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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향한 지극한 사랑의 발걸음

by 행복한독서

어린이는 멀리 간다

김지은 지음 / 220쪽 / 16,800원 / 창비



눈에 띄게 예쁜 표지에 단정하게 쓰인 세 어절의 책 제목이 시구처럼 자꾸만 입안에서 맴돈다. 어린이는, 멀리, 간다. 이 책의 주인공은 어린이인데, 어린이는 한군데 머물러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나아가는 존재이며, 어린이가 멀리멀리 갈 수 있도록 어른들이 도와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저자인 김지은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는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와 책에 관해 가장 오랫동안 꾸준하게, 가장 활발하게 이야기해 온 독보적인 존재다. 세 어절의 제목에는 그런 그가 2025년에 말하는 ‘어린이론’이 담겨있는 것이다. 책 표지 그림에서 작은 사람을 어깨에 목말 태우듯 높이 서있는 웅장하고도 귀여운 나무가 꼭 그와 비슷하단 생각도 든다. 내가 아는 김지은은 책이라는 목말에 어린이를 태워 멀리 보여주고, 멀리 보내주려고 온 생애를 바삐 헌신한 사람이다. 이 일을 같이하자고 수많은 어른을 불러 모으며 그들에게 목말 태워주는 법을 알려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첫 글 ‘들어가며’에서 저자는 어린 시절, 간식 꾸러미를 손에 들려주며 기차를 태워 보내주던 할머니와의 추억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린이와 책에 관한 글을 쓰더라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말하게 되는 일은 드문데 이 따뜻한 기억의 공유야말로 책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들었다. 이 책에서는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가 멀리 갈 수 있도록 돕는 힘은 바로 어린이를 향한 순전하고 따뜻한 사랑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저자의 마음과 시선과 행동이 마치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라는 말처럼 책의 모든 페이지마다 넘쳐흐르는 걸 확인하면서 절로 그렇게 된다.


모든 사랑이 그러하듯 내 안에서 피어난 사랑이 내 안에만 갇혀있을 때 그 마음은 사랑이라 부르기에 부족하고 때로 위험하기까지 하다. 어린이 주변에서 일하며 어린이를 사랑한다고 하는 어른들의 말이 종종 자신에게만 되비치는 마음처럼 여겨져 가짜처럼 보이는 이유다. 하지만 이 책에서 발견하는 어린이를 향한 사랑은 늘 어린이 편에서 어린이의 현실을 살피며 자신을 넘어 어린이에게로 확장되는 마음이다. 누구나 쉽게 예뻐할 수 있는 귀여운 어린이뿐만 아니라 학대받는 어린이, 돌봄 공백에 처한 어린이, 사회적 발언과 행동을 하는 어린이 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우리 사회의 모든 어린이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현실을 만들자고 얘기한다.


책에 실린 대부분 글에서 어린이책은 어린이의 현실과 연관되어 계속 호출된다. 어린이책이 어린이의 현실과 동떨어진 채 뜬구름 속에서 해석되지 않는 것이다. 저자가 어린이책이나 어린이 문화예술과 관련된 국내외 여러 현장에서 일하며 쌓은 체험 역시 고스란히 현실을 살아가는 어린이들에게로 회귀한다. 어린이책과 어린이의 현실은 서로 단단하게 연결되고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그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어린이에 대한 사유를 확장하고 다음 단계의 실천을 모색하는 지극한 사랑의 발걸음이 이 책에 담겨있다. 어린이를 멀리 가게 하려고 스스로 멀리 가야 했던 한 어른의 발걸음이 우리를 부른다.


김유진_아동문학평론가, 『구체적인 어린이』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5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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