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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뚜기 Feb 25. 2021

3주의 노숙생활

3. 소위 오뚜기

호. 국. 훈. 련.


매스컴에서 너무나 많이 떠들어대는 훈련이기에 그 규모가 어마어마한 훈련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장 기간 동안 훈련을 하는지는 몰랐다.

여자 중에 장갑차를 조종하고 지휘해본 여자는 몇이나 될까? 그렇게 또 난 도전했다.

10월 말 정도 훈련이 진행이 되었는데 문제는 의. 식. 주였다.


훈련을 나가면 가장 기본적인 먹는 거, 입는 거, 자는 게 정말 쉽지 않다.


1. 먹는 거.

일단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식사를 한다'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거의 매일 전투식량이 한번 이상은 지급되었는데 몸이 방부제로 뒤덮이는 기분이었다.

분명 유통기한은 지나지 않았지만 제조일로부터 3년은 지난 밥을 먹었다.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엄청난 칼로리와 방부제로 압박적인 음식이었다.

후식으로 들어있는 파운드케이크와 초콜릿은 아껴뒀다가 당떨어질때나 아침 우유급식이 나올 때 같이 먹으면 그건.. 아주 나이스였다.


주먹밥은 약간의 김가루와 소금이 뿌려진 그야 말고 주먹밥이었다.

 혹시 참치마요?라고 기대했었으나 그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보통 차를 타고 나가 훈련이 진행 중일 때 허기를 잊기 위해 많이 먹었다.


식판 급식은 훈련이 시작되기 전인 아침이나 종료된 저녁에 주로 먹었는데.. 보통 먹고 식판을 씻어야 하나 훈련을 나 간경 우 설거지 시설이 없고 쉽지 않기 때문에 식판 위에 비닐을 씌워먹었다.

그리고 그 비닐만 쏙 버리곤 하는데..

그것조차 시간이 없는 날에는 비닐 안에 밥과 반찬을 다 넣고.. 쉐낏쉐낏.

처음에는 우웩~~ 했는데 먹어보니 꿀맛♡


2. 입는 거+씻는 거+싸는 거

결론적으로 옷은 세탁시설이 없기 때문에 세탁하지 않았다^^;;

실제 전장에서는 몇 달 내내 옷을 못 갈아입을 수도 있는데 뭐 이 부분은 서로 포기를 한 상태라 옆사람에게서 쿵쿵 메주 뜨는 냄새가 나도 크게 서로를 질책하지 않았다.

남군들은 간이 샤워장이 있어 찬물로 나마 일정 시간 샤워가 가능했지만 여군이었던 나는 그러지 못했다.

다행히 며칠에 한 번 훈련지 주변이었던 마을회관 어르신들께서 화장실을 선뜻 빌려주셔서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씻을 수 있었다.

제일 힘들었던 건 생리현상이었던 거 같다.

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드럼통 같은 곳에다가 해결을 하고 어느 정도 양이 차면 가져다 버리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나와 다른 사람의 결과물(?)을 모두 공유하고 안 보고 싶어도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고통스러웠다.

사진첩을 뒤적거리다가 찾아냈다. 그때의 그곳...

 

3. 자는 거

10월 말 새벽 공기는 너무나 차디찼고 바닥에 몸을 눕히면 꽝꽝 언 바닥의 찬기가 그대로 내 몸이 전달되는 거 같았다.

침낭 안에 매일매일 핫팩을 5개씩 까서 넣고 번데기가 되어 자도 너무나 추워서 깊게 잠들기가 힘들었다.

코끝이 얼어버린 느낌을 알.. 까?

추위 때문에 자는 게 두렵고 무서웠다.

그래서 차라리 잠을 자지 않은 적도 있다. 잠을 자버리면 다음날 눈을 못 뜰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적도 있었다.

추워서 차라리 잠을 자지 않았던 적도 있다
추워도 너무추웠다.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시간들이었다.

1주.. 2주.. 가 지났을 때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장갑차의 엄청난 굉음에도 어느덧 익숙해졌고, 흔들리는 차 안에서도 익숙하게 앉아있을 수 있게 됐다.

거울이 있지도 않았지만 거울을 보지 않았다.

나 스스로 나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아마 노숙자인지 군인인지 옷을 보고 겨우 구분할 수 있을 수준이 아니었을까 싶다.

호국훈련에서 돌아와 숙소로 돌아온 날,

나는 숙소 신발장에서 전투화를 벗지도 않은 채 쓰러지듯 잠들어버렸다. 전투화를 벗을 힘도 없었던 듯싶다. 방안의 따뜻한 공기가 내 영혼을 그대로 감싸 안아 버렸다.


내가 군인이어서 하는 말이 아닌데..

내가 생색내려고 하는 말이 아닌데..


당신이 따뜻한 공간 속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현재를 지켜주기 위해 보이지 않은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추위에 떨며 있는 힘을 다해 당신의 그 순간을 지켜주고 있다.


'군인들에게 고마워해라'가 아니다.

당신이 그저 그렇게 살아간 오늘의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


난 확신한다.

나의 3주의 노숙생활이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 친구, 지인들.. 그들 모두를 지키는 일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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