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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Aug 12. 2024

다정한 환대가 기다리는 공간

출판인이 사랑하는 책방 - ‘책방 사춘기’

돌이켜 보면 ‘서점’이라는 공간에는 늘 설레는 기억들이 스며있다. 어린 시절, 서점은 약속 장소로 누구나 즐겨 찾던 곳이었다. 서울이라면 종로서적이나 교보문고, 홍익문고처럼 유서 깊은 서점들의 이름이 떠오르고, 내가 자란 고향에서는 주로 ‘청구서적’이라는 초록색 간판의 서점 앞에서 만났다. 그래서인지 서점이라는 공간을 떠올리면 ‘만남’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나란히 떠오른다. 좋아하는 친구와의 만남을 기다리며, 좋아하는 책과 먼저 만나던 순간들. 중학교나 고등학교마다 교문 앞에 있던 서점들은 분식점만큼이나 우리의 아지트였다. 앞서 말한 큰 서점들이 누군가와 약속을 하고 기다리는 장소였다면, 학교 앞 작은 서점들은 약속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더라도 반가운 얼굴이, 그리고 책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었다. 친한 친구가 좋아하는 시집이나 잡지가 도착한 날에는 친구에게 몰래 선물할 생각에 들뜨기도 하고, 학교에서 말을 걸어본 적은 없지만 어쩐지 친해지고 싶은 친구를 우연히 마주친 날에는 ‘이 작가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그 애가 머문 서가를 유심히 보기도 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서점에 대해 간직하고 있는 추억, 언제나 나를 반겨주던 책방 언니에 대한 동경 덕분이기도 하다.


어린이·청소년책을 아끼는 독자라면 모를 수 없는 서점이 있다. “우리들의 어엿한 세계”라는 소개가 인상적인 ‘책방 사춘기’다. 책방 사춘기를 처음 찾았던 날, 나는 어린 시절 사랑했던 엘리너 파전의 동화 『작은 책방』을 떠올렸다. 처음 찾는 공간인데도, 오랫동안 상상 속에서 그리워했던 “길 잃은 아이들과 방랑자, 외톨이들이 모여 사는” 동화 속 바로 그 공간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책방 사춘기

어린이·청소년책 전문서점인 책방 사춘기의 서가에는 구석구석 다정하고 사려 깊은 손길이 닿아있다. 손길의 주인공인 유지현 대표는 책방을 찾는 손님들에게 ‘춘기 님’ ‘춘기 이모’라는 애칭으로 더 친근하다. 이 서가에서 만날 수 있는 책들의 목록은 요즘 널리 쓰이는 말로 표현한다면 ‘큐레이션’이겠지만, 그보다 조금 더 특별한 매력이 있다. 온라인서점의 알고리즘은 알 수 없는 나만의 비밀스러운 속마음까지 이해받는 기분은 작은 책방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유대감이다. 이렇게 추천받은 책에는 책 안에 담긴 이야기뿐 아니라, 책을 둘러싼 이야기가 새롭게 깃든다. 이 시간을 통해 나와 ‘책’, 나와 ‘책방’, 무엇보다 ‘책을 읽는 사람’과 ‘책을 건네는 사람’ 사이의 우정이 쌓여간다.


책방 사춘기가 소개하는 책들에는 문학으로서의 아름다움, 예술로서의 완성도는 물론이고 오늘의 어린이들과 나누고 싶은 춘기 이모의 바람이 담겨있다. 차별과 혐오가 만연할수록 어린이·청소년책이 할 수 있는 몫이 있다고 믿는 그는,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이들이 ‘나다움’을 지키면서도 다양한 타자와 연대할 수 있도록 이끄는 책을 섬세한 안목으로 찾아낸다. 책방 사춘기의 시선으로 선택한 책들은 책을 쓰는 작가, 만드는 편집자들에게도 든든한 지지이자 격려가 되어준다. 그의 애정 어린 노력 덕분에 책을 통해 우리가 연결될 수 있고, 연대할 수 있다는 믿음이 무럭무럭 자란다.

책방 사춘기에서는 책을 비롯해 북토크와 전시도 만날 수 있다.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한 아늑한 공간에서 북토크가 열릴 때면 작가의 작업실에 초대받아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 들곤 한다. 골목을 등대처럼 환히 밝히던 책방은 올여름부터 이전 위치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이전의 책방이 다락방처럼 오붓하고 정다웠다면, 더 많은 독자들을 초대할 수 있는 넓은 공간에서 이어질 북토크와 전시도 사뭇 기대된다. 매달 마지막 목요일에는 먹을거리, 음료와 함께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월간 주점 ‘삼바’도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책방 사춘기는 어린이 독자, 그리고 어린이책을 좋아하는 어른 독자 누구나 환대한다. 어린이 독자와 어떤 책을 함께 읽으면 좋을지 고민이 되는 보호자, 어린이책을 읽고 싶지만 어떤 책부터 읽어야 할지 막막한 독자라면 여기에서 믿음직한 나침반을 얻을 수 있다. 가까이 살지 않아 자주 방문하기 어려워 아쉬운 독자들은 온라인으로 책을 주문해 받아 볼 수도 있다. 북토크 역시 현장 참석을 못하더라도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함께할 수 있어 다행스럽다.

이제까지 말한 이유들을 비롯해 내가 책방 사춘기를 아끼는 이유는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마지막으로 꼭 하나의 이유를 꼽아야 한다면 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다. ‘노키즈존’이 어린이를 외롭게 하는 시대에, 어린이를 누구보다 환영하고, 힘껏 환대하는 공간은 존재만으로도 소중하다. 어른 독자들은 이 공간을 찾고, 이곳에서 권하는 책을 읽음으로써 그 환대의 마음에 동참할 수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책으로 가는 문』에서 “어린이문학이란 ‘태어나길 잘했구나’ 하고 아이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것”이라고 썼다. 책방 사춘기의 문 너머에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말했던 바로 그 뭉클한 응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라면 『작은 책방』이 그랬듯, 길 잃은 아이도 외톨이도 외롭지 않을 수 있다. 올 여름 방학이 가기 전엔 책장을 펼치듯 책방 문을 열고 “우리들의 어엿한 세계”를 꼭 만나 보길 바란다.


위치 : 서울 마포구 연남로11길 60 2층 마바사

운영 시간 : 매일 13~20시

인스타그램 : @sachungibook


이하나_돌베개 편집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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