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우리에게 책이란 어떤 것인가? 학교 다닐 때 지문에 나오는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읽어둬야 하는 것,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
어른들이 “책 좀 읽어.” 시켜서 읽는 것, 혹은 나를 찾기 위한 방법.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책을 읽었던 이유는 다르다. 어린 시절 내게 책은 현실을 잊게 해주는 도피처였다. 현실이 아닌 상상 속에서 살게 해 줬다. 동화책에서 시작한 책은 추리소설, 만화책, 소설책으로 이어졌다. 책을 읽는 동안 즐거웠다. 현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도망치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몸은 그대로인 채 내 마음만 탈출하는 것이니까.
현실이 불안하단 생각이 들 때마다 책을 읽었다. 마음이 복잡할수록 책을 쌓아두고 읽고, 또 읽었다.
어느 날은 시 한 소절에 울고, 다음엔 소설책에 낄낄대며 웃었다. 내 감정을 마주 보지 않았다. 생각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도망쳤다. 왜냐하면 난 겁쟁이니까. 현실을 바꿀 용기도 비겁한 자신을 바꿀 만큼 용감하지도 않았다. 내게 책은 비난받지 않을 안전한 숨구멍이었다. 나약한 마음의 위로였다.
여전히 난 책을 읽고 있다. 책 자체의 느낌이 좋다. 종이책이 좋다. 넘길 때 만져지는 질감, 오래된 책의 종이 냄새, 새 책의 잉크 냄새, 침 묻혀 넘겼던 책장의 사각거리는 소리까지. 책은 오감을 자극하는 나와의 소통이다.
열세 살의 나는 끊임없이 물었다. ‘왜 우리 부모님은 이혼을 한 거지?’, ‘왜 난 엄마가 둘이지?’, ‘평범할 순 없었나?’, ‘왜 나일까?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길까?’ 대답 없는 물음이다. 바뀌지 않는 과거에 대한 불평이다.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 소설 속 회귀는 허구다. ‘다시 돌아간다면 이렇게 해볼 텐데….’ 책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건 언제나 나였다. 그리고 과거를 놓지 않던 것도 나였다. 지난 일을 후회한다. 머릿속으로 되돌리고 싶은 순간을 리플레이하며 스스로를 상처주기 때문이다. 자기 연민에 빠진 채 부정적이 된다. 원망은 쉽다. 그중에서 가장 쉬운 건 자신을 원망하는 것이다. 현실을 바꾸려 노력하는 건 어렵다. 그래서 ‘어차피 나는 안 될 거야.’ ‘아무 소용없어.’라고 포기하는 게 쉬웠다. 자신을 바꾸는 게 가장 어렵다.
책은 도망치는 나를 다른 각도에서 보게 했다. 바로 이런 문장을 통해서다.
“때때로 저는 물어요. 왜 하필 나인가, 왜 난 그렇게 힘든 삶을 살아왔나 그리고 그때 다시 생각해요. 왜 내가 아니어야 하는가….”
열한 살의 매티 스테파넥의 말이다. 그리고 2년 뒤 열세 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어린 시인은 다섯 권의 시집을 남겼다. 어린 나이에 누가 이렇게 담담하게 자기의 슬픔과 고통을 바라볼 수 있을까? 책이 아니라면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싶다.
내 부끄러운 모습을 고백할 수 있는 것도 책을 통해서다. 내가 변하는 과정의 기록이다.
이런 나도 노력 중이니 함께 하자고 손을 내미는 행위인 것이다.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은 더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이다.
이제 깨닫는다. 내 어린 시절 책은 도망이 아니었다. 변하고 싶은 간절함이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단 소망이다.
바라며 꿈꾸는 우리는 모두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