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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부자작가 Dec 07. 2022

마흔의 사춘기



9살 첫째 아이는 어른이 되길 기다린다. 내가 잊을만하면 물어본다. “엄마, 나 어른이 되면 다 할 수 있지? 휴대폰도 마음대로 하고, 사이다도 맘대로 먹을 거야.” 귀여운 소원에 웃음부터 난다.

 

‘빨리 크고 싶다, 어른이 되고 싶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마흔의 내가 아니라 9살엔 어른은 뭐든지 할 수 있다 생각했겠지. 확신의 말이 아닌 건 이젠 떠오르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어린 내가 손꼽아 기다리던 어른이다. 



어른은 자유로운가? 쏟아지는 눈이 좋아 웃던 아이는 자랐다. 비 온 뒤 웅덩이를 밟는 아이에게 신발이 젖는다며 고인 물을 피하라 주의시킨다. 내리는 눈에 ‘내일은 길이 미끄럽겠다.’라고 벌어질 결과를 떠올린다. 


꿈꾸던 어른은 낭만적이지 않았다.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를. 그저 나이만 먹으면 어른이 된다 생각했었다. 내 인생을 내 생각대로 살아가는 어른이 될 거라 여겼다. 


몇 살이 어른인 걸까? 


지나가면 애기 엄마, 아줌마 소리를 듣는 게 몸은 이미 어른인 것 같다. 내 몸만 어른이다. 


생각과 마음은 그대로다. 어른의 지혜가 없는 것 같다. 이런 내가 어른이라 말할 수 있을까? 자신에 대한 믿음, 더 나은 선택, 부끄럽지 않은 행동…. 어른이 된다고 해서 모두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른으로 사는 건 참 어렵다.




어린 시절 소망은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다. 마흔의 소망은 나답게 사는 것이다. 문제는 나다운 게 뭔지 모른다는 것이다. 뒤늦은 사춘기의 후폭풍이다. 


나는 어떤 어른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사춘기에 했어야 할 질문을 이제야 던져본다. 지금이 내 사춘기다. 삶의 고민을 시작하는 마흔의 사춘기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삶의 의미를 찾으라 한다. 늦장 자아 찾기다. 치열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만큼 커져버린 물음에 답하기 어렵다. 



남들 고민할 땐 뭘 했나 싶다. 어려운 문제는 피하고, 내 마음 불편함은 외면했다. 그러다 후회되는 순간이 불쑥 떠오른다. 뾰루지 같다. 숨기고 싶지만 티가 난다. 왜 더 나은 선택을 하지 못했다 탓한다. 나를 숨기지 않겠단 마음은 하루가 다르게 작아지고 쪼그라든다. 드러낸 이후 벌어질 불편한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그래도 기어코 엉망인 날 글로 썼다. 날 것 그대로. 책을 쓴 것은 손가락이 아니다. 눈물, 콧물이다. 




자신을 바로 본다. 덜 자란 마음은 이제야 클 준비가 되었다. 비로소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 


사춘기는 힘겹다.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이렇게 힘겨운 사춘기를 맞은 우리들에게 로버트 존슨의 말을 전하고 싶다.


“최악의 순간이 아닌 최고의 순간을 떠올리며 자신을 평가하라. 우리는 낙심하고 침체된 순간을 떠올리며 자신을 평가하는 경향이 너무 심하다.” 


부족하다며 자신을 탓하지 말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질문이지 비난이 아니다. 내 인생은 시험지가 아니다. 내 행동의 옳고 그름을 빨간펜으로 평가하지 말자. 


자기 연민이 아닌 담담하게 자신을 바라볼 따스한 시선. 그게 어른의 사춘기에 필요한 한 가지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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