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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드 큐레이터 서윤 Feb 20. 2023

세상에 심각한 일은 없어

-추억 한 끼 배추 된장국



2016년에 엄마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었다.

갑자기 숨을 쉬면 등부터 가슴 윗부분이 너무 아프시다며 정읍에 있는 종합병원 응급실에 가셨었다.

모든 검사를 했는데도 원인을 찾기 쉽지 않아 의사의 소견서를 들고 서울 아산병원으로 모셨다. 응급실에서 1주일이 지나도 통증은 가라앉지 않고 반창고를 붙인 곳마다 알레르기가 일어났고, 주삿바늘 때문에 혈관들이 터져 시퍼렇게 멍든 엄마의 팔과 손등에 2,3일에 한 번씩 자리를 바꿔가며 여기저기 주삿바늘을 꽂아야만 했다. 차도가 없어 결국은 병실로 옮기셨고 정밀 검사를 위해 전체적인 검사를 진행했다. 뜻하지 않게 복병처럼 암세포가 대장과 난소에 퍼져 있다는 진단을 받았고 수술해서 복부를 열어봐야 얼마나 생이 남으셨는지 말씀드릴 수 있다는 담당의에게 우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가슴이 아프다고 하시는데 왜 갑자기 난소와 대장에 암세포가 퍼지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모든 검사에서 암 소견이 있으니 수술하자고 했다.

수술실을 들어가기 며칠 전, 엄마는 청양고추 넣고 살짝 얼큰하게 끓인 배추 된장국이 먹고 싶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자마자 다른 모든 일은 모두 제쳐두고 엄마를 위한 배추된장국을 끓이기 위해 얼갈이배추부터 손질하고,  엄마의 비법대로 바닷바람에 말린 먹새우와 다시마를 넣고 진하게 육수를 우려내었다. 소금물에 살짝 삶아낸 얼갈이배추를 송송 썰어 된장 한 스푼 넣고 조물조물 무쳐서 끓고 있는 된장 육수에 넣고 얼갈이배추가 부드럽게 익을 때쯤 청양고추와 대파로 마무리! 시원하고 칼칼하게 배추된장국을 끓였다. 매일매일 오늘 이 시간이 엄마와 나누는 마지막 인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드시고 싶다거나 하고 싶다는 일은 무조건 들어 드리고 싶었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먹새우 육수에 끓여낸 배추된장국에 엄마는 밥 한 공기를 말아서 후루룩후루룩 땀을 흘려가며 드셨다.


맛있냐고 물어보는 나에게

 “외할머니가 엄마 아플 때마다 끓여 주시던 국이여. 그때는 먹을 것이 없어서 1주일 내내 배추 된장국만 먹는다고 타박했는데 요 며칠 그렇게 먹고 싶은 거 보면 내 입도 고급은 아니여~그렇지?”

“세상 별것 없는데. 밥 한 끼 먹고살기가 뭣이 그렇게 고되었는가 모르겄다. 외할머니 살아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볼 것이디, 사는 게 힘들다고 시간 없다고 일 년에 한두 번도 못 보고 지나갔으니까. 외할머니한테 전화하면 언제 안 오냐~하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뭣허러 기다리시오. 살기 편한 소리 하시지 말고 밥 잘 먹고 며느리 말 잘 듣고 계시쇼~ 하며 맨날 타박만 했는데” 하시며 슬픈 미소를 지으셨다.

그리움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어쩌면 자신의 수술이 힘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늘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엄마의 엄마가 그 순간 많이 보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렇게 엄마는 배추 된장국을 맛있게 드시고 며칠 후 수술실에 들어가셨다.

“엄마 걱정하지 마, 괜찮을 거야. 별일 없을 거야, 엄마 사랑해, 우리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힘내~~”

그런 내 손을 잡으며 “나 때문에 우리 딸이 고생허네~ 미안해~~”

“너는 나 닮아서 니 새끼들밖에 모르니 큰일이다~~ 운동도 하고 네 시간도 가져라"

“애쓰며 살지 말아라. 다 살아지니까. 네 인생도 즐기고”

사는 내내 맏이인 나에게 말씀하셨던  “엄마 없으면 네가 엄마 대신이야~알지?”라는 말을 끝으로 남기고 엄마는 그렇게 수술실에 들어가셨다. 톡 건드리면 저수지 댐이 무너지듯 엄마의 두 눈에 고인 눈물을 머금은 채로. 그때의 엄마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5시간을 예상하고 들어간 수술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자식으로서 수없이 잘못한 일들만 떠올랐다. 엄마와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그 시간까지 내가 한 일은 입원해 계시는 동안 고작 하루 세끼 뜨신 밥에 엄마가 좋아하는 반찬 몇 가지 챙겨가는 일이 전부였다.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병실 냉장고를 정리했다. 수술이 끝나고 나면 한동안 식사를 하기 힘드실 거라는 간호사의 말이 떠올랐다. 매일 반찬과 국을 끓여서 채워 놓았던 병실 냉장고를 정리하는데 한 그릇이 채 될까 말까 하는 배추된장국이 냉장고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마도 엄마는 당신의 수술이 끝나고 나면 제일 먼저 된장국을 먹고 싶으셨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의 엄마를 그리워하며.. 한참 동안 반찬통을 끌어안고 앉아 있었다. 엄마가 맛있게 드시던 얼갈이배추 된장국이 꼭 엄마 품인 것처럼.


다행히 수술을 마친 엄마는 암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장 벽에 괘 많이 붙어 있는 작은 폴립들을 다 제거했으니 앞으로 무리하거나 힘든 일은 하면 안 되고 식단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의사 소견을 들었다. 더 이상 큰 수술을 받기엔 엄마의 나이가 적은 나이가 아니시니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했다. 당신이 살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움직이시겠다고 우기시는 엄마는 자식들에게 손 벌리며 살고 싶지 않으시다고 하셨다.

 

사람들은 병원에서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병원에서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이다. 언젠가 죽음을 맞이해야 하고, 사라지는 존재이다. 하지만 죽음이 있기에 어쩌면 우리 삶은 더 강렬하고 고귀하고 존귀하지 않을까?. 살아있음으로 존재의 이유는 충분하다. 햇볕과 바람 한 점에도 감사함의 마음을 담아내며 매일의 일상을 나에게 편지를 쓰듯 한 줄 한 줄 채워가며 엄마에게 구수하고 뜨끈한 배추 된장국도 간간히 끓여 드리며 평온한 삶을 잘 살아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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