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앞두고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직장생활 15년간 몇 번의 퇴사와 입사를 했지만, 이번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겠다며 무작정 워크숍을 신청했다. 일주일에 한 번, 어린이집에 다니는 두 아이를 염치 불고하고 온전히 어머님에게 맡겼다. 수업 시간보다 늘 일찍 나와서 커피를 마시며 드로잉을 했고 수업이 끝나면 동기들과 그림책에 관련된 수다도 떨고 집으로 왔다. 내가 바라던 일을 하는, 또는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벅찼다. 중간중간 독서모임을 하고 아이들을 재운 후에는 새벽까지 그림을 그렸다. 오직 내 의지로 어떤 기대나 욕심 없이 순수하게 좋아하는 일에 도전하는 내 모습이 꽤 괜찮게 느껴졌다. 내가 괜찮게 느껴지자, 부정적이었던 머릿속에 행복이라는 감정이 고개를 내밀었다. 도저히 생길 것 같지 않던 집 안의 한 공간에 나만의 작은 책상이 놓였다. 일이라고 하기엔 미래가 너무도 불확실하고 취미라고 하기엔 거창한 그림책의 세계에서 그나마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은 오래도록 꿈꿔온 미련한 상상 때문이리라. 그리고 늘 그림책을 보면 가슴이 설렜던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교 앞 서점 그림책 매대에서 이와사키 치히로의 그림책을 보았다. 수채화로 은은하고 간결하게 표현된 소녀의 눈빛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작가가 생전에 반전과 인권 등 사회문제에 끝없이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은 이후에 알게 된 일이었다. 나는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일이 무척 힘들고 때로는 구차하게 느껴져 갈등이 생기면 입을 닫아버린다. 기쁠 때도 한껏 기쁨을 표현하지 못해 오해를 사는 경우도 있을 정도인 내게 그녀의 재능에 더한 단단한 용기와 신념이 투명하게 번진 가녀린 그림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이렇듯 그림책작가의 내면은 그림에 투영되어 독자들에게 표면적인 아름다움 이상의 감동을 준다.
누군가를 위한 그림책을 만들려면 먼저 나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나와 많이 닮아있는 첫 번째 그림책 『구멍과 나』를 지었다. 『구멍과 나』를 작업하며 ‘나’를 발견하고 내 속의 작은 암 덩이도 발견했다. 수술과 회복의 과정에서 그래도 놓을 수 없는 나의 작업물이 있다는 사실은 내 아이들의 존재와 함께 내 삶의 새로운 이유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구멍과 나』는 첫 번째 그림책 이상의 의미가 있다. 글 없는 그림책임에도 나름의 해석으로 공감을 해주는 독자들이 있어 예상치 않은 위로도 받았다. 나를 위해 시작한 그림책이 ‘소통’이라는 또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준 것이다. 그것은 쉽지도 않고 보상도 거의 없는 그림책이라는 ‘밑 빠진 독’에 그 시절의 나를 기꺼이 쏟아붓게 한다. 그림책작가들이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던 작은 존재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사력을 다해 온기를 불어넣기를 반복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지 내 주변의 그림책작가들은 어찌 이리도 무해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많은지 그 속에 있으면 그 마음들을 조금이라도 닮지 않을까 하여 담근 발을 감히 빼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다정함들 덕에 세상 속을 나온 소녀가 되어 만든 두 번째 그림책 『모두 다 음악』은 여러모로 두근거리는 작업이었다. 모든 작업이 그렇듯 벽에 부딪히기도 하고 길을 잃기도 했지만, 산책하며 풍경을 보고 음악을 생각하고 그것을 캔버스에 표현하려 노력하는 일은 눈과 귀를 열어주는 즐거운 작업이었다. 각기 다른 소리를 내는 악기들을 각자의 자리에서 정성껏 연주하고 그들이 모여서 하나의 멋진 음악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짜릿하다. 그렇듯 우리의 정성스러운 하루하루가 모여서 멋진 하나의 음악이 완성될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기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그럼에도 성실히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힘들었던 오늘, 그 속에도 틀림없이 깃들어있는 작은 행복을 놓치지 않기를 바랐다. 희망을 그려낸다는 것이 나를 희망으로 인도한 걸까. 『모두 다 음악』은 꿈의 무대라 여겼던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어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어 강연을 통해 독자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도 주어졌고 다른 나라 언어로의 출간도 앞두고 있다. 과연 내가 이러한 축복을 받아 마땅한 사람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부담스럽고 마냥 기뻐하지 못했던 시간 속에서도 진심 어린 축하와 응원들이 나를 바로 세워주기를 반복했다. 그림책작가가 된 이후 되돌아본 지난 몇 년간 나의 일상은 ‘모두 다 음악’이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창밖의 풍경에 더욱 관심을 두고 마냥 싫어했던 비 오는 날의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주변에 무관심하고 큰 열정도 없이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매달려 살던 내가 쓰고 그리는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좋아하는 것들이 명확해졌고 주변의 세심한 마음들에 더욱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박완서 작가님의 에세이를 좋아한다. 마흔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셨다는 것은 손톱만큼이라도 그분과의 닮은 점을 찾아보려 애쓰던 내게 커다란 의미였다. ‘차오를 때까지 기다렸다는 게 오래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차오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느껴진다는 건 나에게 구체화 되지 않은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느새 축복 같은 봄을 보내고 여름의 입구에 서있다. 오늘 저녁은 작업실 식구들과 평양냉면을 먹었다. 직접 뽑은 메밀면과 오래 우려낸 육수를 부어 잘 삶은 고기 고명을 얹은, 또 생각날 것 같은 맛있는 한 그릇이었다. 나의 그림책이 누군가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한 끼, 그리고 은은하게 생각나는 담백한 한 그릇의 평양냉면, 딱 그 정도의 ‘식감’이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한 그릇을 위해 매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쓸 것이다. 그림책을 만들며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어쩌면 암보다 더한 것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럴지라도 다정한 이들과 작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계속해서 쓰고 그리고 싶다. ‘모두 다 음악’인 지금의 삶을 살고 싶다.
미란_그림책작가, 『모두 다 음악』 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4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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