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약속
마리 도를레앙 글·그림 / 이경혜 옮김 / 40쪽 / 13,000원 / JEI재능교육
꿀맛 같은 단잠을 포기할 만큼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요?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가파른 산길을 오를 만큼 절실한 바람은 무엇일까요? 가족 모두 마음을 모아 실행할 소중한 일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 모든 것을 기꺼이 해낼 만한 그 무엇인가가 일상에서 늘 접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일상적으로 간과하는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 걸까요? 그림책을 통해 철학적 질문을 자주 던지는 마리 도를레앙이 우리에게 주어진 이 선물 같은 약속이 무엇인지 조근조근 알려줍니다.
『어떤 약속』은 그 선물을 행복한 마음으로 찾아가는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이른 새벽, 캄캄한 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른 시간에 이 가족들은 모두 조용히 깨어납니다.
무슨 약속일까요? 졸리고 일어나기 싫다고 할 법도 한데 깨우러 온 엄마의 말을 듣고 아이들은 군말 않고 옷을 주섬주섬 입습니다. 한두 시간밖에 자지 못했는데도 말이에요.
가족들은 여름밤의 아름다움 속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갑니다. 귀뚜라미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붓꽃과 인동덩굴 꽃향기를 맡으며, 낮 동안 지글지글해서 아직도 뜨뜻한 골목길을 밟으며 어딘가로 갑니다. 가족들은 ‘환하게 불 켜진 졸지도 않는 도시’를 지나 ‘암소들이 들판에서 앉은 채 자는’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곳까지 찬찬히 걸어갑니다. 산길을 올라가다 보면 끼익끼익 덜컹덜컹거리는 기차 소리도 들립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이내 사라집니다. 다시 조용한 세상이 되면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가득 느껴집니다. 숲으로 들어가자 마음이 편해지는 비에 젖은 이끼 냄새와 나무껍질 냄새가 납니다. 와작와작 나뭇가지가 밟히는 소리도 들립니다. 고개를 들면 쏟아질 듯한 별들도 보입니다.
여름밤의 풍경은 오감을 자극합니다. 새벽길을 걷는 가족들이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들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후덥지근한 여름밤 속으로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고 싶어집니다. 더위를 아랑곳하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일상 속의 우리는 밤마다 놀러 오는 달을 쉬이 보내버립니다. 모습을 바꾸며 밤마다 찾아오는 친구인데도 말이죠. 어두운 밤, 숲으로 가니 목욕하던 달과 놀 수도 있네요.
가족들은 드디어 산꼭대기 약속의 장소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감동적인 약속과 마주합니다.
“우리는 서로 꼭 껴안은 채, 숨소리도 내지 못한 채,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아요. 우리가 바로 이 자리에 와 있는 거예요. 소리 없이 하루가 시작되는 눈부신 약속의 자리에….”
광대한 자연은 날마다 우리와의 약속을 성실히 지켜냅니다. 요란을 떨거나 잘난 척하지도 않으면서 날마다 그 약속을 지켜냅니다.
최혜정_한국독서문화연구소CURI 공동대표, 『‘알통’ 그림책 읽기 비법』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9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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