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묻는 언어의 모양

by 행복한독서

오늘은 아빠의 안부를 물어야겠습니다

윤여준 글·그림 / 64쪽 / 13,000원 / 모래알



표지를 보며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 읽고 나서는 더 많은 얼굴들이 생각났다. 그들에게 안부를 묻고 싶었다. “잘 지냈어?” 하는 명랑하고 반가운 안부는 아니었다. 이 책이 나에게 안부를 물었던 방식으로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잘 지내지 못하는 것 같은 사람에게 잘 지내냐고 물어야 할 때 무척 난감하다. 취업 때문에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애인과 헤어진 친구에게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이 그림책에는 퇴직한 아빠의 일상이 담겨있다. 그리고 아빠의 일상을 지켜보는 딸인 화자가 있다. 장면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화자와 같은 마음으로 안부를 묻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림책은 그림과 글이라는 두 가지 텍스트로 이야기한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습니다”

라는 짧은 문장과 함께 혼자 밥 먹는 아빠의 뒷모습을 그림으로 만난다. 파자마를 입은 아빠의 자세, 작은 부엌 공간이 주는 느낌, 흑백의 감각 등을 통해 독자는 한 장면에서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그림책은 글로 길게 말하지 않고도 많은 말을 할 수 있다. 그림으로도 말하기 때문이다. 그림이 한 말을 글로 중언부언하지 않는다. 그림을 읽을수록 더욱 풍성한 서사를 만날 수 있다.


“처음으로 제 졸업식에도 와 주었습니다”

텍스트와 함께 액자가 걸려있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특별한 일이나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데도 마음을 움직이고 때로는 쿵 내려앉게까지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 힘은 디테일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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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붉은 잠옷 바지를 따라가다 보면 붉은 고무장갑과 붉은 앞치마가 보인다. 비가 내리고, 지나가는 버스의 “인생은 60부터!”라는 비타민 홍보 문구가 눈에 띈다. 흐리고 비 오는 날 색감 있는 우산이 눈에 띄듯이, 아빠의 일상을 따라가며 독자의 눈에 들어오는 디테일이 있다. 자연스럽게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흑백 이미지 속에서 찾아내야 하기도 한다. 이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생동하는 서사가 된다.


그림책을 관통하는 묵직한 힘이 느껴진다. 하나의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면지와 뒤표지까지 어긋나는 목소리가 없다. 내내 같은 톤과 뉘앙스로 말한다. 잡음 없이 깨끗하고 담백하게 녹음된 소리를 듣는 것 같다. 화자의 태도는 천천히 흐르는 일상의 장면들과 잘 어우러진다. 덤덤하게 아빠의 안부를 궁금해한다. 시든 화초를 바라보는 아빠의 시선처럼 사소한 풍경을 놓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아주 많은 일이 일어나는 이 그림책의 진행과도 닮아있다.


“아빠는 괜찮아”

라는 아빠의 말은 “처음에는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라는 텍스트로 이어진다. 꿈과 현실의 경계처럼 느껴지는 환상적인 장면은 일상의 장면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감동을 더한다. 독자인 나는 책 속 인물들과 따뜻한 비를 함께 맞고 개운하게 아침을 맞는다.


말없이 건네는 사랑의 표현이 있다. 직접적이고 과장된 표현보다 매일 꾸준히 화초에 물을 주는 방식의 인사가 있다. 다른 언어가 필요할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나은 방식의 표현이 있다. 화자는 ‘오늘은’ 아빠의 안부를 묻겠다고 하지만 나는 그가 매일 안부를 묻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조금씩 걸어 아빠에게 우산을 씌워주기까지 매일 하는 사랑을 이 그림책을 통해 배운다.


최민지_그림책작가, 『마법의 방방』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0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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