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의 야생동물들이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작가가 들려주는 그림책 이야기 6

by 행복한독서
동물원에서 태어난 호랑이, 박람이는
동물원에서 죽었습니다.
박람이의 엄마, 아빠도동물원에서 태어나고
동물원에서 죽었습니다.
박람이의 새끼도 동물원에서 태어났습니다.
박람이의 새끼 역시 동물원에서
죽을 것입니다.


동물, 원

정혜경 글·그림 / 14쪽 / 28,000원 / 케플러49


“동물원은 서식지를 잃어버린 동물들이 살아가야 할 공간입니다. 어쩌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머물러야 할 공간일지도 모릅니다. 동물원에서 태어나고 자라, 야생성을 잃어버려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동물들에게 동물원은 삶의 공간입니다.”


동물원-본문.jpg


팝업책 『동물, 원』의 모티브가 된 다큐멘터리 영화 「동물, 원」은 동물원 울타리 안에 사는 동물들과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의 일상을 담아냅니다. 우리가 평소에 보지 못한 동물원의 뒷모습을 보여주며 갇힌 야생동물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줍니다.


저는 어린 시절 소풍으로 갔던 이후로는 동물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동물원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습니다. 철창 안에서 힘없이 저를 바라보는 동물들의 눈빛이 불편했기 때문이라고 짐작해봅니다. 저는 막연하게 동물원은 없어져야 할 공간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영화 「동물, 원」을 보고 나서도 동물원은 없어져야 할 곳이라는 생각에 변함은 없습니다. 다만 그동안은 생각해보지 않던 의문이 생겼습니다. 동물원의 동물들이 야생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야생의 동물과 자연을 공유할 수 있을까? 인간은 야생동물의 삶에 얼마만큼 관여해야 하는 건가? 영화는 이런 질문에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지만, 중요한 걸 알려주었습니다. 단순히 동물원이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동물원의 동물들에도,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말이죠.


동물원이 없어져야 한다면 어떻게 제대로 없앨 수 있을까? 그전까지 동물원에 무엇이 필요할까? 동물원에 대한 막연한 반대보다는 구체적이고 건강한 질문,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살아갈 곳을 빼앗긴 동물들의 처지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영화는 철창 사이로 우리를 가만히 응시하는 동물을 보여주며 끝이 납니다. 제가 불편해하는 동물들의 그 눈빛에는 열 마디 말보다 하나의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팝업책 『동물, 원』은 영화에 등장한 동물들인 삵, 유황앵무, 표범, 점박이물범, 호랑이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고 책을 접하게 될 독자들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수의사나 사육사의 이야기는 모두 배제하는 대신 주인공이 될 다섯 동물을 결정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했습니다. 주인공 동물들 이야기만 잘 전달되어도 동물원에 사는 동물의 처지에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페이지 구성이 끝나고 팝업 구조물을 만들어가면서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주인공 동물의 사연을 아주 짧게 적었습니다. 삵 우호가 어떻게 동물원에 들어와 살게 되었나 하는 사연을 시작으로 호랑이 박람이가 동물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이야기로 끝맺음하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보이는 숲과 자연은 최대한 인공적으로 그렸습니다. 동물원의 자연은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경을 위해 심은 나무, 풀조차도 자연보다는 사람의 손길이 느껴집니다. 유황앵무 체리가 생활하는 실내 방사장의 경우 창문을 구름 모양으로 그리고 그 안에 창틀을 그려 넣었습니다. 앵무새 체리가 창을 통해 실제 하늘과 구름을 볼 수는 있지만 창을 통해 보는 하늘의 모습은 자연에서 살아야 하는 유황앵무에게는 천장에 그려진 벽화와 같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점박이물범 초롱이가 헤엄치는 물은 바다가 아닌 물결 패턴으로 그려진 물입니다. 표범 직지가 사는 우리 앞의 나무도 나무껍질 무늬를 인쇄한 듯 표현했습니다. 또한 제한된 색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실제 자연이 가진 부드럽고 풍부한 색채를 배제했습니다.


동물원을 둘러싼 자연은 자연물이라 해도 사람의 계획 아래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동물들이 안정감을 느낀다는 식의 표현을 모두 배제하고 싶었습니다.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자유가 없는 야생동물의 처지를 더 잘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동물은 색을 쓰지 않고 흑백으로 그렸습니다. 특히 동물의 크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고 좁은 우리의 크기를 팝업으로 표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실제 동물들은 자신이 살아야 하는 공간보다 훨씬 비좁은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왜곡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저의 소박하지만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마지막 페이지에 담았습니다. 가까운 미래에는 야생동물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숲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전까지 동물원에서 살 수밖에 없는 동물들에게 좀더 편안한 동물원이 되면 좋겠습니다. 동물원이 가족과 아이들을 위한 곳이 아니라 동물을 위한 곳이면 좋겠습니다.



정혜경 작가는 독일 카셀 예술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졸업 후 독일에서 편집디자이너로 일했습니다. 카셀 시립기록보관소와 카셀종합대학도서관에서 아트북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현재 1인 출판사 케플러49를 운영하며 팝업 강의를 합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0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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