경마다 에피소드를 가지고 고정으로 출연하는 조연들로 정하여 배치시켰다. 첫 번째 거북이 나라에서는 독 사과를 받은 백설공주가 보이지만 두 번째 손바닥 바다에서는 이미 독을 지닌 복어가 대신 독 사과를 먹는 깨알 에피소드를 만드는 등 각 여덟 공간에 각각 배치되는 동화 속 주인공들의 동작을 고민하는 데 신경을 많이 쓰게 되었다. 이러한 에피소드를 보는 재미도 소개하고 싶어 동화의 등장인물 찾기를 추가했다.
좀더, 조금이라도 더, 재미난 책이 되기 위해 흐름과 화면에 대해 여러 시도와 연구를 거침없이 해나갔던 시간들과 과정들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갈 데까지 가보자 하는 심정으로 무엇이 더 잘 어울리는 방향인지 확인하는 숙성의 시간이었다.눈에 불을 켜고 급히 마녀와 제시된 동화 속 주인공들을 찾는 독자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잘 안 보이거나 찾기 어려울 때면 그 불을 잠시 끄고 유유히 작은 세계 전체를 보며 각 장면마다 캐릭터들의 에피소드를 살펴보는 일도 다른 방법으로 읽는 하나의 재미일 것이다.
『보이니?』는 평범한 일상의 사물들의 무늬 및 질감을 자세히 보고, 관찰하고, 상상하며 작은 사물의 세계를 마음껏 바라보는 책이다. 책을 펼치고 주인공과 대모험을 시작한 순간 새롭게 얻은 눈으로 마음껏 상상 놀이동산에서 뛰놀며 재미있는 놀이기구를 타면 또 타고 싶듯 독자들도 신나고 여유로운 다양한 경험의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은영 작가는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뒤, 일러스트레이션 교육기관 ‘꼭두’에서 그림책을 공부했습니다. 2012년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었습니다. 24회 비룡소 황금도깨비상 대상작인 『보이니?』는 작가가 직접 쓰고 그린 첫 책입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0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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