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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바닷가 여행

by 행복한독서

바닷가에서

윌리엄 스노우 글 / 앨리스 멜빈 그림 / 이순영 옮김 / 36쪽 / 22,000원 / 북극곰



너무 일찍 시작된 무더위로 지친 시점에 읽기 딱 알맞은 책이다. 연작으로 보아도 좋을 세 권에서 화자는 『숲의 시간』을 보내고 『강을 따라서』 모험한 후 이제 『바닷가에서』 휴가를 보낸다. 원제는 좀 달랐어도 연작의 일관성을 의식한 듯한 번역 제목이 그럴싸하다.


화자인 들쥐가 영역을 확장하듯 펼쳐지는 서사다. 세 권 모두 매 장면이 시선을 강렬하게 붙든다. 그렇게 가만히 멈춘 채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플랩과 접지 등 책이 갖는 물성을 한껏 활용해 읽는 즐거움을 배가하는 앨리스 멜빈만의 강점은 여전하다. 공간을 여러 방향으로 확장해 독자를 흥미진진한 체험으로 이끈다. 스코틀랜드 혹은 북유럽 어딘가의 해안선을 따라 퍼핀과 물범과 얼가니새를 만나게 해준다. 책 말미에 담은 정보를 읽으며 본문에 등장하는 아이들과 다시 만나는 즐거움도 크다. 수채와 색연필 등 손맛 물씬 나는 작업 방식이 이 책의 지향과도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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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인류의 일상을 소환하게 만들거나 혹은 한생의 흐름도 볼 수가 있다. 인류가 원시 숲에서 즐긴 시기는 다정하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고 강을 따라 마을을 만들고 그렇게 시작한 모험은 숲의 시간만큼 풍요롭게 이어져 왔다. 이제는 오로지 휴식, 쉼의 시간을 위해 바닷가에 도착한 것이다. 『숲의 시간』은 달마다 계절마다 숲이 주는 정취에 반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게 된다. 도도히 흐르는 강은 작은 존재로선 제어하기 힘든 상대라 그 흐름에 그저 몸을 맡길 수밖에 없다. 『강을 따라서』에는 마치 인간이 삶의 큰 강을 모험처럼 겪어내듯 격랑과 평화가 있다. 강줄기의 끝은 바다다. 마침내 휴식이다. 바다의 너른 품에서 조금은 즐기고 간간이 넋 놓은 채 바다를 바라보며 그저 쉰다. 자고 싶을 땐 충분히 잠들어 있어도 좋다. 파도가 보내는 소리와 반짝임에 눈부셔도 좋다. 바닷가에서 만나는 모든 걸 보고 듣고 먹고 마시고 즐기면 된다. 누군가는 재충전이 될 테고, 또 어떤 이에겐 평안한 마지막이기도 할 것이다.


의인화한 들쥐와 그의 친구들은 고요한 숲길을 걷고 꽃향기에 취하고 열매도 조금 따먹고 바람을 맞으며 조금 멀리 여행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맛있는 걸 만들어 먹으며 숲과 자연 속에 산다. 우리의 처음이 그랬다. 숲에 기대 나무와 꽃과 풀과 다른 동물들과 서로 필요한 걸 주고받으며 어우러져 살았던 기억은 모두 잊은 채 지금은 폭주하며 속도를 늦출 방법도 모른 채 그저 달려가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망가뜨린 장본인들도 그들에 의해 훼손된 숲과 강과 바다도 이 책에는 없어서 다행이다. 그 공간의 생명체들은 평안하고 자유롭다. 워낙 그곳의 주인으로 살았던 존재들이 깨끗한 바다와 맑은 공기, 울창한 숲을 만끽하고 있을 뿐이다. 미세 플라스틱도 이상 기후도 걱정할 필요 없는 숲과 강과 바다, 판타지 같아 보이지만 아직 5분 정도 시간은 남았다. 무엇을 할 것인가.


김혜진_그림책보다연구소 대표, 『야금야금 그림책 잘 읽는 법』 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5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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