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니까 좋다

함께 찾고 만드는 행복한 여행

by 행복한독서
두 친구가 함께 떠난 하룻밤 캠핑.
맛있는 저녁을 먹고
별빛 가득한 밤하늘을 바라봅니다.
화사한 숲속 작은 행복이 반짝이네요.
“나오니까 좋다~”
행복한 순간, 고릴라와 고슴도치는
함께여서 좋습니다.



나오니까 좋다

김중석 글·그림 / 44쪽 / 13,000원 / 사계절



되돌아보니 긴 여행이었다. 한 권의 그림책이 나오기까지 머나먼 여행을 떠났었다. 너무 길었고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았다. 무려 14년이 걸렸다. 포기도 했었고 다시 세상으로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위기도 있었지만 천신만고 끝에 그림책이 나왔다.


삼십 대 후반. 나이는 들어가는데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고민이었다. 미술대학을 나왔지만 뾰족하게 잘하는 일도 없는 것 같았고 다니던 회사 생활은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매일 지쳐갔고 꿈이 보이지 않았다. 어떤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나를 소비하지 않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다가 북디자인을 해보려고 강의를 들었다. 기회가 닿지 않아 일은 할 수 없었지만 강의하던 선생님이 그림책을 권하셨다. 때마침 선생님이 전집 그림책을 작업하기에 많은 작가가 필요했다. 몇 개의 원고를 받아 읽어보고 맘에 드는 원고의 스케치와 캐릭터를 그려보기로 했다.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어.’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었다. 회화 작업과 그림책 작업은 완전히 달랐다. 캐릭터를 만들고 장면을 구성하는 모든 일이 낯설고 힘들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고생을 하며 책이 나왔다. 이때 그린 캐릭터 중에 ‘고릴라’가 있었다. 북디자이너 선생님의 사무실에 딱 붙어있던 고릴라를 본 출판사 편집자가 제안했다. 이 고릴라를 주인공으로 그림책을 만들어보자고. 너무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했다. 당장 계약을 했다.


순서가 좀 이상하지만 캐릭터가 있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고릴라의 성격은 어떠한지, 가족관계는 어떤지 캐릭터의 윤곽을 잡아나갔다. 큰 덩치와는 다르게 세심하고 여린 성격이라고 생각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점점 나를 닮은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고릴라가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 꽃집을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고릴라와 꽃이라. ‘고씨 꽃집’으로 제목을 정하고 이야기를 더 구체화시켰다.

하지만 생각만큼 진행이 되지 않았다. 이야기는 풀리지 않았고 계속 제자리를 맴돌며 몇 년이 훌쩍 지나갔다. 그 사이 담당 편집자는 퇴사했고 더 이상 진행을 할 수 없어서 출판계약을 해지하고 고릴라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몇 년 후 사계절 출판사 편집자가 다른 작업을 함께하려고 작업실을 찾아왔다가 재미있는 원고가 없냐고 물었다. 서랍을 뒤져 묵은 ‘고씨 꽃집’을 꺼냈다. 그동안 그린 고릴라 그림도 보여줬다. 관심을 보이며 다시 해보자고 했고 그렇게 고릴라는 다시 세상으로 나와 빛을 보게 되었다.

이야기를 다듬어가던 중에 당혹스러운 일이 생겼다. ‘고씨 꽃집’ 캐릭터와 서사가 유사한 그림책을 찾은 것이다. 아쉽지만 이야기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보기로 했다. 캐릭터는 그대로 두고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다. 무엇을 해야 하나? 긴 터널에서 또다시 길을 잃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가까이에 있는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나?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가족들과 캠핑을 다닌 일들이 떠올랐다. 고릴라를 주인공으로 캠핑을 떠나는 이야기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고릴라의 친구 고슴도치도 등장시켰다. 뾰족한 털을 가진 예민하고 날카로운 고슴도치와 느리고 어설픈 고릴라가 함께하는 것이다. 고릴라와 고슴도치를 계속 그려가면서 전시회도 했다. 캐릭터가 점점 안정되어갔다. 내 손에 완전히 익은 주인공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야기를 계속 고민했다. 성격이 다른 두 친구가 함께 캠핑을 떠난다. 사건은 계속되고 갈등은 깊어진다.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에 기적처럼 행복한 순간이 찾아온다. 편집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불필요한 이야기들은 줄여나갔다. 큰 사건과 갈등이 없더라도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그림도 더 단순화시켰다. 불필요한 배경은 과감히 없애고 주인공들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캐릭터와 배경을 조화롭게 만들 수 있는 기법을 생각했다. 오일 파스텔과 수채 물감, 잉크, 펜을 섞어가며 사용했다. 그림의 마무리는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서 그렸다. 그림을 그릴 때도 “나오니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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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한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보단 지금의 작은 행복을 찾아보자고 한다. 바쁜 일상 중에도 잠시 하늘을 바라보고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바라보자. 눈을 돌려 주변을 돌아보자. 내 그림책이 그런 햇살이고 하늘빛이었으면 좋겠다. 여러모로 “나오니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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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석 작가는 그림책작가이자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일도 합니다. 『엄마 사용법』 『로봇 친구 앤디』 『도서관에 간 외계인』 등 여러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렸고 『아빠가 보고 싶어』를 쓰고 그렸습니다. 또 진솔한 경험을 담은 에세이 『잘 그리지도 못하면서』를 썼습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8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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