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렸을 때 집안 행사가 많았다. 매 달 시댁 식구들이 모일 정도였다. 자주 모이니 매번 한식 상차림만 할 수 없어 계절마다 다른 상차림을 했다. 요즘처럼 민어가 제철일 때는 7,8킬로 이상되는 민어를 직접 손질해서 회, 민어 머리 구이, 어죽까지 민어 풀코스 상차림을 준비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준비하고 나면 내 입으로는 한 조각도 들어가지지 않았다. 이미 냄새로 배가 불러서..
언제부턴가 누군가를 초대하거나 대접해야 하는 날이면 ‘기를 쓰고 요리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다. ‘애쓰지 않고 무리하지 않게. 무엇보다도 웃는 얼굴로 함께 즐길 수 있는 메뉴를 선택한다.
전체요리에는 간단한 샐러드와 웰컴 음료를 준비하고 그다음 메인 메뉴는 손이 많이 가지 않는 냄비나 찜 요리를 하나, 튀김 또는 구이를 준비하는데 초대한 이들의 성별이나 연령층을 고려한다. 그럴 때 한식이 아닌 다른 나라권의 요리를 준비했을 때 손님들의 반응이 좋아 자주 해 먹는 요리 중에 하나가 베트남식 요리다.
베트남 요리는 좋아하지만 베트남은 가본 적이 없다. 어쩌면 그래서 내 혀의 상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튀김은 기름에 담그기만 하면 단시간에 조리가 가능해 파티 음식으로 안성맞춤이다. 특히 우리나라 탕수육과 비슷하지만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음식으로 얇게 썬 돼지고기를 사용한 베트남식 튀김은 순식간에 튀겨지는 데다 찍어먹는 소스로 레몬즙을 사용하므로 상큼하고 식초 효과로 모양도 희고 아름답다.
고수도 뿌리째 다발로 곁들이기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손님들이 각자 뜯어서 먹도록 맡기는 편이 유쾌하고 보기도 좋다. 고수를 그리 썩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있으니. 고수 뿌리를 잘라 별도로 랩에 싸서 냉동해 두고 쓴다. 파뿌리를 손질해서 냉동해 두면 육수낼 때나 고기의 잡내를 없앨 때 유용하게 쓰이는 것처럼 내겐 고수의 뿌리가 그렇다. 냉동되어 있는 고수 뿌리를 반 해동된 상태에서 잘게 다져 절임 소스에 추가하면 풍미가 확실히 좋아진다. 가끔 고수 뿌리 대신 생강을 채 썰어 절임소스에 넣기도 한다.
돼지고기 등심이나 안심, 또는 앞다리도 괜찮다. 장을 볼 때 탕수육 사이즈로 잘라 달라고 주문하거나 돈가스용으로 판매되고 있는 등심 한 팩을 사서 적당한 두께로 잘라 준비한다. 큰 밀폐용기에 다진 고수 뿌리, 다진 마늘, 레몬즙, 설탕, 남쁠라 소스를 섞어서 양념장을 만든다. 좋은 남쁠라 소스(피시소스)는 위스키 색처럼 맑은 적갈색에 침전물이 없다. 좋은 바다 향이 나며 비린내가 강하지 않고 너무 짜지도 않는다. 우리가 흔히 쓰는 멸치 액젓으로 대체해도 되지만 베트남 요리에는 되도록 타이 피시 소스가 제격이다. 우리나라 김치에 액젓 대신 피시 소스를 넣는다면? 아마 그런 맛일 것이다. 괜찮은 거 같은데 깊은 맛이 빠진 2% 부족한 느낌이랄까?
이렇게 양념장에 담가둔 돼지고기는 냉장고에 최소 15분에서 1시간 정도 재워둔다. 그러고 나서 녹말가루를 묻혀 180도로 두 번 튀겨내면 아주 바삭한 돼지고기 튀김이 된다. 바삭한 돼지고기 튀김과 고수를 다발로 곁들여 세팅하면 완성이다. 꾸리 한 피시소스에 청양고추와 양파, 레몬이나 라임을 잘게 썰어 넣은 매콤하고 상큼한 소스를 곁들여 먹는다. 맥주를 부르는 맛이다. 아이들 간식으로 먹일 때는 파인애플 소스를 만들어 함께 내놓기도 한다. 유명한 치킨집에 매콤 달콤한 간장 소스를 만들어 버무려서 파채를 푸짐하게 올려 주기도 한다. 돼지고기 튀김만 있으면 내가 원하는 대로 그때그때의 모임이나 기분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 수 있어 자주 하는 요리 중에 하나다.
요즘처럼 더울 때 시원한 맥주 한잔에 간단하게 만든 베트남식 돼지고기 튀김을 먹을 생각하니 주말 저녁이 기다려진다. 오랜만에 아들과 술 한 잔 기울여야겠다. 아들이 좋아하려나?