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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너머 가족 간의 소중한 끈

by 행복한독서

이민혜 글·그림 / 56쪽 / 17,000원 / 보림



“엄마는 맨날 핸드폰만 봐!”


딸아이가 세 살 때였다. 아이가 혼자 잘 놀고 있길래 스마트폰으로 아이의 기저귀를 주문하고 있었다. 아이의 말에 뜨끔했지만 속으로는 ‘아가, 엄마가 지금 너의 기저귀를 주문해야 내일 받아볼 수 있거든. 기저귀가 몇 장 안 남아서 어쩔 수 없었어. 그렇게 말하면 엄마는 조금 억울해.’ 그래도 엄마는 하루 종일 반성하는 존재이기에 억울함은 이내 반성으로 바뀌었다. 아이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고, 아이의 시선으로 보는 구부정하게 앉아 멍한 눈으로 핸드폰을 보고 있는 내가 그려졌다. 표정 없는 마리오네트 인형 같았다. 스마트폰을 쥐게 된 마리오네트 인형 가족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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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에 묶인 채 살아가는 마리오네트 인형 가족이 있다. 어느 날 엄마 아빠 인형에게 스마트폰이 주어진다. 그날 이후로 엄마 아빠 인형은 인형의 집에 불이 꺼져도 잠들지 않고 스마트폰만 보며 아이는 소외된다. 그러다 엄마 아빠의 끈이 엉켜버리고, 인형 가족을 만든 이가 엄마 아빠 인형을 휴지통에 버리게 된다. 혼자 인형의 집에 남겨진 아이 인형이 엄마 아빠가 떨어트린 스마트폰을 보며 무언가를 결심하면서 이야기의 클라이맥스가 이어진다.


꼭 하고 싶은 이야기였기에 첫 더미는 빠르게 만들어졌다. 문제는 채색이었다. 종이에 연필로 세밀하게 그리는 스타일, 간결한 느낌의 그래픽적인 스타일 등 다양하게 작업을 해보았는데 이거다 싶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렇게 저렇게 그려보아도 좌절감만 커져갔다. 그렇게 그림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3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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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그림책 작업을 하며 인형 가족의 이야기는 기억 저편에 묻어두고 지내던 어느 날, 현대어린이책미술관에서 ‘언-프린티드 아이디어’ 그림책 전시 공모전의 공모 요강 문구를 보게 되었다. 3년째 묵혀두고 있던 인형 가족의 이야기가 번뜩 떠올랐다. 잠자고 있는 나의 인형 가족을 깨울 때였다. 나는 홀린 듯 작업실 방 한편에 놓여있던 아이의 학습지 상자를 오려 인형 하나를 만들기 시작했다. 인형을 실제로 만들어서 사진으로 찍는 방식이 이야기와 맞아떨어진다는 확신이 들었고, 신명 나게 가위질을 하며 인형의 집을 만들었다. 즐거운 작업 과정 덕분이었을까. 나는 두 번의 심사 과정을 무사히 통과해 ‘끈’이라는 제목의 더미로 언-프린티드 아이디어전에서 인형 가족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이게 되었다.


처음 이 책은 글 없는 그림책이었는데 보림 편집부의 제안으로 글을 넣기로 했다. 글이 없는 그림책으로 기획한 이야기에 글을 얹는 작업이 쉽지 않았는데, 편집부에 많이 기대어 글을 완성할 수 있었다. 아이 인형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끄는 텍스트가 아이의 주체성을 더 부각하고 주제를 더 또렷하게 전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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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은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만든 책이면서, 스마트폰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이야기이다. 스마트폰의 편의성을 이용했으면서 스마트폰이 가족 간의 소통에 방해가 된다고 이야기하니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아이러니함이 담긴 이 책을 읽고 부모와 아이 독자가 함께 이야기 나눠보면 좋겠다. 인형들은 정말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있을까. 혹시 누군가 몰래 스마트폰을 챙겨 나가진 않았을까. 우리는 어떻게 하면 더 현명하게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을까.


나는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없지만 우리 가족의 식사 자리가 각자의 스마트폰을 보느라 고요해지는 게 싫다. SNS에서 타인의 일상을 구경하느라 내 곁에 있는 아이의 조잘거림과 표정을 놓치는 게 싫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면…’ 하고 얘기해 주는 아이와 가족과의 세상에 더 끈끈하게 연결되고 싶다.


이민혜_그림책작가, 『끈』 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5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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