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이 한 풀 꺾이는 게 느껴진다. 말복이 지나고 나니 거짓말처럼 새벽에는 산산한 바람이 불어와 밤새 틀어 놓던 선풍기 바람을 잠재우는 듯하다.
갱년기에 열대야까지 겪으니 밤마다 소나기 같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새벽까지 잠을 설친다. 그러고 나면 다음날은 하루종일 닭병걸린 사람처럼 집중도 안되고 밥 맛도 잃어 헤롱헤롱거릴 수밖에 없다.
바깥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목이 떨어져 나갈 듯 악을 쓰며 울어대는 매미들의 소리가 대단하다. 한 낮을 거머쥐고 떼를 쓰는 아이처럼 무언지도 모를 것을 손에 쥐어 줘야만 그칠 것 같은 매미들의 떼창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여름의 시간을 알리고 있다. 마치 나의 거센 친구 갱년기를 떠나보내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매미소리가 처절할 만큼 요란한 것은 죽을 때가 왔다는 뜻이라고 한다. 수컷은 짝짓기 뒤 생을 마감하고, 암컷은 알을 낳고 죽는다는데,매미의 울음은 어쩌면 생을 놓기 전, 하지 못한 말을 쏟아내는 것은 아닐지.
또한, 세상에 남길 말을 전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지.
사람들이 매미의 말을 못 알아들으니 답답해서 더 크게 목청 높여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매일매일을 동동거리며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나의 모습을 닮았다.
뻑뻑해진 삭신은 눈 뜬 뒤 한참을 주물러줘야만 제 구실을 하기 시작하고, 밤새 땀에 절은 몸에서는 알 수 없는 쉰내가 풍겨온다. 나이 들면 혼자가 편하다고들 하는데, 옴짝달싹 못하는 팔다리에 쥐내림이라도 날 때는 혼자도 서러운데 몸뚱이마저 내 맘처럼 편치 않으니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고 싶어지기도 한다.
뜨거운 뙤약볕에 모든 것이 맥을 못 추지만 결국은 선선한 가을바람이 우리에게 찾아올 것임을 알기에, 나는 또 이 여름을 갱년기 친구와 묵묵히 견디는 중이다. 솟구치는 땀방울만큼 서서히 익어가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 삼으니 이 또한 사람 사는 것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아간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주위가 어두울수록 더 빛나는 별들은 어둠에 묻힌 사위를 말없이 지켜주는 듯하다.어쩌면 밤하늘에 가득 찬 별들이 갱년기를 호되게 겪고 있는 나를 위해 보초를 서는 듯했다.
문득, 잠시라도 나와 인연이 있던 이들을 위해 그들의 안위와 평안을 위해 마음속 안부를 묻고 싶어졌다.
유난히 더웠던 올 해의 여름을 잘 보내고 있느냐고.
내 마음을 할퀴고 지나갔던 사람들이라도 건강하길, 평안한 삶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던 인연들도 결국은 각자에게 주어진 삶에 그들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살았었음을 이 나이가 돼서야 비로소 보이고 이해가 되니 갱년기 친구 덕분일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장어요리를 했다. 가족과 친구는 헤어지는 대상이 아니고, 한 번 맺은 인연을 평생 이어가는 것임에도 나는 이별을 택했다. 엄마라는 존재로서 살아남아야만 했기에.
그동안은 내 입 즐겁자고 음식을 만드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장어우엉잡채도 아이들을 떠나고 나서 처음 만든 요리이니 거의 5,6년이 되어가는 듯하다.
여름 끝 복달임 음식으로 이만한 게 없는데ᆢ
우엉을 채치고, 장어를 더해 잡채를 만들면서 떠오르는 이들이 유난히 많아졌다.
비록 여기저기 성한데 없는 몸뚱이지만, 가족이 있었기에 지금이라도 독립적인 내가 되어가고 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