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가 노년이 되었습니다
김찬호 지음 / 296쪽 / 17,500원 / 날
나이가 드는 것을 처음 실감한 것은 마흔을 앞두고서였다. 신념과 열정에 이끌리는 삶을 살다가 마흔을 코앞에 두고 문득 막막한 느낌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고 미래를 살아갈 자산도 부족하게만 느껴졌던 기억. 그래서 시작한 것이 대학원 진학이었다. 책으로 뵈었던 교수님께 배우고 싶다는 마음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 대학원에 진학했고, 기차를 타고 학교에 갔다. 쉽지는 않았지만 진학한 덕분에 직장을 구했고 민간의 경력을 이어갈 수 있었다.
물처럼 시간이 흘러 이제 주변에서 은퇴 소식이 적지 않게 들려오고, 은퇴한 지인들이 여유로운 일상을 자랑하기도 한다. 아직은 하고 싶은 일이 많아 은퇴 이후를 생각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이제 노년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준비할 필요성을 느낀다. 마침 사회는 퇴출되어야 할 세대로 우리 세대를 거론하며 당신들은 이제 쓸모없으니 조용히 물러나 달라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섭섭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세대가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을 솔직하게 평가하고 다음 세대에 발전적인 유산을 넘겨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찬호 작가의 『베이비부머가 노년이 되었습니다』가 나온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제 이 주제에 대해 더 많은 사회적 담론과 개인적 성찰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회학자로 일찍이 『생애의 발견』이라는 책을 통해 한국인의 생애 전 과정을 관찰하여 책을 내기도 한 작가는 이번 책에서 노년에 불가피하게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말한다. 육체의 노쇠함, 질병, 나이 든 부모와 손자녀 돌봄, 죽음에 대한 준비, 거기에다 상당수 노년이 부딪히는 경제적 빈곤과 그에 따르는 힘겨운 노동 등이 그것이다.
작가는 인생의 내리막길에 들어설 때 필요한 ‘좌절 면역력’과 보폭에 맞춰 속도를 늦추고 여유롭게 내려가는 순간을 즐기는 것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말한다. 나이가 들어도 ‘정정하다’고 할 때의 ‘정정’함이란 몸이 건강한 것만이 아니라 정자처럼 사방으로 시야가 열려있고, 안이 넉넉하게 비어있어야 한다는 것, 은은한 정기로 기품을 세우고 있어야 하는 거라고 강조한다. 나이 듦을 거부하거나 숨기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노화를 받아들이며 기품 있는 노인으로 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노년에게 중요한 자족감은 자기 안에 갇쳐 안주하는 폐쇄적인 만족감이 아니라 세계에 열려있으면서 존재의 뿌리에 든든하게 중심을 내리고 있는 무게감이라고 말한다. 사소한 권력이나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너그러운 품성으로 타인을 헤아리고 수용하는 품격이 거기에서 우러나오며, 그 경지에서 우리는 자신을 존중하고 타인을 공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자존감의 발현이고 그러한 기풍이 사회와 마음에 스며들 때, 사람다움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구현될 수 있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노인의 벗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독서가 건강한 노년에 중요한 요소이며 도서관을 가까이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대목은 특별히 깊이 다가온다. 노인을 위한 도서관의 역할에 대해 더 고민하고 실행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신남희_중랑구 대표도서관장, 『다 함께 행복한 공공도서관』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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