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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Jul 08. 2024

책방에서 배우는 죽음과 애도

취향 독서, 책방 큐레이션 - 그림책꽃밭

당진 시골 마을에서 책방을 운영하며 6년째 살고 있다. 시골에 내려오자마자 사다 심은 어린 나무들은 두세 번 자릴 옮기면서도 신통하게 뿌리를 내렸다. 해마다 욕심내어 사다 심은 꽃들이 퍼져나가 정원은 저절로 풍성해졌다. 나는 많은 시간 호미 들고 정원 일을 하다가 힘들면 책방으로 들어와 배달온 책 박스를 풀어 정리하고 책상에 앉아 책을 본다. 일하기 좋은 저녁 6시가 되면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장화를 갈아 신고 정원으로 나간다. 내가 꿈꾸던 생활이다. 내 인생에서 다 제하고 두 가지를 남기라고 하면 주저 없이 책과 정원을 말할 것이다. 지금 그 두 가지 속에 빠져 살고 있는 이 시간이 꿈같다.

ⓒ그림책꽃밭

시골 책방에는 찾아오는 손님이 거의 없다. 일주일 내내 사람 얼굴을 못 볼 때도 있다. 책방 운영의 힘듦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행히 그림책꽃밭에는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 아이들의 단체 견학이 심심치 않게 이어진다. 책방에 오는 아이들은 책방 주인 감자꽃이 읽어주는 그림책을 같이 본다. 나는 이 일을 무엇보다 즐거운 사명으로 생각한다. 유치원 아이들에게는 즐겁고 아름다운 말놀이 그림책이 최고다. 『고구마구마』 『왜가리야 어디 가니?』를 읽어주면 아이들은 어느새 우리 말의 리듬에 빠져 깔깔거리며 좋아한다.

가끔 학교 선생님들이 초등 아이들에게 환경교육 책을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넓은 의미에서 환경과 생명을 다룬 그림책들을 떠올려 본다.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고 싶어 하거나 가르치려 하면 오히려 책 고르기가 어려워진다. 이럴 때일수록 아름다운 그림, 재미난 이야기가 있는 그림책이 최고다.


『큰고니의 하늘』은 일본 테지마 케이자부로오 작가의 판화 작품으로 만든 그림책이다. 그는 눈이 많이 오는 일본 홋카이도에 살면서 거기 사는 곰, 여우, 섬수리 부엉이, 큰고니 같은 동물들을 관찰하며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었다. 마침 우리가 사는 곳 당진 합덕에는 ‘합덕제’라는 커다란 저수지가 있어 해마다 겨울에 300마리 넘는 큰고니들이 날아와 겨울을 나고 간다.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 오리 새끼』의 주인공이 나중에 백조가 되는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이다. 거기 나오는 백조가 바로 큰고니다. 겨울이 되면 나는 큰고니들이 머무는 합덕제 저수지를 찾아간다. 큰고니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새들이 흩어지고 도망갈까 봐 멀리 서서 바라보다가 사진 몇 장 찍고 돌아온다.

책을 읽기 전 나는 아이들에게 큰고니가 백조라는 것, 우리 동네에 있는 저수지 합덕제에도 겨울마다 큰고니가 온다는 이야기를 했다. 책에 나오는 자연, 새나 동물들이 우리 주변 가까이 있는 이야기라는 걸 전하고 싶었다.

『큰고니의 하늘』에 나오는 큰고니 떼는 시베리아에서 일본 홋카이도 호수로 날아와 겨울을 지낸다. 홋카이도에 봄이 오면 큰고니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나둘 큰고니들이 떠나가고 이제 호수에는 한 가족만 남았다. 이 큰고니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가운데에는 다섯 마리 큰고니에게 둘러싸인 어린 고니 한 마리가 몸을 웅크리고 있다. 어린 고니는 병이 들어 아프다. 병이 깊어진 고니를 데려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고니 가족 모두 봄이 오는 호수에 남을 수도 없는 어려운 사정이다.


책을 함께 보는 아이들은 대체로 냉정한 쪽이 많다. 아무리 가족이지만 어쩔 수 없다며 아픈 고니를 두고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 말처럼 다섯 마리 큰고니들은 아빠 고니를 따라 호수를 떠날 결심을 한다. 병들어 날지 못하는 고니는 가족들을 뒤따라가며 서럽게 운다. 이 장면에서 책을 보는 아이들은 처음 먹은 냉정한 맘과 다르게 조금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문학의 힘은 이런 것이다. 맞는 것도 없고, 틀린 것도 없는 안타까운 상황을 만난 아이들과 나는 그림책 속 큰고니 가족이 되어 한동안 먹먹한 마음이 되었다. 

큰고니 가족을 이끄는 아빠는 힘들게 출발을 결정했지만 가던 길을 되돌려 혼자 남은 아픈 고니를 향해 다시 날아온다. 아픈 고니는 다시 돌아온 가족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을까? 아픈 고니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속에서 숨을 거둔다. 이 그림책은 참으로 다루기 어렵고 조심스러운 주제를 어린이 눈높이에서 잘 담아냈다.

세상에 태어난 많은 생명은 다 살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다. 심지어 태어나 사람의 먹이가 되기 위해 죽어야 하는 목숨의 종류와 숫자는 다 헤아릴 수조차 없다. 책방에 오는 어린이들은 책방 닭장에 있는 닭을 보며 자기들이 날마다 먹는 치킨과 별개의 것이라 말한다. 우리들이 날마다 먹는 밥, 돼지고기, 닭고기, 햄버거, 당근, 치즈 이런 모든 것도 사실은 수많은 목숨이 죽어 가능한 것이다. 나는 차마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하지 않았다. 큰고니 가족 이야기를 함께 나눈 것으로 족하다. 아이들이 나이를 먹고 몸이 자라면서 더 깊고 다양한 생명 이야기를 만나길 바란다.


주소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계치길 143-12

운영 시간 : 수~토요일 11시~18시(일요일 예약제)

인스타그램 : @grimbook_garden


김미자_그림책꽃밭 대표, 『그림책에 흔들리다』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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