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독서 Aug 20. 2021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

혹독하고 위험한 야성 회복의 과정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

매튜 코델 지음 / 56쪽 / 12,000원 / 비룡소



빨강 코트를 뒤집어쓴 소녀. 서사가 진행되는 내내 한 번도 빨강 코트를 벗지 않는 소녀는 긴장감을 주는 존재다. 왜 하필 빨강일까? 옷은 페르소나(가면)다. 내면을 드러내는 또 다른 모습이다. 맥락으로 짐작하면, 소녀의 빨강 옷은 ‘심리적으로 나태함에 젖어있을 때 자극제로 쓰이는’ 삶을 고양시키는 역할로 보인다. 


소녀 가족은 평온해 보이지만 삶의 활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속표지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눈을 감은 채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불 꺼진 벽난로, 회색빛 기운이 감도는 거실은 정서적으로 차단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벽난로 위에 놓인 늑대 인형과 눈을 뜨고 소녀를 쳐다보는 개, 그 개를 쓰다듬는 소녀다. 


“우리 집은 조용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가끔 그런 말을 듣는다. 바꿔 말하면 “우리 집은 에너지가 고여있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서로 다른 에너지들이 뒤엉키면서 일으키는 혼돈을 이겨낼 힘과 용기가 없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소녀는 어린 목숨이므로 가장 민감하고, 본성의 목소리를 정직하게 들을 수 있는 힘이 있다. 숨 막힐 것 같은 공기는 정체된 여성적 에너지가 위험하다는 신호이다.

결국 소녀는 집을 떠난다. 개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소녀는 늑대의 원형 에너지를 품은 존재다. 늑대는 예민하고 직관이 뛰어나며 관계 맺기에 능숙하고 천성적으로 남들과 가까워지기를 원할 뿐만 아니라 매우 씩씩하고 용감하다. 때문에 눈밭에 홀로 남겨진 새끼 늑대를 만나고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인 새끼 늑대를 살리기 위해 험한 숲으로 들어가는 소녀의 무모한 용기는 위험하지만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내 안에 존재하는 야성을 회복하는 과정은 이처럼 혹독하고 위험하다. 집으로 돌아가던 소녀는 결국 쓰러지지만, 늑대들이 나타나 소녀를 구한다. 새끼 늑대가 혀로 소녀를 핥아 언 몸을 녹이고 늑대들은 소녀를 에워싸고 긴 울음을 토한다. 늑대들의 울음은 어쩌면 잠든 부모의 의식을 깨우는 소리가 아니었을까? 

어머니 자궁에 있는 태아처럼 나무들에 둘러싸인 채 눈밭에 쓰러진 소녀를 품에 안고 집으로 가는 사람은 초록색 외투를 입은 어머니였다. 초록은 생명의 순환과 늠름함, 엄격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어머니 혼자 눈을 뜬 채 두 팔로 안은 딸을 바라보는 걸 보면, 소녀가 죽음을 무릅쓰고 한 가장 용감한 행동은 ‘한 가정에서 여성적 에너지의 부활’을 가져온 것이 아니었을까? 건강한 세상의 뿌리는 가정이며 가정을 따뜻하고 윤기 나게 하는 원천은 ‘늑대와 같은 여성성의 힘’임을 소녀는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 아니었을까? 

한 권의 그림책을 몇 번씩 다시 읽으며, 내 안의 빨강 코트 소녀를 가만히 불러본다. 


최은희_충남 아산초 교사, 『그림책을 읽자 아이들을 읽자』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8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작가의 이전글 모두를 위한 성평등 공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