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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뚜기 Feb 23. 2021

여름인데 뜨거운 물을 마시라고요?

2. 후보생 오뚜기

학군후보생들은 여름에는 하계훈련, 겨울에는 동계훈련을 들어간다.

물론 그곳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받다 보면 정말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이런 생각이 안 들래야 안들 수가 없다.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포기하고 싶었다.


이쁘게 화장을 하고 꾸미고 싶은 20대의 청춘이었다.

하지만 나는 파운데이션 대신 위장크림을 매일 얼굴에 발라야 했다.

나의 얼굴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은 엄폐되어 나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솔직히 그만할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같은 꿈을 꾸고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기들은 나에게 굉장히 큰 힘이 되었고, 내가 포기하고 싶을 때 정말 이제는 그만하고 싶을 때 다시 하게끔 해주는 나의 전우이자, 선의의 경쟁자가 되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하루하루가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리 끈기가 강하지도 않고, 어떤 재능이 뛰어난 것도 아닌 내가 그곳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동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고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혼자였으면 절대 못했을 것들이었다.


이런 나에게 훈련보다 더 힘든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하계훈련에서 제공되는 뜨거운 물이었다.

군은 집단생활을 하는 곳이고 그곳에서의 전염병은 순식간에 수십, 수백 명 이상의 환자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위생과 건강에 굉장히 신경을 쓴다.

훈련 끝나고 지급되는 시원~ 한 물을 기대했는데.. 물이 뜨거웠다.

식중독의 위험 때문에 물을 한번 끓인 후 지급되는 것이라서 뜨거운 물을 줬던 것이었다.

밖에서 아무 생각 없이 마셨던 시원한 물 한잔이 얼마나 소중한 물 한잔이었는지 정말 몸소 깨닫게 되는 경험이었다.

나는 군대얘기로 날밤 새울 수 있는 몇 안되는 여자이다. 비오는날 각개전투 후 동기들과..


한 번은 날이 너무 더워, 가지고 갔던 내 수통의 물도 바닥이 나고, 물도 더 이상 지급이 되지 않았던 적이 있다.

그때 옆에 있던 남군 동기에게 "ㅇㅇ아, 나 수통에 물 한 모금만 주면 안 될까?"라고 하자

그 남군 동기가 나를 보고 쓰윽 웃으며 수통을 건넸다.

"아마, 넌 지금 이 순간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야."


수통에 물 한 모금 주는 게 저렇게 생색낼 일인가.. 싶으면서도 고맙다며 그 남군 동기의 수통에 담긴 물을 마시는 순간...

세상 모든 게 아름답게 보였다.

그것은 포. 카. 리. 분. 말.

(미필이신 분들을 위해... 포카리 분말+물을 섞으면 포카리스웨트 맛이 난다.) 이였다.


그 통제된 곳에서 그것을 어떻게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달콤 짭짤한 그 수통의 맛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아무리 밖에서 시원한 포카리스웨트를 사 먹어도 그 맛이 나지 않는다.

가끔 그때 먹었던 그 수통의 포카리 분말의 맛이 그립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마셨던 그 한 모금이 그 훈련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힘이었다.


그렇게 난 후보생 생활을 통해 밖에서는 그저 그렇게 흘려보냈던

시원한 바람, 따뜻한 햇살, 청명한 공기, 맑은 하늘, 깨끗하고 시원한 물, 따뜻한 잠자리 등이 너무나 소중한 것들이었음을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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