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밥상은 누가 차리나?
생일과 미역국
언제부터일까? 생일인 날 위한 미역국을 끓인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미역국도 끓이지 않게 된 것이.
주부란 직업으로,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러진 것이 10년.
첫해는 내 손으로 내 미역국을 차려먹었고, 이듬해는 아이를 출산하고 물리도록 먹은 미역국에 거부감이 들었다. 그다음 해는 굳이 내 생일 미역국을 끓여야 하나 의문이 들었다. 아이의 생일, 남편의 생일, 시부모님의 생신, 부모님 생신에는 꼬박꼬박 미역국을 끓였다.
정작 내 생일은 미역국 없는 생일이다.
친구의 생일날 남편이 끓여줬다는 미역국 이야기에 입으론 "잘 됐다."말하면서 한편으론 입안이 쓴 것은 내 못남일까?
어릴 때는 부모님의 바쁨에, 독립해선 혼자 자취하며, 나는 여러 해를 내 미역국을 끓여왔다. 그놈의 미역 양 조절은 왜 이리 힘든지... 미역 건더기 보다 국물을 좋아하는 난 늘 혼자 다 먹지도 못할 미역국을 끓여댔다. 나중엔 요령이 붙어 잘게 잘린 미역을 500원 동전만큼 넣으며 "이만하면 나도 양 조절을 잘하게 되었구나." 혼잣말했다.
혼자 살 때나 아이가 어릴 때나 느는 것 혼잣말뿐이었다.
첫아이를 낳고 아침, 점심, 저녁을 미역국을 먹었다. 황태 미역국, 소고기 미역국 종류도 가지가지다. 집 안엔 온통 바다 냄새로 가득 차 1년 치 미역국은 다 먹었다 생각했다. 그 후로 둘째 1년, 또 셋째 1년 치의 미역국을 먹은 셈이다.
그래서일까? 김진아라는 사람을 위한 미역국은 사라진 지 오래다. 누구의 생일 미역국으로 혹은 아이가 먹고 싶어서 끓이는 흔하디 흔한 미역국을 나는 유독 내게만은 인색하게 군다.
"왜 미역국 안 끓였어?"라는 말에 '내 생일 미역국도 내가 끓여야 해?'라는 마음속 뾰족한 말을 숨기며 말한다. "얼마 전 먹었잖아."라며. 그렇게 미역국 없는 생일을 보낸다.
"엄마 밥 줘!"라는 아이의 말에
당연스럽게 때가 되면 가족의 끼니를 챙겨주려 분주한 나를 보면서 가끔은 '누군가 내 밥상도 챙겨줬으면 좋겠다.'란 생각이 든다.
나도 내가 아닌
나를 위하는 마음으로 차려주는 그런 밥상 한 끼.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미역국 한 그릇이 차려진 생일상이 내 마음을 덥혀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