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이 내게 한 말
김선남 지음 / 48쪽 / 16,000원 / 그림책공작소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산다. 멀리서 보면 한 숲을 이룬 나무들처럼 다 비슷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저마다 다른 잎과 꽃을 피우고, 향기를 지닌 나무들처럼 모두 자기만의 색과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림책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는 이렇게 너무 당연해서 자꾸 잊고 지내는 사실을 또렷이 일깨워준 그림책이다. 이 책이 내게 들려준 말은 ‘우리는 다 다른 나무지만, 함께 숲을 이루며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이 그림책을 쓰고 그린 김선남 작가와의 인연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2012년부터 매주 한 명의 그림책작가를 정해 그 작가의 책을 모두 읽고 나누는 그림책 모임을 이어오고 있었다. 모임에서 나무를 유난히 좋아하던 한 회원이 있었다. 김선남 작가의 책들을 살펴보다가 거의 모든 그림책에서 나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에 감동해 ‘나무 전문 그림책작가님’이라 부르며 꼭 모시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우리는 김선남 작가를 모임으로 초대하게 되었다.
그날 김선남 작가는 ‘딴짓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자신이 해온 여러 시도를 들려주었다. 비둘기 관찰 일지를 쓰고, 그림작가지만 동화도 써보고, 식물의 뿌리를 연구하고, 피아노를 배우고 작곡하고 연주한 이야기까지…. 그림책 한 권의 이야기를 넘어서, 다른 자리에서는 쉽게 꺼내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어주었다. 작가와의 만남 어디에서도 하지 않은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작가였고, 우리는 그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뿌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무와 식물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줄기와 잎, 꽃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땅속에서 서로 이어지고 연결된 뿌리로 함께 살아간다는 말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림책을 사랑하는 우리 역시 보이지 않는 뿌리로 연결된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과 그림책을 함께 읽고, 좋은 그림책으로 아름다운 문화를 만들고 퍼뜨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것이 그림책이 내게 건넨 또 하나의 말이었다.
김선남 작가의 그림책에는 식물과 나무, 곤충과 새 등 자연이 자주 등장한다. 겉으로만 보면 자연의 모습과 동식물의 한살이를 보여주는 논픽션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나무와 풀, 곤충과 새의 삶이 곧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자기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작은 출판사에 좋은 작가를 소개하고, 새로운 책을 함께 만들어보자고 권하는 일은 나에게 그림책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고 인연을 잇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김선남 작가와 두 권의 책을 함께 만든 편집자는 훗날 한 작은 출판사의 대표가 되었고, 언젠가 다시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독자인 나의 재촉을 통해 조금 더 빨리 현실이 되었다. 그렇게 독자와 편집자의 믿음과 애정이 만나 마침내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서울에서 나고 자란 작가가 결혼 후 경기도에 살면서 동네 산과 공원을 산책하고 나무를 관찰하는 경험과 늦된 둘째 아이의 육아와 맞닿아 있는 책이기도 하다. 유독 힘든 육아 경험을 했던 그림책 동아리의 한 회원은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를 통해 큰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 단지가 사실은 온통 계수나무 향기로 가득하다는 걸 알게 해준 고마운 그림책이라고도 했다. 가방 속에 항상 넣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읽어주고 선물했다는 이야기는 작가에게도 깊은 감동을 준 소중한 독자 후기였다. 어린이들에게는 우리가 사는 주변의 나무와 자연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게 하고, 어른들에게는 이 세상에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주는 그림책이다.
김선남 작가는 자신의 그림책을 사랑하는 어린이 독자들이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상상해 왔다고 한다. 작가의 책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함께 읽어온 우리는 2025년 10월 18일, 군포독서대전에 초대되어 김선남 작가와 함께하는 숲속 북콘서트에서 마침내 작가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한 목소리가 어울려 조화롭게 나는 노래는 나무 하나하나가 가득한 숲속 전체에 울렸다. 한 권의 그림책으로 독자와 작가가 인연이 되어, 어린이와 어른이 다같이 노래를 부르고, 그 노래가 지역과 지역을 잇고 퍼져나갈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 향기 맡고 알았지. 계수나무였단 걸.”
합창을 끝내고 어두워진 공원 길을 따라 걸어 나오는데 달콤한 향기가 난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무 아래 떨어진 하트 모양 나뭇잎을 주워 코에 가까이 댔다. 달콤한 향기를 맡고는 동시에 “계수나무다!” 하고 외쳤다. 모두 나무 아래로 모여 떨어진 나뭇잎을 모아 냄새를 맡은 뒤 손에 들고, 주머니에 넣어 집으로 가져왔다.
그렇게 우리에겐 그림책으로 하나된 경험과 아름다운 추억 하나가 생겼다. 한 권의 그림책이 사람과 사람을 잇고,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며, 우리가 함께 숲을 이루는 존재임을 몸으로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림책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전선영_전주그림책이음 대표, 전주국제그림책도서전 조직위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6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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