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 마음에 머무는 사계절의 노래

by 행복한독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시와 함께

그랜트 스나이더 글·그림 / 제님 옮김 / 96쪽 / 18,000원 / 노는날



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자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림책이 있다. 그랜트 스나이더가 쓰고 그린 『봄 여름 가을 겨울, 시와 함께』이다. 이 책은 시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여느 그림책과는 다른 매력을 뽐낸다. 사계절을 담은 시집이자 동시에 만화책이고, 시 그림책이면서 누구나 시인이 되게 하는 시 창작 안내서다.


봄에 피어나는 설렘에서 시작하여 여름이 주는 싱그러움과 깊이, 가을의 풍요와 사색, 겨울의 온기와 고요로 이어지는 구성은 자연스럽게 인생의 순환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작가가 계절을 다루는 방식은 거창하지 않다. 커다랗고 화려한 풍경보다 한 아이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발견한 ‘지금 여기’의 작은 순간들을 포착하여 만화처럼 구획한 칸 하나하나에 경쾌하게 담아냈다. 그 칸들이 모여 시가 되고, 그 시들은 계절이 되었다.


한 아이가 종이와 펜을 들고나와 봄을 마중한다. 작은 꽃을 보며 막 피어나는 설렘을 종이에 써 내려가더니 이내 연둣빛을 풍성하게 얹은 나무와 하나가 되고, 씨앗이 꽃이 되고, 비가 웅덩이가 되는 ‘되어 감’의 과정을 지켜본다. 달팽이에게 “천천히 가” “둘러봐”라고 말을 건네거나 고요한 연못 속에 비친 ‘물그림자’를 보며 세상과 나를 연결 짓는다. 그 장면들은 평범한 일상이 어떻게 시가 되는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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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추상적인 시어들을 ‘시각적 직관성’으로 풀어냈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물에 비친 다리의 반영을 보며 “같은 세상, 일렁이며 번져”라고 읊조리는 장면이나 씨앗이 꽃이 되고 비가 웅덩이가 되듯 마음 닿는 곳이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표현한 ‘되어 감’에 관한 장면은 글과 그림이 서로를 얼마나 긴밀하게 보완할 수 있는지를 증명해 보인다. 만화의 ‘컷(cut)’ 연출이 시의 ‘연(stanza)’과 호흡을 같이하고 있어서 독자들에게 시를 읽을 때의 리듬감을 시각적으로 선물한다.


읽는 것을 넘어 쓰게 만든다는 점도 이 책이 발휘하는 힘이다.

계절이 끝날 때마다 후렴구처럼 자리한 ‘시 쓰는 법’ 페이지는 독자들에게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시를 쓰는 데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다고 믿는 이들에게 작가는 조용한 곳, 뾰족한 연필, 하얀 종이 한 장, 그리고 가만히 앉아 조용히 기다리는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창가에 앉아 조용히 시간을 건너다 보면, 어느새 새 한 마리가 날아들고 꽃 한 송이가 열리듯 창작은 억지로 짜내는 고통이 아니라, 내 안의 감각을 맞이하러 나서는 설렘임을 일깨운다.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서 위로가 필요하고, 동시에 한 줄을 쓰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종이 한 장과 뾰족한 연필 끝, 사색과 관찰에서 시작하는 우리의 시를 위하여.


김은아_그림책 칼럼니스트, 『앤의 행복 사전』 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6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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